야권 “한명숙 구하기” 일제히 비판…여권 “검찰 위법 밝히려는 것” “굳이 왜” 엇갈린 반응
박범계 법무부 장관. 사진=박은숙 기자
박범계 장관은 3월 17일 한명숙 전 국무총리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 당시 검찰 수사팀의 모해위증교사(남을 해할 목적으로 법정에서 의도적인 거짓말을 강요) 의혹과 관련해 재수사하라는 취지로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검찰은 3월 19일 대검회의를 열고 13시간 마라톤 논의 끝에 모해위증 의혹을 받는 당시 재소자들을 불기소하기로 결정했다.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 대검 부장 7명, 전국 고검장 6명 전원이 참석했다. 불기소 의견 10명, 기소 의견 2명, 기권 2명의 결과가 나왔다. 친정부 성향으로 분류되는 일부 대검 부장도 불기소 의견을 내거나 기권한 것으로 전해진다(관련기사 ‘모해위증 불기소’에 ‘감찰’ 꺼내든 박범계…법무부-검찰 갈등 재점화).
과거 검찰 수사에서 한명숙 전 총리에게 뇌물을 줬다고 털어놨던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는 법정에서 검찰 강요로 거짓 자백을 했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1심 재판부는 한 전 총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한 전 대표의 번복된 진술이 반영된 셈이다. 이에 검찰은 한 전 대표와 같은 방에 수감됐던 재소자 셋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재소자들은 당시 한 전 대표가 평소 한 전 총리에게 뇌물을 줬다는 말하곤 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결국 2심에서 결과가 뒤집혔다. 2심은 한 전 총리에게 징역 2년의 유죄를 선고했고, 대법원은 형을 확정했다. 2심과 대법원은 한 전 대표가 검찰에서 했던 진술이 더 신빙성이 있고, 한 전 총리 동생이 한 전 대표 명의로 발행된 수표를 집 전세 자금으로 활용했다는 점을 들어 한 전 총리가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고 봤다. 하지만 이후 언론을 통해 당시 검찰 수사팀이 한 전 대표와 같은 방을 썼다는 재소자들에게 또한 위증을 교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대검회의 결과가 나온 뒤 1야당 국민의힘과 검찰 안팎에선 박 장관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박 장관 사퇴 주장까지 뒤를 잇는다. 이들은 박 장관 수사지휘권 발동을 두고 법리적 다툼보다는 한 전 총리 재심 청구 근거를 만들기 위한 정치적 의도로 해석했다. ‘한명숙 구하기’의 일환으로 본 것이다.
김종민 전 광주지검 순천지청장은 3월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유죄로 확정된 뇌물사건의 뒤집기를 위해 직권남용이라 해도 부족하지 않을 수사지휘권을 발동했으니 사퇴는 당연한 수순”이라며 “한명숙 뇌물사건은 1억 수표 추적 결과는 물론, 구속된 뇌물 공여자 한만호가 가족 등 접견을 하면서 한명숙이 돈 받아먹고 돌려주지도 않는다고 말하는 구치소 녹취파일, 한명숙의 보좌관이 2억 원을 돌려주었고 그 직후 한명숙과 한만호가 통화한 사실이 확인되는 등 객관적인 증거가 차고 넘친다”고 비판했다.
고 이희호 여사의 빈소에 방문한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진=최준필 기자
김예령 국민의힘 대변인도 3월 20일 논평을 내고 “아무리 정권이 부정의를 정의로 둔갑시키려 해도 엄중한 법치주의 위에 설 수 없다는 사실이 다시 증명됐다”며 “그릇된 판단으로 국민과 나라를 혼란스럽게 만든 이들은 그 책임을 져야 한다”며 박 장관 사퇴를 요구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간사인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은 3월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예상된 결과였다”며 “이번 ‘한 전 총리 구하기’는 서울중앙지검과 대검이 모두 무혐의 결론을 낸 사건에 대해 박 장관과 더불어민주당이 앞장서 법과 원칙을 무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장관 행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모습이다. 김남국 민주당 의원은 3월 22일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법무부 장관으로서) 해야 하는 수사지휘였다. 한 전 총리를 정치적으로 구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검찰의 명백한 위법 수사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대검회의의 판단은 제 식구 감싸기이며, 적절하지 않은 판단이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민주당 내부에선 박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이 이해가 안 간다는 의견도 나온다. 친정부 인사가 아닌 조남관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검찰 수장으로 있는 상황에서 검찰 불기소 결정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는 지적이다. 시기도 문제다. 박 장관은 모해위증 공소시효가 끝나는 3월 22일이 임박한 만큼 최후 수단을 썼다는 입장이지만 4·7 재보궐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논란을 만들 필요가 있었느냐는 목소리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박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을 두고 “장관이 되지도 않을 걸 했다는 것에 있어서 관리상의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선거엔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민주당의 또 다른 의원은 관련 사안에 대해 “내가 말할 사안은 아닌 것 같다”면서도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이지만 선거를 앞두고 각을 세울 필요가 있었을까 싶은 생각은 있다”고 전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검찰과의 힘겨루기에서 승리한다고 해도 현 정부 여당이 정치적으로 취할 실익이 크지도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이종현 기자
박 장관이 검찰과의 힘겨루기에서 승리한다고 해도 정부 여당이 정치적으로 취할 실익이 크지도 않다는 분석이다. 재수사 끝에 당시 검찰 수사팀의 모해위증교사 혐의가 입증되고, 한 전 대표가 불법 정치자금을 한 전 총리에게 줬다는 진술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한 전 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를 뒤집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 전 대표가 최소 3억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만든 사실이 인정되고, 그 자금이 한 전 총리 쪽으로 흘러 들어가 한 전 총리 동생이 한 전 대표 명의로 발행된 수표를 전세 자금으로 활용한 사실이 명확해 한 전 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가 뒤집힐 여지가 거의 없다는 것이 법조계 중론이다.
이번 사태가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지만 대체로 큰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가덕도 신공항’과 같이 ‘한명숙 사건’ 또한 선거 때면 반복해서 나오는 문제로 이에 피로감을 느끼는 유권자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것이란 설명이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가덕도 신공항은 부산시장 선거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나타났다.
여론조사 기관인 입소스, 코리아리서치, 한국리서치가 SBS, KBS, MBC의 의뢰로 3월 20일부터 21일까지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가덕도신공항특별법 통과가 부산시장 선거에 영향을 줄 것인가 묻는 말에, 별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여론이 54.1%로 나왔다. 24.7%는 여당 후보에 유리하다고 답했고, 6.9%는 야당 후보에 유리하다고 말했다(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여론조사기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 전 총리가 억울한 면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박 장관 수사지휘권만 놓고 보면, 이 문제를 다시 끄집어내는 건 여론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며 “여론은 뭐가 맞고 틀리고보다는 이 문제가 자꾸 거론되는 것에 피로감을 느낀다. 여론의 관심을 끌지 못하니 선거에 영향도 미치지 못할 거다. 정치인의 행보는 선거에 득이 돼야 하는데 아무런 관심도 끼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득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