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어른들은 몰라요’ 이유미 “욕설·노출, 다 내려놓고 찍었죠”

찐배우 되고 싶어 고교 자퇴 “후회 안해”…안희연과 첫 호흡 “그녀는 사랑 그 자체”

[일요신문] ‘문제작’ ‘비공식 천만 영화’ 등의 수식어로 유명한 영화 ‘박화영’을 접한 이들이라면, 주연이 아님에도 어느 순간부터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고정됐던 캐릭터를 기억할 것이다. 사회와 가정, 학교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해 붕 떠 있는 ‘거리의 아이들’ 가운데 그야말로 하늘을 붕붕 날아다니는 듯한 알 수 없는 아이. 바람에 휘날리는 얇은 종잇장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이 맥 빠지는 말투와 목소리, 그런데도 묘하게 해맑은 이 캐릭터 ‘세진’을 좀처럼 잊을 수 없는 관객이라면 그가 빚어낸 또 다른 이야기 ‘어른들은 몰라요’에도 자연스럽게 눈길이 향할 수밖에 없을 터다. 

전작인 ‘박화영’에 이어 이번 ‘어른들은 몰라요’에서도 세진 역을 맡게 된 배우 이유미. 사진=바로엔터테인먼트 제공

“‘박화영’에서 세진이는 촬영 회차도 많지 않았고, 기능적이거나 이미지적으로만 존재했어요. 그런데 ‘어른들은 몰라요’에서는 이해하지 않으면 정말 이상한 애가 돼 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얘는 왜 이럴까요, 어떤 걸까요?’ 하고 물으면 감독님은 제가 온전히 느끼고 생각할 수 있도록 힌트만 주셨어요. 제가 처음 물어보니까 감독님이 ‘우리 작품 제목이 뭐지?’ 하시더라고요. ‘어른들은 몰라요’인데, 아! 나 어른이어서 세진이를 모르나(웃음) 하고 고민했던 것처럼 힌트만 주셨던 것 같아요. 그렇게 고민하면서 점점 세진이를 이해하게 되지 않았나 싶어요.” 

세진을 연기한 배우 이유미(27) 역시 그에 대해 “아주 온전하게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다”며 멋쩍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말대로 세진은 배우에게도, 관객들에게도 처음부터 끝까지 “쟤가 대체 왜 저러는 거야?”라는 물음표 가득한 반응을 이끌어 내는 독특한 캐릭터다. 사회 이면에 늘 존재하며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 보거나 만날 수 있는 보편적인 ‘불량 학생’임에도, 보편적인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일반적인 시선에서는 그를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유미의 말마따나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모두 어른이고, 이 작품은 어른들이 모르는, 또는 모르고 싶었던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에 오히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연기를 하고 나니 세진이가 이해가 돼요. 세진이가 바로 내 등 뒤에 서 있다고 생각하며 연기를 할 때 계속 아픈 느낌이 들더라고요. 뭔가 아무렇지 않아하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아픈 느낌. 영화를 보고 나서 마지막에 크레딧 올라갈 때 노래가 나오는데 그걸 들으면서 굉장히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만일 세진이에게 내가 존재했다면 나는 어떤 어른이었을까, 세진이는 어떤 시선으로 어른을 바라보고 있는 걸까, 무슨 기분일까… 분명 내가 연기해서 아는데도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되는 그런 마음이 드는 영화 같아요.”

세진을 연기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 가운데 하나로 이유미는 ‘욕설 대사’를 꼽았다. 사진=바로엔터테인먼트 제공

‘박화영’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는 ‘어른들은 몰라요’ 속 세진은 가정과 학교, 사회로부터 내몰린 외딴 섬 같은 존재다. 우정이라고 생각한 친구는 다른 친구들 앞에서 허세를 부리기 위해 자신을 폭력으로 내몰고, 사랑이라고 생각한 선생님은 임신한 세진을 귀찮고 성가신 존재로 취급한다. 누구에게도 이해 받을 수 없는 세진은 다시 거리로 나와 ‘성공적인 유산을 위한 여정’에 나선다. 이 과정에서 또 다른 거리의 아이들 ‘주영’(안희연 분)과 ‘재필’(이환 분, 감독)을 만나게 되면서 그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위선적인 어른과 사회를 낱낱이 보여주는 것이 이 영화의 주된 스토리다. 

세진을 연기하면서 그를 이해하는 것 외에 이유미가 꼽은 가장 어려웠던 점 가운데 하나는 그의 욕설 대사라고 했다. 대본의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욕이거나 비속어이거나, 아니면 인터넷에서나 쓸 법한 10대 아이들의 말투였던 탓이다. 대사와 캐릭터가 처한 상황에 맞춰 변화하는 세진의 의상 콘셉트도 소화해내기 다소 어려웠다는 후일담을 이야기해주기도 했다. 숏 팬츠나 몸의 굴곡이 드러나는 하늘하늘한 원피스, 다양한 컬러로 장식된 점퍼 등은 평소엔 절대 입을 수 없는 옷이었다고.

“제가 욕을 평소에 그렇게 하진 않거든요(웃음). 친구들끼리 있을 때는 단순한 욕을 쓰기도 하지만 그래도 평상시에 그렇게 욕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 게 좀 컸어요. 아무래도 이유미라는, 저라는 사람에게는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게 너무 많아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세진이를 준비하면서는 그냥 주변의 시선을 다 신경 안 쓰게 됐어요. 제가 또 평상시에 옷을 입을 때 노출을 하면 안 되는 줄 알았거든요, 남의 눈에 피해가 갈까 봐(웃음). 그런데도 세진이를 연기하며 내가 좋아하는 색을 다 입고, 아무거나 주워 입어도 너무 편한 거예요. 그 거리낌 없는 느낌이 너무 좋더라고요.”

중학생 때부터 연기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이유미는 올해로 데뷔 12년 차를 맞이했다. 사진=‘어른들은 몰라요’ 스틸컷

극 중 세진을 유일하게 이해하는 ‘유산 여정의 동반자’ 주영 역으로는 걸그룹 EXID의 하니가 낙점돼 영화 개봉 전부터 눈길을 끌기도 했다. 하니 아닌 안희연으로 스크린 데뷔를 당당히 마친 그와의 호흡에 대해 이유미는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감독님이 주영 역이 결정됐다고만 말씀해 주시고 누군지는 안 알려주시는 거예요. 제가 통화를 하긴 했는데 목소리만 듣고는 누군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러다가 워크숍에서 처음 보고 진짜 우와, 너무 신기하다(웃음)! TV에서만 보던 사람이 검은 티에 청바지를 입고 등장하는데, 이렇게 예쁜 사람이 내 앞에 있다! 이런 느낌이었어요(웃음). 희연 언니는 연기할 때 모습이 정말 너무 멋있었고, 연기를 하기 전 서로 소통하고 얘기할 때 언니의 생각을 들을 때마다 더 멋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연기할 때도 이미 사람으로서의 희연 언니를 너무 사랑하니까, 그 믿음으로 굉장히 편하게 또 안정감 있게 호흡을 맞추고 할 수 있었죠.”

‘박화영’에 이어 KBS2 ‘땐뽀걸즈’와 이번 작품 ‘어른들은 몰라요’, 또 공개를 앞두고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까지 이유미는 특징적인 동안을 살려 10대를 연기하는 일이 많았다. 요즘 아이 그 자체를 천연덕스럽게 연기하는 이유미를 보고 있자면 그의 학창시절이 대충 가늠될 것도 같은데, 정작 배우 본인은 그때의 추억이 거의 없다고 했다. 2009년 데뷔해 학교와 일터를 오가던 이유미는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자퇴하고 본격적인 연기의 길을 걸었다. 어느덧 데뷔 12년차의 어엿한 성인 배우로서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아쉬움이 남지는 않았을까. 이에 이유미는 “아쉬움은 있더라도 후회는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중학생 때 데뷔했어요. 중1 때부터 배우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연기를 계속 배우며 엑스트라, 단역으로 출연하고 홈쇼핑에도 엄마와 함께 나왔었죠. 안 해 본 게 없어요. 오히려 사회생활을 더 빨리 한 느낌이랄까. 솔직히 학창시절의 추억이 없는 건 아쉽긴 하죠. 하지만 꾸준히 차근차근 조금씩 다져왔기에 지금의 내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렇게 여기 앉아서 인터뷰도 할 수 있고(웃음). 아쉬운 건 있더라도 후회는 하고 싶지 않아요.”

김태원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