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메갈 거치며 혐오표현 극단화…2030 남성들 “억울” 호소, 징병제 공방으로 이어져
젠더갈등이 점점 더 큰 사회적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14일 방송인 공서영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작성한 “우리동네 배라(배스킨라빈스) 힘죠”라는 문구가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힘죠’가 ‘힘줘’를 변형한 말로 남성 혐오 사이트 메갈리아(메갈)에서 동성애자 비하, 남성 혐오 단어로 사용한다는 이유에서다. 공서영은 이후 ‘힘내다’와 ‘힘주다’의 사전적 의미를 공유하며 “제가 이렇게 알고 골라 쓴 표현이 이미 다른 의미로 많은 분들께 받아들여지고 있는 줄 전혀 몰랐다”고 해명했다.
젠더갈등이 최근 메갈과 일간베스트(일베)에서 쓰이는 언어에 대한 논쟁으로 번지면서 온라인상에선 끊임없이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무심코 쓴 단어가 이미 메갈과 일베에서 특정 성별을 혐오하는 말로 쓰이고 있으며, 이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 말을 쓰면서 논란의 표적이 되는 사례가 많아진 것.
지난 3월 카카오에서 ‘허버허버’ 표현이 들어간 이모티콘을 판매 중단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허버허버는 사용 초기 ‘뜨거운 음식을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표현한 단어로 사용됐지만 한 여성 커뮤니티에서 남자친구가 음식을 급하게 먹는 모습을 헐뜯는 과정에서 유행한 단어라는 주장이 나오면서 ‘남성 혐오 표현’이 됐다.
반대로 여성 혐오 표현을 사용해 비판받은 사례도 적지 않다. 최근 서울의 한 편의점은 아르바이트생 모집 공고를 올리면서 ‘페미니스트가 아니한 자’, ‘오또케오또케 하는 분 지원하지 말라’고 썼다. ‘오또케오또케’는 여성이 급한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어떡해’만 반복해 외친다는 의미로 여성 혐오 표현으로 알려져 있다. 해당 공고는 성차별적이라는 비판이 일어난 뒤 삭제됐다.
젠더갈등과 언어논쟁은 2010년 국내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서 갈라져 나온 일베에서 시작됐다. 일베는 개설 이후 여성 혐오와 패륜 등으로 여러 차례 물의를 빚었다. 2015년 8월 이에 대항하겠다며 디시인사이드 이용 여성들이 메갈 사이트를 개설했다. 이들은 ‘여성 혐오에 맞서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남성 혐오 언어폭력, 남성 도촬 등의 문제를 일으켜 2017년 운영 중단됐다. 이후 극단 여성주의 성향 이용자들이 워마드 등으로 옮겨갔다. 이후 갈등은 점점 더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이 같은 갈등에 현재 대부분 2030 남성은 억울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일부 극단주의자들 때문에 사태가 심화한 것이며 자신들은 젠더갈등의 직접적 원인 제공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과거부터 이어져 온 여성차별 문제의 가해자는 기성세대”라며 “이들이 저지른 성차별 행태를 2030 여성들이 짚고 고쳐나가는 과정에서 2030 남성들까지 가해자로 몰렸고 이들이 억울함을 토로하다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여성도 징병대상에 포함시켜 주십시오’라는 청원이 게재됐다. 젠더갈등의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사례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젠더갈등은 결국 여성 징병제 논의로 번졌다. 지난 19일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엔 ‘여성도 징병대상에 포함시켜 주십시오’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성평등을 추구하고 여성의 능력이 결코 남성에 비해 떨어지지 않음을 모두가 인지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병역의 의무를 남성에게만 지게 하는 것은 매우 후진적이고 여성비하적인 발상”이라며 “여자는 보호해야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나라를 지킬 수 있는 듬직한 전우가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해당 청원에는 22일 오후 2시 14분 기준 18만 8146명이 동의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젠더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뾰족한 수가 없다고 말한다. 다만 정치·경제·사회분야 등 다양한 곳에서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젠더갈등을 이용한 정치인들의 여론몰이, 경제 불평등, 페미니즘 관련 교육의 부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현 상황까지 왔다”며 “남녀 혐오 표현부터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신호이며 더 심각해지면 특정 성별에 대한 ‘묻지마 살인’도 발생할 수 있다”고 강하게 경고했다. 김 교수는 페미니즘의 뜻이 ‘남녀평등’이 아닌 ‘여성 우월’로 인식되는 것을 지적하며 “어렸을 때부터 사회 심리와 젠더 관련 교육을 철저히 진행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젠더갈등에 근간을 둔 언어 논쟁에 대해서는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인크루트와 두잇서베이에서 20~50대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혐오표현의 법적 규제 필요성’에 대해 35%가 ‘매우 공감한다’, 30%가 ‘약간 공감한다’라고 밝혔다. 즉 절반 이상이 남녀 혐오 표현에 대해 정부에서 규제해야 한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표현 규제가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박주화 국립국어원 공공언어과 학예연구사는 “남녀 혐오 표현은 단순히 사용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다”며 “구성원들의 인식과 사고를 바꾸고 사회적으로 의식 개선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