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스쿼드’로 시작해 에인절스전 인상적 데뷔…이제 벽 하나 넘어, 치열한 생존경쟁 예고
앙현종은 지난 4월 27일, 꿈에 그리던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밟았다. 인상적인 투구를 펼쳤지만 앞으로도 경쟁을 이어나가야 하는 처지다. 사진=이영미 기자
선발투수가 3이닝도 못 던지고 내려간 경기를 7회까지 책임진 양현종 선수는 마운드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했고,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날 경기 후 진행된 화상 인터뷰에서 양현종은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른 소감으로 “(내가) 어떤 선수인지 보여주고 싶었다. 안타를 많이 맞았지만 첫 등판치고는 재미있게 던지고 내려온 것 같다”고 말했다.
양현종의 데뷔전 소감은 이전에도 비슷하게 소개된 적이 있었다. 3월 8일 미국 애리조나주 서프라이즈 스타디움에서 펼쳐졌던 LA 다저스전에서 팀의 마지막 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양현종은 텍사스 입단 후 첫 등판한 소감을 이렇게 설명했다.
“긴장보다 설레는 마음으로 마운드에 올랐다. 관중들도 있어 재미있게 던졌다. 아직 내 투구가 100%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조금씩 좋아지고 있고 다음 마운드에 올라갔을 때 내 공을 던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양현종은 시범경기 데뷔전은 물론 메이저리그 데뷔전에서도 “재미있게 던졌다”는 말을 강조했다. 메이저리그를 도전과 배움의 무대로 인식하는 걸 넘어 재미를 앞세웠다. 현실은 재미와 동떨어진 냉정하고 살벌한 경쟁뿐이지만 그는 그럼에도 ‘재미있는 시간들’이라고 애써 위로 받으며 인내심을 갖고 빅리그 데뷔를 기다려온 것이다.
양현종은 메이저리그 초청선수 신분으로 치른 5차례 시범경기에서 마지막 밀워키 브루어스전을 제외하고는 선전했다.
지난 3월 8일 LA 다저스전에서 시범경기 첫 등판 기회를 잡았고 당시 1이닝 2피안타 1피홈런 1탈삼진 1실점을 기록한 바 있다. 이어 3월 14일 밀워키 브루어스전에서는 팀의 3번째 투수로 나서 2이닝 1피안타 3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3월 20일 다시 LA 다저스와 맞붙었다. 5회말에 등판한 양현종은 무실점으로 이닝을 마무리했지만 6회 1실점 후 7회 삼자범퇴로 이닝을 마쳤다. 3월 25일 신시내티 레즈와의 원정에는 시범경기 처음으로 불펜이 아닌 선발 투수로 등판한다. 이날 양현종은 3⅓이닝 무사사구 5피안타 2탈삼진 2실점을 기록하면서 마운드에서 경쟁력을 보여줬는데 가장 아쉬웠던 등판은 마지막 시범경기 등판이었던 밀워키 브루어스전이었다.
시즌 개막을 앞두고 텍사스 홈구장인 알링턴 글로브라이프필드에서 펼쳐진 밀워키전은 빅리그 로스터 진입을 향한 최종 테스트 무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양현종은 6회초 밀워키가 앞서고 있는 2-0 상황에서 세 번째 투수로 등판해 선두타자 크리스티안 옐리치를 볼넷으로 내보내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가르시아와 재키 브래들리 주니어를 외야 플라이로 처리했으나 로렌조 케인과 오마르 나바레즈를 연속 볼넷으로 내보내며 2아웃 만루 위기를 자처했고, 올랜도 아르시아에게 2타점 적시타를 얻어맞았다.
결국 책임주자 둘을 남기고 이닝을 마치지 못한 상태로 강판됐으며 당시 평균자책점은 5.40으로 대폭 상승했다. 양현종은 이날 경기 관련해서 “내 기억 속에 지우고 싶은 경기”라고 말할 정도로 악몽 같았던 순간임을 인정했다.
이후 양현종은 캔자스시티 로열스와 개막전 원정에는 동행했지만 로스터 진입이 아닌 ‘택시 스쿼드’에 포함돼 팀의 원정 경기 때만 선수단에 합류하는 형태로 시즌을 맞이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선수들의 개인 이동이 어려워지자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로스터 후보 5명을 원정에 동행할 수 있도록 특별 규정을 만들었다. 택시 스쿼드에 포함된 선수들은 경기 때 더그아웃에 들어갈 수 없고 클럽하우스에서 TV로 경기를 지켜보거나 웨이트트레이닝으로 개인 훈련을 이어간다. 양현종은 그동안 원정 때는 택시 스쿼드로 빅리그에 합류했고, 홈경기가 펼쳐질 때는 마이너리그 훈련지인 라운드록 대체 캠프에서 일정을 소화했다.
4월 27일 LA 에인절스전을 통해 인상적인 데뷔전을 치른 양현종은 빅리그에서 더욱 발전된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 중이다. 30일 텍사스 홈구장인 알링턴 글로브라이프필드에서 양현종은 한층 더 밝은 표정으로 선수들과 어울리며 재미있게 훈련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본인 투수 아리하라 고헤이, 한국계 선발 투수 데인 더닝과도 남다른 친분을 과시했다.
텍사스 구단은 양현종이 KBO리그에서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했고, 국가대표 선수로 국제무대에서도 좋은 성적을 올린 부분을 자주 언급했다. 그런 선수가 시즌 초반 빅리그가 아닌 마이너리그 대체 캠프에 머물며 택시 스쿼드에 포함돼 원정 경기에만 동행하는 환경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높이 평가한 것.
이제 시작이다. 하나의 벽을 넘어선 양현종한테는 또 다른 벽이 기다리고 있다. 생존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하고, 살아남아서 자신의 진가를 보여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그는 다시 마이너리그로 내려갈 수도 있다. 양현종이 두 번째 등판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지 매우 궁금해진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