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 팀 3년 연속 우승하자 숙녀 팀 연구생에 문호 개방 “신사 팀 호되게 당할 수도”
신사팀이 만 40세 이상 기사들이 출전하는 것은 예년과 같은데 숙녀팀 출전 자격은 올해부터 변동이 생겼다. 그동안 연구생 출전을 허용하지 않았는데 올해부터 이 빗장을 풀어버린 것. 최근 숙녀팀이 신사팀에 3년 연속 패하는 등 맥을 추지 못하자 주최 측에서 과감하게 연구생들의 출전을 허용한 것으로 보인다. 예선은 역대 최고 인원이 도전장을 던졌다. 신사 40명, 숙녀 45명. 약 7 대 1의 경쟁률이었다.
신사와 숙녀 대결이 연구생 꼬마 숙녀들의 수혈이 필요할 정도로 추가 기운 것은 신사팀 김희중 선수의 지분이 크다. 그는 12회부터 14회까지 신사팀이 3연속 우승을 차지하는데 혁혁한 전과를 세웠다. 12회 2승, 13회 2승에 이어 작년 14회 대회에선 신사팀 네 번째 주자로 등장해 이루비, 권가양, 박예원, 조은진 등 최정예 숙녀 4인방을 잇달아 꺾고 신사팀 우승을 결정지어 버렸다.
숙녀팀에게 수년간 요주의 대상으로 꼽혀온 전직 프로 김희중은 올드팬들에겐 ‘유쾌한 사나이’ 혹은 ‘속기의 달인’이라고 잘 알려져 있는 인물. 올해 72세인 그는 전성기 시절 기왕전에서 수차례 우승하여 ‘기왕전의 사나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특히 속기에 능해 ‘속기의 달인’이라 불릴 정도였다. 역시 속기파인 서능욱 9단과의 공식 대국에서 시작 후 계가까지 총 8분이 걸렸다는 일화는 지금도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1999년 돌연 일신상의 이유를 들어 은퇴를 선언했는데 2011년 무렵부터 아마대회에 출전하고 있다.
“프로 무대에서 타이틀을 네 번이나 차지했던 사람이 은퇴 후 아마추어 대회에 나오는 건 좀 그렇다”고 태클을 거는 소리들도 있었지만 본인은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올해부터 내셔널바둑리그 YES평창 선수로 뛰는 등 오히려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일단 돈이나 명예를 좇는 게 아니라 바둑이 좋아 아마대회에 나오는 걸 다 알기 때문에 이젠 그에게 딴죽 거는 사람도 없다.
23일 열린 숙녀팀 선발전은 일단 주최 측 바람대로 된 듯 보인다. 숙녀팀은 김희수·고윤서·이서영·김민서·서수경·이나현이 예선을 통과해 본선에 이름을 올렸는데 이들 전원이 지지옥션배에 처음 모습을 보이는 새 얼굴들이다. 특히 현재 한국바둑고에 재학 중인 서수경을 제외하고는 모두 10대 연구생 소속이라는 게 특징. 서수경이 소속된 한국바둑고도 연구생 시스템과 크게 다를 게 없어 전원 연구생으로 구성됐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이에 맞서는 신사팀은 박휘재·김동섭·이철주·김희중·김세현·양창연이라는 진용인데 예년과 별반 다르지 않은 전력이다. 여기에 와일드카드로 시니어랭킹 1위 최호철 선수가 가세하는데(숙녀팀은 여자랭킹 1위 송예슬 선수가 와일드카드) 노장 김희중 선수를 필두로 젊은 피 최호철, 이철주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
신사팀 김동섭 선수는 “올해부터 숙녀팀에 여자 연구생이 출전한다고 들었는데 본선에 오른 전원이 연구생이어서 당황스럽다. 그동안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상대들이어서 더 그렇다. 다만 여자 연구생들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대충 들어서 알고 있다. 올해는 아마도 좋은 승부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숙녀팀 서수경 선수는 “3년 연속 숙녀팀이 졌다고 하는데 이번엔 열심히 공부하는 짱짱한 연구생들이 대거 포진해서 신사팀도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나는 첫 출전인데 한판이라도 이겨서 숙녀팀 승리에 보탬이 되고 싶다”고 임전소감을 말했다.
또 현재 내셔널바둑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김민주, 조은진, 송예슬을 차례로 꺾고 본선에 오른 12세 연구생 이나현 선수는 “신사팀에 선발된 분들의 이름을 오늘 봤는데 다 처음 듣는 분들이다. 워낙 실력이 강한 언니들이 많아서 그냥 경험 쌓을 겸 나왔던 거라 본선에 오를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이렇게 선발됐으니 제 장점을 잘 살려서 최대한 이기고 싶다”고 말했다.
오랜 기간 해설자로 활약하며 지지옥션배를 지켜본 한철균 9단은 “이번 선발전 결과를 확인한 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정말 극과 극의 대결이라는 점이다. 남녀 성 대결에 노소(老少)의 대결도 더해진 느낌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번엔 시니어 팀이 호되게 당할 수도 있다고 본다. 숙녀 선발전의 경우 기존 강자들이 전부 탈락하고 그 자리를 10대 연구생 소녀들이 메웠다. 김희중 선수를 아는 사람들이나 무서워하지 모르는 사람들은 겁먹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숙녀팀이 부담 없이 임할 텐데 그러면 일방적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본다. 다만 어린 친구들이 스튜디오 방송대국 경험이 없다는 점은 약점이 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지지옥션배 아마대항전 본선 개막전은 31일 벌어질 예정이며, 매주 월화 오후 7시 바둑TV를 통해 생방송된다. 제한시간은 각자 20분에 60초 5회가 주어진다. 우승상금은 1500만 원.
제4기부터 시작된 지지옥션배 아마대항전에서 신사팀은 4·7·10·12·13·14기 대회를 우승했고, 숙녀팀은 5·6·8·9·11기를 우승했다. 최근엔 3년 연속 신사팀이 승리했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