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명 확보 땐 원사이드 게임…이재명 세몰이에 ‘반이 연합군’ 개헌론 지피며 견제
퇴로 없는 전쟁의 막이 올랐다. 포스트 문재인을 향한 여권 ‘빅3(이재명 경기도지사·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정세균 전 국무총리)’의 진군이 시작됐다. 1차 목표는 당내 경선 통과다. 이들의 시선은 이미 예비경선(컷오프)을 넘어 본경선으로 향해 있다. 빅3 캠프는 내부적으로 ‘100만 명’, ‘150만 명’ 등의 선거인단 목표치를 세웠다. 밀리면 끝이라는 각오로 전국 조직을 풀가동하는 전시 체제에 돌입했다.
“100만 표 확보 전쟁이 아니겠느냐.(여권 한 관계자)”
민주당이 내부적으로 세운 대선 경선 선거인단 목표치는 300만 명 이상이다. 이는 2012년 민주통합당(108만여 명)과 2017년 민주당(214만여 명)보다 1.5∼3배가량 많은 수치다. 빅3 경선이 예상 밖으로 치열한 접전으로 흐를 땐 이보다 더 많은 선거인단이 참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소 300만 명∼최대 350만 명’이 현실적 목표치인 셈이다. 다만 이들이 전부 대선 경선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그간 민주당 대선 경선 투표율은 60%를 밑돌았다.
2000년 이후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가장 높았던 투표율은 2002년으로, 58%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인제 대세론을 격침했던 새천년민주당 대선 경선은 한국 정당 사상 국민참여경선을 처음 도입한 선거다. 친노(친노무현) 적자가 없었던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경선 투표율은 47%였다. 문 대통령과 손학규·김두관·정세균이 맞붙었던 2012년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투표율은 57%, 문 대통령과 안희정·이재명·최성이 겨뤘던 2017년 민주당 대선 경선 투표율은 52%였다. 당 경선 투표율이 높지 않은 것은 그만큼 조직 동원의 허수가 많다는 뜻이다.
이를 기준으로 추산하면, 이번 민주당 경선 투표율도 ‘40% 후반(흥행 실패 시)∼50% 후반(흥행 성공 시)’ 사이를 오갈 것으로 관측된다. 선거인단 320만 명, 투표율 55% 수준으로 가정하면 실제 투표자 수는 176만 명이다. 이 경우 과반을 넘는 90만 명 선거인단만 확보해도 결선 투표 없이 본선에 진출할 수 있다. 선거인단 100만 명 확보 땐 원사이드(일방적) 게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대선 경선이 ‘100만 싸움’으로 불리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앞서 문 대통령이 2012년과 2017년 대선 경선에서 차지한 득표수는 34만 7183표(56.5%)와 93만 6419표(57.0%·이상 득표율)였다. 문 대통령은 두 차례 모두 과반 득표에 성공했다. 친문(친문재인)계 한 의원은 매직 넘버를 100만 표로 설정한 데 대해 “당내 경쟁자가 없었던 문 대통령도 달성하지 못한 조직표”라며 “이번에도 어느 누구도 달성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재명·이낙연·정세균 캠프는 내부적으로 100만 표 이상을 목표치로 세우고 ‘영혼까지 끌어모아 한 명이라도 더 사수하라’는 ‘영끌 특명’을 내린 상태다.
이 지사와 이 전 대표 측은 각각 100만 명을 목표치로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조직력의 SK(정세균)’로 불리는 정 전 총리 측은 150만 명 이상도 자신하는 분위기다. 다만 정 전 총리 측이 선거인단을 가장 많이 확보할지는 미지수다. 당심도 결국 민심을 따라갈 수밖에 없어서다. 이는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도 증명됐다. 86(80년대 학번·60년대 생)그룹인 우상호 의원은 당시 서울시의원 다수를 확보했지만,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에게 큰 격차로 패했다.
우상호 캠프에 합류했던 한 인사는 “조직보다 인지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선거였다”고 말했다. 정세균 캠프보다 이낙연 캠프가, 이낙연 캠프보다는 이재명 캠프가 더 느긋한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국회 한 보좌관은 “이 지사의 조직력이 약하다고 평가받았지만, 최근 기세를 보면 여의도 상륙작전을 방불케 한다”고 말했다.
이재명 지사의 조직은 △전국구 외곽 조직인 민주평화광장 △현역 의원 중심 성장과 공정 포럼(성공포럼) △학계 및 전문가그룹 △경기도와 성남시 등 최측근 그룹 등으로 나뉜다. 특히 ‘성공과 공정 포럼’에는 김병욱 민형배(이상 공동대표), 정성호 안민석(이상 고문)을 비롯해 현역 의원 40명 가까이 합류했다. 조정식 김성환 이해식 의원 등의 이해찬계와 김남국 김병욱 의원 등의 8인회를 합치면 두 자릿수를 웃돈다. 전체 30% 수준인 약 50명 안팎의 현역 의원을 확보한 셈이다. 여의도 안팎에선 “이 지사를 따라다니는 비주류 꼬리표를 떼야 할 것 같다”는 말도 나온다.
본격적인 세 불리기에 나선 이 지사의 행보는 거침없다. 5월 12일 창립대회를 연 민주평화광장은 6월 15일 성장과 공정 포럼과 공동으로 서울 출범식을 개최한다. 해외 조직까지 포함한 ‘공명포럼’은 6월 말 공식 출범할 예정이다. 재외국민 선거인단 모집을 겨냥한 공명포럼에는 10만 명 안팎이 참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앞서 출범한 민주평화광장도 1만 5000명의 발기인이 참여했다. 민주당 내 청년 당원과 정의당 내 일부 인사들도 이재명 캠프로 이동했다. 정의당 한 당직자는 “이재명 지지도가 높아질수록 정의당의 대선 후보가 가려질까 노심초사하는 이들이 많다”고 우려했다.
이 지사가 진격하자, 이 전 대표와 정 전 총리는 반이재명 전선을 고리로 협공 작전을 개시했다. 그간 직접 언급을 삼갔던 대선 경선 연기론과 개헌론 승부수 등을 띄운 게 대표적이다. 정 전 총리는 6월 7일 언론 인터뷰와 기자들 백브리핑 과정에서 “국민의 관심 속에서 경선을 치르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 전 대표도 같은 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당내 의견이 분분하다면 지도부가 빨리 정리해주는 게 옳다”고 가세했다. 이 전 대표 측 핵심 관계자도 “본선 승리를 위한 길이 뭔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이 지사를 압박했다. 후발 주자들도 측면 지원했다. “연기하는 게 맞다(최문순 강원도지사)”, “백신 문제가 일단락될 때 하는 게 국민에 대한 예의(이광재 의원)”, “우리만의 경선으로는 보궐선거 아픔·패배를 반복할 것(김두관 의원)” 등의 발언을 쏟아냈다.
반이재명계는 하루 만에 다시 개헌론을 꺼내며 이 지사를 때렸다. 이 전 대표는 토지공개념 3법 부활을, 정 전 총리는 대통령 4년 중임제를 각각 제안했다. 이 전 대표가 토지공개념 개헌을 띄우자, 대권 후보인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까지 화답하며 반이재명 연합군에 뛰어들었다. 개헌 이슈를 통한 대선판을 흔들려는 의도로 보인다. 앞서 이 지사는 개헌론에 대해 “경국대전을 고치는 일보다 국민의 구휼이 더 중요한 시기”라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특히 당 안팎에선 송영길호가 ‘부동산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에 초강수를 띄운 점을 주목하고 있다. 앞서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6월 8일 국민권익위원회로부터 부동산 불법 의혹을 받은 12명 의원에 대해 ‘나가라’는 초강수 조치를 단행했다. 비례대표인 윤미향·양이원영 의원에 대해선 출당 조치했다. 나머지 10명 의원에겐 자진 탈당을 권유했다.
이 중 양이원영 의원을 비롯해 김한정 임종성 문진석 서영석 의원은 이재명계다. 당의 초강수 조처를 받은 의원 중 절반가량이 이재명계로 확인되자, 당 내부에선 “친문(친문재인)계가 밀어붙인 게 아니냐”는 소문이 확산됐다. 당일 오전 열린 비공개 최고위원에서는 친문계 강경파인 강병원 김용민 최고위원이 “모두 탈당시키자”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3후보를 띄우려는 친문계의 이재명 견제가 본격화됐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국민권익위가 콕 집은 12명의 의원 중 당 주류 인사가 없는 점도 친문계가 강한 드라이브를 거는 데 한몫했다. 오영훈 김주영 윤재갑 의원은 NY(이낙연)계다. 김수홍 김회재 의원은 SK(정세균)계로 분류된다.
이 지사를 바짝 뒤쫓는 이 전 대표와 정 전 총리도 친문계의 강경 드라이브에 발맞춰 세몰이를 본격화하고 있다. 이 전 대표의 전국 지지 모임인 ‘신복지 포럼’은 6월 하순까지 17개 시·도에서 창립식을 마칠 예정이다. 최근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비롯한 공중전을 강화하고 있다. 이 전 대표는 6월 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공개 활동에 나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향해 “스스로에게 제기된 문제들 앞에 공정한가”라고 직격했다. 정 전 총리는 6월 3일 ‘균형사다리 포럼’을 발족, 기존의 ‘우정포럼’과 ‘국민시대’ 등 지지 모임을 묶어서 관리키로 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