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질 등 문제 행동 방치하면 통제 불가능…소형견에 물린 후 골수염으로 악화 사례도
대형견을 키우는 사람이 산책을 시킬 때마다 듣는 말이다. 그의 옆에는 반려견 케미(래브라도 리트리버)가 두 발을 포개고 앉아 있었다.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개이자 온순한 성격으로 시각 장애인 안내견으로도 자주 활약하는 래브라도 리트리버는 동물보호법이 지정한 ‘입마개 필수 착용 의무 견종’이 아니다. 그럼에도 케미와 그의 보호자는 거의 매일 위와 같은 말들을 듣는다고 했다. 케미는 최근 한 소형견에게 물려 주둥이와 코 부근에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보호자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 했다.
케미의 보호자는 “(소형견이) 갑자기 달려들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속상하긴 한데 큰 개가 작은 개한테 물렸다고 치료비를 요구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잖아요. 큰 상처도 아니고 그냥 넘길 수밖에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소형견의 공격성은 귀여움?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50대 여성이 유기견에 물려 숨진 데 이어 최근 구리시에서도 40대 여성이 대형견에 물리는 등 잇따라 개 물림 사고가 발생하면서 중·대형견 훈육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목줄과 입마개 착용 등 바람직한 산책 문화가 조성되고 있다는 의견도 있지만, “대형견은 무조건 입마개를 착용하라”며 이른바 ‘견종차별’을 하는 사람도 늘었다.
반면 소형견의 공격성은 귀여움으로 치환된다. 온라인에서는 몰티즈와 같은 소형견이 이빨을 내보이며 으르렁거리거나, 물기 위해 달려드는 모습을 “몰티즈는 참지 않아!”라는 유행어와 함께 하나의 콘텐츠로 소비하고 있다. 유튜브에 ‘참지 않아’를 검색하면 몰티즈와 치와와 등 각종 소형견이 짖거나 주인을 물기 위해 달려드는 영상이 셀 수 없이 나온다. 영상 아래에는 “역시 몰티즈는 참지 않는다” “치와와를 건드리지 말아라” “이빨이 너무 귀엽다”는 댓글이 대부분이다. 소형견은 물거나 짖어도 괜찮다는 식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사고방식은 자칫 ‘스몰독 신드롬’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스몰독 신드롬이란, 대형견이었으면 크게 문제 삼았을 입질이나 공격 등을 소형견이라는 이유로 교정하지 않고 내버려두었다가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게 되는 것을 말한다. 보호자를 지나치게 물거나 무시하고 등에 올라타는 행동, 다른 개나 사람을 향해 공격적으로 짖거나 무는 행동, 이 밖에도 다양한 상황에서 개가 보호자의 통제 밖에 있다면 스몰독 신드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원인은 사람에게 있다. 성인만 한 진돗개가 송곳니를 드러낸 채 짖으면 깜짝 놀라겠지만 몰티즈가 같은 행동을 하면 ‘제까짓 것이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라는 생각에 웃어넘긴다. 때로는 더 짖어보라며 개의 화를 돋우기도 한다. 이에 대해 김진희 수의사는 “단순히 귀엽다는 이유만으로 화를 부추기는 행위는 오히려 반려견의 문제 행동을 키울 수 있으며 심리적 불안감도 증폭시킬 수 있다. 소형견은 개체 특성상 대형견보다 예민한 경우가 많은데 이 개들이 왜 그런지부터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형견에게 공격은 생존을 위해 취해 온 자연스러운 방식이다. 몸집이 작은 개들은 먹이 서열에서 늘 아래쪽을 차지해왔다. 위협을 받는 일도 잦아 항상 경계 태세를 갖춰야 했다. 때로는 상대를 먼저 공격을 함으로써 자신이 보기와는 다르게 위험하고 무서운 존재라는 것을 알릴 필요도 있었다. 이 개들에게 공격은 무언가를 취득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최소한의 것을 지키기 위한 행동에 가까웠다. 그렇다 보니 항상 예민하고 신경질적일 수밖에 없다.
김 수의사는 “크기만 작을 뿐, 소형견도 나이를 먹는다. 반려견을 아기처럼 대하지 않고 평범한 개처럼 대할 수 있도록 보호자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또 정기적 운동과 적절한 행동에 대한 보상, 반복적 훈련 등 기본 규칙과 경계를 설정해 적절한 행동과 부적절한 행동을 구별하게 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작다고 넘긴 상처 4주 뒤…
아무리 작은 개일지라도 물렸을 때 생길 수 있는 합병증의 위험성을 간과해서도 안 된다. 분당제생병원 성형외과 탁관철 교수팀이 대한성형외과학회지에 투고한 논문에 따르면 작은 개에게 물렸다가 골수염 등의 감염병으로 악화돼 치료 받은 사례가 적지 않았다. 골수염은 개 물림 사고 후 나타날 수 있는 합병증 가운데 하나다.
논문에 소개된 사례에 따르면 A 씨의 경우 반려견 스피츠에게 왼쪽 엄지손가락을 물렸다가 골수염 진단을 받았다. 부상 당일 진료를 받았던 응급실에서조차 전혀 예상하지 못 했던 결과였다. 진료 당일에 X-선 검사에서는 어떤 뼈 이상도 관찰되지 않았으나 상처를 입은 지 4일 뒤부터 A 씨의 손가락이 눈에 띄게 부풀기 시작하더니 홍반, 관절 결림 등의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참기 힘든 통증에 병원을 전전하던 A 씨는 결국 4주 만에 ‘급성 혈행성 골수염’ 진단을 받았다. 완치까지는 12주가 걸렸다. 이 밖에도 키우던 몰티즈에게 엄지손가락을 물린 B 씨 역시 상처 부위가 골수염으로 악화돼 완치 판정까지 1년이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진은 “골수염은 주로 고양이에게 물린 뒤 나타나는 합병증이지만 개에 물린 상처로 골수염이 발병하면 치료가 더욱 힘들다”며 “개에 물린 경우에는 상처 부위를 신중히 검사해야 하며 초기 검사에서 병원균이 나타나지 않더라도 반드시 감염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