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훼손, 악플과 달리 허위사실 입증 책임 소속사에…폭로 목적 ‘공익 여부’ 주목
#JYP “‘학폭 여부’ 가린 것 아냐”
JYP엔터테인먼트는 연예계 학폭 폭로에서 소속 연예인 두 명이 거론됐다. 보이그룹 스트레이키즈의 현진은 일부 폭로 내용을 인정한 뒤 현재 자숙 중이다. 반면 걸그룹 ITZY(있지)의 리아에 대해서는 폭로 초기부터 “허위사실”이라고 잘라 말하며 즉각 법적 대응에 들어간 바 있다. JYP엔터테인먼트 측에 따르면 리아의 학폭 폭로자 A 씨는 2018년부터 리아에 대한 학폭 폭로를 이어오다가 2020년 12월경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조사를 받는 중에 또 다시 글을 올린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A 씨에게는 지난 6월 13일, 사건을 맡은 인천 연수경찰서의 불송치 결정이 내려졌다. 경찰은 “A 씨가 리아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볼 수 있는 증거가 없어 혐의 없음으로 불송치한 것”이라면서도 “다만 그가 폭로한 내용이 진실인지 여부는 이번 수사 대상이 아니었다. 리아가 학폭 가해자라고 밝혀진 바는 없다”고 설명했다. JYP엔터테인먼트 역시 공식입장을 내고 “경찰은 글 게시자의 내용을 거짓으로 볼 수 있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지 게시물의 내용이 사실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이번 불송치 결정이 리아가 학교 폭력을 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라며 이의신청을 통해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재수사를 요청하겠다고 했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가운데 명예훼손과 관련한 조항에서는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공공연하게 사실 또는 거짓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할 경우’에 한해 죄가 성립된다. 리아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폭로자 A 씨에게 리아를 비방할 목적이 있었는지에 집중해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진 만큼, 이후 JYP엔터테인먼트 측의 요청에 따른 재수사에서는 명확하게 리아의 학폭 여부와 폭로의 목적을 가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A 씨의 폭로 내용의 상당수가 거짓으로 드러날 경우에는 폭로 목적이 공익을 위함인지 여부가 유무죄를 가리는 중요한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이제까지의 연예계 학폭 폭로가 대부분 그렇듯 공익보다는 사적 복수심에 가까운 의도가 드러난 만큼 ‘비방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우려되는 지점이다. 연예 매니지먼트 소송을 다수 맡아온 한 변호사는 “명예훼손 법에서 ‘비방할 목적’이란 적시된 사실이 객관적으로 볼 때 공공의 이익이어야 하고, 행위자도 주관적으로 공익을 위해 그 사실을 적시했다는 점이 인정돼야 한다”라며 “또 그 내용이 객관적으로 국민 모두가 알아야 할 공적 관심 사안인지 아니면 순수한 사적 영역인지도 문제가 된다. 만일 공익이 주된 목적이라면 부수적으로 다른 사익 목적이 있더라도 비방의 의도가 인정되지 않지만, 단순히 ‘가해자에게 사과 받고 싶다’ ‘가해자가 연예계를 은퇴하고 망하길 바란다’는 입장이 주된 경우라면 인정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DSP “폭로자 안 되면 이현주라도 고소”
걸그룹 에이프릴의 전 멤버 이현주에 대한 집단 따돌림·괴롭힘으로 연예계 폭로전의 중심에 섰던 DSP미디어 역시 폭로자를 고소했다가 불송치 결정을 받았다. DSP미디어가 고소한 폭로자 B 씨는 이현주의 고등학교 동기로 지난 5월 28일 이현주의 친동생이 한 첫 폭로에 이어 두 번째로 폭로글을 올린 인물이다.
DSP미디어 측에 따르면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폭로자 B 씨가 이현주로부터 내용을 전해들은 점, 당시 그에 관한 다수의 기사가 배포된 점 등에 비추어 글을 작성하면서 허위의 인식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불송치 결정의 이유”라며 이에 불복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DSP미디어 역시 JYP엔터테인먼트와 마찬가지로 경찰의 불송치 결정이 곧 폭로자들의 폭로 내용이 사실이라는 점을 입증한 게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 DSP미디어는 “폭로자가 불송치라면 허위 내용을 전파하도록 한 책임자인 이현주를 고소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누군가에게서 허위사실을 듣고 이를 전파한 당사자라고 하더라도 전파 당시 허위사실임을 알지 못해 진실이라고 생각했다면 그에게는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렵다. 그런 만큼 이번 폭로전의 ‘원흉’으로 지목된 이현주를 고소하겠다는 것이다.
이 사건 역시 상대를 비방할 목적성이 배제된다면 이현주에 대한 고소도 ‘불송치’ 결말을 맞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실제로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할 만큼 에이프릴 활동 당시 정신적으로 많이 몰려있었다는 점과 멤버들 간의 불화가 존재했다는 점 등을 종합한다면 이현주가 다소 과장된 부분은 있어도 허위로만 폭로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아이돌 그룹 내에서의 괴롭힘은 2020년 AOA 사건 이후 연예계에서도 큰 이슈가 돼 왔기 때문에 그의 폭로가 사익보다는 공익에 더 가깝다고 판단할 수 있다. DSP미디어에게 ‘역전’할 수 있는 객관적 증거가 없는 한 이 사건은 소속사에게 한 없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번 이슈를 ‘악플’과 같은 방식으로 접근한 것이 패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연예매니지먼트 홍보팀장은 “악플은 명확하게 비방의 의도가 있는 상태에서 모욕 또는 명예훼손 발언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게시자의 정보만 안다면 쉽게 고소해 유죄 판결을 받을 수 있고, 이후 민사에서도 승소할 가능성이 높지만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만 놓고 본다면 소속사들도 어려운 싸움”이라고 짚었다. 유포된 내용이 허위임을 입증할 책임이 소속사와 가해자로 지목된 연예인 측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결국 소속사가 매달릴 수 있는 부분은 폭로의 목적이 공익인지, 사익인지일 수밖에 없다는 게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재판까지 가더라도 가해의 정도와 그에 대한 사회적 판단, 폭로로 인해 가해자 측이 입을 수 있는 손해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기에 어린 시기에 발생한 비교적 가벼운 사안일 경우엔 폭로의 주된 목적이 공익으로 인정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