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총장 “신중 결정” 지휘에도 대전지검 ‘월성원전 사건’ 백운규 등 불구속 기소 강행 ‘잡음’
이제 검찰 내부 구성원들은 김오수 총장의 주요 권력 수사 사건 처리 방향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인사와 직제개편 등 굵직한 결정이 끝난 지금, 김오수 총장의 ‘검찰 중립성 확보’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수사 지휘 내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총장은 곧바로 대전 월성 원전 1호기 사건 처리를 놓고 수사팀의 입장과 달리, ‘신중하게 접근할 것’을 지시했다. 내부에서 약간의 기대감마저 사라지고 있다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당초 검찰총장 취임 후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잇달아 언급하며 ‘검찰의 목소리’를 낼 것을 시사했던 김오수 총장은 검찰 인사와 직제개편에서 체면을 구겼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직제개편에 대해 반기를 들며 몇 시간에 걸쳐 입장을 설명했지만, 결국 검사들의 입장을 관철시키기 못했다.
국무회의에서 통과된 검찰 직제개편안을 두고서도 대검찰청은 일선의 목소리를 ‘신중한 톤’으로 법무부에 전달했다는 게 공공연하게 나오는 평이다. 대검은 강력부, 외사부 등 직접수사 부서 축소와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의 직접수사 승인 등에 대한 일선의 부정 의견을 취합해 법무부에 전달했는데, 이 과정에서 김오수 총장이 ‘신중 의견으로 고쳐 법무부에 전달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결국 논란이 많았던 법무부 장관의 직접 수사 승인을 제외하는 게 전부였고, 검찰이 반발했던 형사부의 직접 수사 제한 등은 법무부의 안을 막지 못했다.
인사 역시 법무부 주도로 이뤄졌다. 관심을 모았던 주요 권력사건 수사팀장들이 전부 교체됐는데,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고검장 승진) 등 친정권 성향 간부들의 약진은 대검 검사급에 이어 고검 검사급 인사에서도 두드러졌다. 특히 이규원 검사 등 피고인 신분인 검사들의 영전은 검사들 사이에서 ‘김오수 총장은 무슨 역할을 한 것이냐’는 말을 나오게 하기 충분했다.
익명의 검찰 관계자는 “밖으로는 검사들의 목소리를 많이 반영할 것처럼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강조해 내부에서 기대했던 이들도 있었지만 결국 김오수 총장은 ‘눈치보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이번 직제개편과 인사에서 보여줬다”며 “올바른 검찰로 거듭날 수 있게 하기 위한 고민들을 진짜 하고 있긴 한 것인지 우려가 된다”고 덧붙였다.
김오수 총장과 함께 근무한 적이 있는 검사 출신의 변호사는 “김오수 총장의 장점과 단점은 하나다. ‘윗사람을 잘 모신다’는 게 장점이고 ‘윗사람을 잘 모신다’는 게 단점”이라며 “윗사람의 뜻을 알아채서 먼저 맞춤형으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뛰어난데, 문제는 윗사람이 까다로우면 그 까다로움을 그대로 밑에 요구하는 그런 검사”라고 지적했다.
주요 권력비리 수사는 벌써 이 같은 우려에서 시작된 잡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수원지검 수사팀은 이광철 청와대 행정비서관을, 대전지검 수사팀은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에 대한 기소 의견을 대검에 재차 전달했지만 김오수 총장은 신중한 결정을 지휘했다. 하지만 대전지검은 결국 6월 30일 백운규 전 장관 등의 불구속 기소를 강행했다.
대전지검은 당초 인사를 앞두고 수차례 대검에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채희봉 한국가스공사 사장,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등에 대한 기소 필요성을 보고했다. 7월 2일 수사팀 교체가 이뤄지기 때문에 그 전에 결정짓겠다는 수사팀의 의지가 반영된 행보였다.
하지만 김오수 총장은 노정환 대전지검장이 직접 사건을 보고하는 자리에서 “백 전 장관 등에게 배임 혐의를 추가로 적용하려면 검찰수사심의위원회를 열어야 한다”는 지시를 내렸다. 대검의 반발을 우려해 대전지검은 6월 24일 부장 검사들을 모아 원전 평가서 조작 사건 관련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부장 검사들은 만장일치로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과 채희봉 전 청와대 비서관을 재판에 넘겨야 한다”는 의견을 모았지만, 김 총장은 신중한 접근을 지시했다.
하지만 6월 30일 대전지검은 백운규 전 장관과 채희봉 한국가스공사 사장 등에게 배임 혐의만 제외하고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업무방해 등으로 기소했다. 대전지검은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에 대해서는 ‘한수원에 1481억 원 상당의 손해를 입혔다’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배임) 혐의를 적용했다. 백운규 전 장관에 대해서는 김오수 총장의 지시대로 수사심의위원회를 소집해 기소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게 대전지검의 결정이다.
대전지검은 보도자료에서 “백운규 전 장관이 정재훈 한수원 사장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배임) 및 업무방해교사 혐의에 대해서는 김오수 검찰총장이 직권으로 수사심의위원회 소집 결정을 했다”며 “심의 후 기소 여부에 대해서 결정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김오수 총장의 지시를 따르긴 했지만, 리더십이 흔들릴 수 있는 분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심지어 한 대검찰청 간부는 “(많은 검사들이) 할 말을 다 하지 못하고 지냈지만 대전지검은 (수사를) 잘했다”며 대전지검 수사팀을 격려하는 듯한 말을 내놓기도 했다. 대전지검이 서너 차례에 걸쳐 보고하는 과정을 놓고, 대검 내부에서조차 ‘기소를 왜 미루는지 모르겠다’는 얘기도 나왔다고 한다.
부산 지역의 한 간부급 검사는 “김오수 총장의 ‘수사심의위’는 기소를 하자니 정권 윗선들의 따가운 눈총이 신경 쓰이고, 기소를 안 하자니 사건 성격이나 검사들 내부 판단을 완전 뒤집어야 하는 게 부담스러워 욕먹지 않기 위한 나름의 묘수”라면서도 “하지만 그런 결정이 검사들에게 ‘멋진 리더십’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앞선 검사 출신 변호사는 “서울중앙지검장이나 서울남부지검장 등 굵직한 사건을 지휘하는 보직은 이미 친정부 인사가 잡고 있지 않냐”며 “대검이 어떻게 사건을 지휘하는지가 중요한 상황인데, 검찰 직제개편과 인사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관철시키지 못한 김오수 총장이 전처럼 위의 눈치를 본다면 대선 전까지 검사들도 이에 맞춰 권력 견제 성격의 결정을 내리는 것을 주저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