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원전, 김학의 불법출금 등 권력 사건 수사팀장 전면교체…특수통 밀려나고 형사·기획통 중용
문재인 정부 하반기 들어 이뤄진 검찰 인사 기준이 그대로 적용된 인사이기도 했다. 특수통 출신의 검사들은 계속 비주요 보직으로 밀려났고, 기획통이나 형사부 출신들이 주요 보직에 임명됐다. 특히 서울중앙지검 차장검사 등 주요 보직에는 대부분 친정부 성향으로 분류되거나, 법무부에서 박범계 장관을 보좌했던 검찰 간부들이 임명됐다.
#기존 인사 기조 그대로 유지
검찰 내 거의 대부분의 부장검사들이 새로운 보직으로 임명이 됐다고 봐도 무방할 만큼, 사상 최대 규모의 인사였다. 주요 권력 사건 수사를 맡았던 수사팀장(부장검사)들도 새로운 부임지로 옮기게 됐다.
청와대 기획사정 의혹을 수사했던 변필건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은 창원지검 인권보호관으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의혹 수사를 이끌었던 이정섭 수원지검 형사3부장은 대구지검 형사2부장으로 가게 됐다. 월성 원전 사건을 수사해온 이상현 대전지검 형사5부장 역시 서울 서부지검 형사3부장에 임명됐다.
특히 월성 원전 수사는 이대로 일단락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사건 핵심 피의자로 꼽히는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과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 대한 수사가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시점에 인사가 이뤄지면서, 재검토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때부터 이뤄진 특수통 중심의 윤석열 전 총장 라인들의 한직 임명은 계속됐다. 서울중앙지검 1차장을 지낸 신자용 부산동부지청장은 서울고검 송무부장 자리에, 신봉수 평택지청장은 서울고검, 송경호 여주지청장은 수원고검으로 각각 옮기게 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건을 수사한 뒤 대구지검 반부패수사부장으로 갔던 고형곤 부장검사는 포항지청장으로, 통영지청으로 발령 났던 강백신 부장검사는 서울동부지검 공판부장으로 이동한다. 윤 전 총장의 입장을 대변했던 이창수 대검 대변인은 대구지검 2차장으로, 손준성 대검 수사정보담당관은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으로 각각 옮기게 됐다. 검찰개혁 방향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냈던 정유미 부천지청 인권보호관은 광주고검 검사로 임명됐다.
#친정부 인사는 중용
올해 검찰 인사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서울중앙지검과 대검찰청 등이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불거질 논란들에 대해 수사를 담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핵심 보직에는 친정부 성향으로 분류되거나 법무부에서 박범계 장관을 보좌했던 검찰 간부들은 대거 약진했다.
임은정 대검 감찰연구관은 법무부 감찰담당관 보직을 맡았고, 박철우 법무부 대변인은 서울 중앙지검 2차장검사, 김태훈 법무부 검찰과장은 중앙지검 4차장검사에 임명됐다. 3차장검사로 임명된 진재선 서산지청장도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장검사 시절 여러 사건에서 친정부 성향의 목소리를 냈던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김오수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준비단 신상팀장을 맡기도 했다.
검찰은 이 가운데 2차장검사와 4차장검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얘기한다. 2차장검사는 주요 선거 관련 수사를 지휘하고, 4차장검사는 굵직한 특수 사건들을 전담하게 된다. 그런 자리에 조국·추미애·박범계 법무부 장관을 근거리에서 수행한 박철우 법무부 대변인과 추미애·박범계 법무부 장관 아래에서 검찰 인사를 담당했던 김태훈 검찰과장이 임명된 것이다.
논란에 휩싸였던 친정부 성향 검사들도 대거 요직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동훈 검사장과 윤석열 전 총장의 통화 내역을 공개해 논란이 됐던 박은정 법무부 감찰담당관은 차기 검사장 승진 코스로 꼽히는 성남지청장에 임명됐다.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에 대한 독직폭행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정진웅 광주지검 차장검사는 울산지검 차장검사로, 김학의 불법 출금을 실행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허위공문서작성·행사, 자격모용공문서작성·행사 등)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이규원 대전지검 검사는 공정거래위원회 법무보좌관 파견이 유지된 채 부부장으로 승진했다.
법무부는 “검찰개혁과 조직 안정의 조화를 주안점에 두면서 검찰 조직의 쇄신과 활력을 도모했다”며 “김오수 검찰총장을 박 장관이 2차례 만나 인사와 조직 개편안에 대한 구체적인 의견을 듣고 최종안에 실질적으로 반영되도록 했다”고 설명했지만, 예측 가능했던 ‘방탄 인사’라는 평이 나오는 대목이다.
차장검사 출신의 변호사는 “기획통과 형사통을 대거 중용한다고 대외적으로는 밝혔지만, 대선을 앞두고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주요 보직에는 ‘착하고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는, 말 잘 들을 사람’들을 앉힌 인사”라고 평했고, 또 다른 차장검사 출신 변호사 역시 “김오수 총장의 목소리가 반영되기보다는 박범계 장관의 ‘검찰 장악하기’가 더 반영된 인사”라고 평가했다.
임은정 대검 감찰연구관의 법무부 감찰담당관 임명도 주목해야 한다고 검사들은 풀이한다. 앞선 검찰 관계자는 “연구관의 직책으로 대검에서 감찰 업무 가운데 일부를 맡고 있는 것과 아예 담당관이 돼 법무부에서 감찰을 주도하는 것은 의미가 다르다”며 “선거 때마다 검찰개혁을 꺼내 들었던 여당에게, 법무부 감찰담당관에 임은정 검사가 있는 것은 더욱 논란을 크게 만들 수 있는 카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성 검사들 약진
한편 이번 인사에서는 여성 검사들이 주요 보직 발탁도 눈에 띄었다. 특히 법무부와 검찰의 ‘입’ 역할을 하는 대변인 자리에 모두 여성 검사가 발탁됐다. 법무부 대변인에는 박현주 서울동부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장이, 대검찰청 대변인에는 서인선 서울북부지검 형사5부장이 임명됐다. 법무부 대변인에 여성 검사가 임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중앙지검 공보담당관에는 이혜은 평택지청 형사1부장이 발탁됐다.
법무부는 “우수 여성 검사를 발탁해 온 기존 인사 기조를 유지했다”며 “여성 검사 우수 자원들을 법무부·대검 대변인에 발탁, 우수 여성 검사들을 두루 중용함으로써 양성 평등의 조직 문화 확립에 기여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기수가 밑으로 내려갈수록 늘어나는 여성 검사 비율을 고려할 때, 이 같은 여성 검사들의 중용은 계속되는 흐름일 것이라는 설명이다. 앞선 검찰 관계자는 “법무부는 여성 검사 중용이라고 했지만, 이제 어느 부서를 가더라도 평검사 중 여성 검사들이 30~40%는 된다”며 “서울중앙지검 내 주요 보직이나 검사장에서도 여성 검사들이 등장하는 일이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고 관측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