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농구 예능 출연 시도 대중 분노 결국 편집당해…축구 최성국·야구 박현준·e스포츠 마재윤도 ‘본업’ 활동 제약
#'1분 예고편'이 불러온 파장
최근 다시 한 번 강동희 전 감독이 큰 파장을 일으켰다. 농구를 소재로 한 인기 TV 예능 '뭉쳐야 쏜다'에 강 전 감독 얼굴을 비친 것이다. 뭉쳐야 쏜다는 과거 스포츠 스타들이 농구를 배워 기존 생활체육 농구팀과 대결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농구대통령' 허재와 현주엽이 이들을 지도한다.
파장은 프로그램에 강 전 감독이 출연을 예고하면서 일어났다. 뭉쳐야 쏜다 측은 1980~1990년대 농구 열풍의 주역들을 모아 일명 '어게인 농구대잔치' 개최를 기획했다. 과거 기아자동차 소속 선수들이 한 팀을 이루며 그 안에 강 전 감독을 포함시킨 것. 지난 6월 27일 방영된 방송 말미, 대회 이야기를 담은 1분 남짓의 예고편에 이충희, 문경은 등의 농구 스타들과 함께 강동희 전 감독의 얼굴도 포착됐다.
짤막한 예고 영상만으로도 팬들의 거부 반응이 이어졌다. '감독으로서 승부조작에 가담해 프로농구 근간을 흔든 인물이 농구를 소재로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앞서 6월 15일 KBL은 강동희 전 감독의 제명 징계에 대해 재심의를 하기도 했다. 강 전 감독 본인과 KBL 10구단 감독, 농구계 인사들이 탄원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KBL의 선택은 '기각'이었다. 이들은 '강 전 감독의 국위선양과 징계 후에도 지속적으로 기부 및 봉사활동, 후배 선수들을 위해 노력한 점은 인정하나 공정하고 투명해야 할 스포츠 환경 조성을 위해 기각한다'는 발표를 남겼다.
강동희 전 감독의 '대외활동'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6년에는 승부조작과 관련해 프로스포츠 부정방지 교육 강사로 공식석상에 나섰다. 신생 휠체어농구단의 기술고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2015년을 전후로 농구교실 운영에도 적극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농구 관련 미디어에도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농구를 다루는 유튜브 채널에서 한기범, 김유택 등 과거 동료들과 농구 경기를 선보이는가 하면 한 TV 프로그램에서는 가족, 농구인들을 만나 승부조작 사건에 대해 사죄하기도 했다.
#벽에 부딪혔던 대외 활동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며 TV 출연까지 이어졌지만 강동희 전 감독의 TV 예능 출연은 결국 무산됐다. 시청자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제작진은 사과에 나섰고 강 전 감독의 출연분은 편집을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짧게 공개됐던 예고편에서도 강 전 감독의 출연분이 빠졌다.
강동희 전 감독 사건 이전에도 승부조작을 저지른 인물들이 각자의 종목에서 활동을 재개하려다 대중의 '심판'에 가로막힌 사례들이 있다. 스포츠팬들은 과거 승부조작 범죄를 저지른 인물들이 자신의 종목과 관련해 활동을 재개하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2010년 전후 한국 스포츠계 전체를 뒤흔든 승부조작 사태에서 가장 큰 충격을 안긴 인물 중 한 명은 전 축구 국가대표 최성국이었다. 국가대표까지 지냈고 고액연봉을 수령하던 인물이었음에도 승부조작 모의에 가담한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한국프로축구연맹, 대한축구협회 등의 영구제명 징계 이후 최성국은 마케도니아리그 진출을 도모했다. 하지만 이적 과정에서 국제축구연맹(FIFA)이 제동을 걸며 선수생활 연장은 무산됐다. 이후로도 이따금 언론 지면에 등장하며 현장 복귀 뜻을 미약하게나마 밝혔지만 반발 여론만 자극할 뿐이었다.
꾸준히 지속되던 복귀 시도는 2019년 개인 유튜브 채널 개설로 이어졌다. 최성국은 자신의 이름을 내건 유튜브 채널을 열고 승부조작의 전말, 사죄의 뜻을 밝히는 영상을 남겼다. 이후로는 패스, 슈팅 등 축구 강의 영상도 올라왔다. 하지만 이 역시 팬들의 거센 비판으로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8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한 최초 영상에는 부정적 댓글이 다수다. 약 2개월간 10개의 영상이 업로드되다 운영이 멈췄다.
프로축구에선 다수의 승부조작 가담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들 중 일부는 여전히 축구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작게는 조기축구회 활동부터 축구 개인레슨을 진행하는 사람도 있다. 한 축구인은 "한 승부조작 가담자는 최근까지 조용히 알음알음 레슨을 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활동까지 일일이 찾아내서 막기는 어렵지 않겠나"라고 전했다.
전 야구선수 박현준도 2012년 승부조작에 연루되며 야구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인물이다. 이후 사죄의 뜻을 밝혔고 강동희 전 감독처럼 현역 선수들을 대상으로 부정방지 교육 강사로 나서기도 했다. 마운드 복귀 시도도 있었다. 2015년 도미니카공화국, 2018년 멕시코에서 선수활동을 타진한 것이다. 멕시코 현지에서는 계약 소식까지 전해졌지만 KBO의 승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무산됐다.
e스포츠에서 전설적인 선수였던 마재윤도 승부조작 파문에 대외활동이 무산됐다. 승부조작 혐의가 적발돼 한국e스포츠협회에서 영구 제명 조치를 받은 그가 선택한 무대는 인터넷 1인 방송이었다. 온라인에서 여전히 게임을 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고 해외의 비공인 대회까지 선수로 참가하던 그에게 e스포츠팬들과 협회 차원의 제재는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마재윤이 해외 대회에 참가해 우승을 차지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협회는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그가 과거 명성을 쌓아올린 게임 '스타크래프트'의 제작사와 협의하기도 했다. 협회 측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리그 참가를 최대한 막을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이내 인터넷 방송 활동도 막혔다. 그는 한때 인터넷 방송 플랫폼 '아프리카TV'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협회가 제재에 나섰고 결국 아프리카TV 측은 승부조작 가담자들의 협회 공인종목을 이용한 방송 송출을 금지시켰다. 자신의 전문 분야였던 '게임 방송'을 이어나가지 못하게 되자 마재윤의 인터넷 방송은 막을 내렸다. 이후 중국 등 해외의 '지하 세계'에서 열리는 스타크래프트 경기에 간간이 나서며 수익을 올린다는 '풍문'만 전해지고 있다.
#'본업' 복귀만은 안 되는 까닭
스포츠 근간을 뒤흔든 승부조작 가담자들의 모든 활동이 반발을 샀던 것은 아니다. 병원 원무과에서 근무하거나 식당을 운영했던 최성국, 휴대전화 판매원으로 일하던 박현준에 대해서는 여론의 큰 저항이 없거나 일부 응원 의견도 있었다. 다만 이들이 승부조작을 했던 '본업'으로 돌아가려 하면 여론은 요동쳤다. 현장 복귀나 해당 종목을 통한 수익 창출에 스포츠팬들은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승부조작 가담자들은 자신의 뜻을 펼치는 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강동희 전 감독은 그간 조심스레 활동 재개의 단계를 밟아왔다. 그 과정에서 일부 응원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 전 감독의 본업인 농구를 소재로 한 TV 프로그램 출연에는 강한 반발에 부딪혔다. 오히려 그동안 방송을 잘하고 있던 허재 감독과 현주엽 코치 등에 대한 부정적 과거가 재조명되는 역풍을 불러왔다.
혹자는 승부조작 가담자들에게도 일종의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기회는 팬들이 판단한다. 한국 스포츠의 '흑역사'인 승부조작 가담자들의 더욱 신중한 자세와 행동이 요구되고 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