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첫 사기사건 판결문 분석 ‘흔한 사기꾼’…석방 후 스케일 커져 “수사 적극 협조, 로비스트급 아냐”
그런 그가 감옥에서 나온 뒤에는 기자–정치인–법조인을 아우르는 ‘재력가’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판결문을 본 법조인들은 첫 사기 사건 수사를 피해 7년 동안 도피했다가 처벌받게 된 과정에서 ‘더 큰 사기극’을 준비했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2016년 1심 사기 사건 판결문 입수해 보니
일요신문이 입수한 수산업자 김 씨의 1심 사기 사건 판결문의 분량은 모두 16페이지. 흔한 사기꾼이라고 봐도 무방한 내용이었다.
경북 포항의 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의 한 대학교에서 법대를 졸업한 김 씨. 판결문에 명시된 혐의에 따르면 그는 2008년 8월, 피해자 김 아무개 씨 등에게 “A 씨가 안동경찰에서 근무하는 B 씨에게 돈을 빌려줬으나 돌려받지 못하고 있어 B 씨에게 가압류를 걸어야 하는데 공탁비용이 없다. 2100만 원을 빌려달라”고 거짓말을 하는 등 총 29회, 피해자 9명에게 공탁비용 및 등기수수료 명목으로 1억 1364만 원을 편취했다.
비슷한 시점, 김 씨는 포항의 한 법률사무소에서 피해자 정 아무개 씨에게 “대구 변호사 사무장으로 재직하고 있는데 개인회생 및 개인 파산을 전담으로 하고 있다. 비용을 입금하면 회생 및 파산 절차를 진행해 주겠다”고 속여 260만 원을 받아냈다. 김 씨는 실제 법률사무소에서 아르바이트로만 근무했을 뿐 사무장으로 근무한 적이 없었다. 이 밖에도 김 씨는 2008년 3월부터 2009년 4월까지, 총 20여 차례에 걸쳐 피해자들로부터 개인파산 비용, 민사소송 비용 등 명목으로 4300만 원 가량을 갈취했다.
또 김 씨는 2008년 9월에는 다른 사람의 위임을 받은 것처럼 통신사 2곳에서 각각 휴대폰 1대를 할부로 구입하고, 그의 명의로 휴대전화 이용 서비스를 개통했다. 또 그의 명의를 활용해 정수기 임차계약을 신청하는 등 각종 사기 혐의로 2016년 기소됐다.
그가 2008~2009년 저지른 범죄들이 2016년에서야 기소된 것은 7년간 도망 다녔기 때문인데, 재판부는 “김 씨가 법률사무소 사무장을 사칭, 이미 경제적 파산 상태에 직면한 36명의 피해자들에게 1억 6000만 원을 받아 챙기는 등 죄질이 좋지 않고, 일부 범행에 있어서는 문서를 위조하기도 했다”고 꾸짖었다. 특히 판결문 말미에서 재판부는 “김 씨가 형사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7년간 도피생활을 했다”며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김 씨는 범행을 자백하고 수차례 재판부에 반성문도 제출했지만, 실형을 피할 수는 없었다.
#첫 사기 사건 후 스케일 확 키운 김 씨
2016년 11월 선고와 함께 징역 2년을 살게 됐지만, 1년 만인 2017년 12월 특별사면 된 김 씨는 그 후 사기 스케일을 확 키웠다. 현직 검사와 경찰, 언론인은 물론, 정치인들과의 네트워크를 쌓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재력가’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1심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김 씨의 처지에 대해 “김 씨나 김 씨의 아내 등의 경제 상황에 비추어 보면 조속한 시일 이내에 피해변제가 이루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명시하기도 했는데, 오히려 김 씨는 본인이 포항에 여러 척의 배를 가지고 있는 재력가 행세했다고 한다. 김 씨는 온라인 매체의 ‘부회장’ 직함도 확보했다. 2020년에는 생활체육단체의 회장으로도 취임했다.
법률사무소 사무장 행세를 하며 사기를 치던 것과 달리, 이제 ‘지역 준재벌’ ‘언론사 임원’ 행세를 한 것인데 이를 통해 김 씨는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과 TV조선 앵커 엄성섭 등 다수의 기자들과 친분을 쌓았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이들에게 골프백이나 중고 외제차 등을 선물했다. 복역한 뒤 수산업을 한다는 B 물산 대표이사, I 언론사의 부회장, 또 생활체육단체 회장이라는 직함을 등에 업고 활동한 덕분이었다. 이를 토대로 법조인들과의 관계도 맺기 시작했다. 서울남부지검에서 잘나간다는, 금융 관련 범죄를 수사하는 이 아무개 부장검사에게는 명품 시계와 자녀 교육비 명목으로 현금도 챙겨줬다고 한다.
이 부장검사를 소개시켜준 것은 박영수 국정농단 특별검사였다. 박영수 특검을 언론인을 통해 김 씨를 소개받았는데 김 씨는 박영수 특검에게 포르쉐 자동차를 탈 수 있도록 며칠 동안 빌려줬다. 이에 대해 박영수 특검은 보도자료를 통해 ‘렌트비 250만 원을 지급했다’고 해명했다. 경찰과의 인연도 만들었다. 포항 지역에서 근무 중인 한 총경에게 금품을 준 의혹도 현재 경찰이 수사 중이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정봉주 전 의원 등 정치권과의 인연도 드러나고 있다. 박 원장 측은 이 김 씨와의 만남에 대해 인터넷 언론사를 운영하는 인물로 소개받아 덕담 몇 마디 나눈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정봉주 전 의원 역시 “기자 소개로 알게 됐다”고 언론에 설명했는데, 김 씨는 언론인과 경찰, 검사 등 법조인, 정치인에게 준 선물 등을 치밀하게 리스트로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사건과 유사한 지점은 “수사협조”
잡범 수준이던 2016년 첫 사기 사건과 달리 이제 김 씨는 100억 원 대 사기 혐의로 구속된 상태다. 김 씨의 범죄가 ‘잡범’ 수준에서 ‘게이트 가능성’이 언급될 정도로 커졌지만, 법조인들은 김 씨의 성향을 잘 봐야 한다고 설명한다. △7년간 도피할 정도로 구속을 꺼리는 점 △첫 사기 사건 때 범행 일체를 자백한 점 등은 이번에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특수 수사 경험이 많은 검찰 관계자는 “진짜 ‘네트워크’로 먹고 사는 브로커나 로비스트들은 절대로 자신이 누구에게 얼마의 뇌물이나 금품을 줬는지 불지 않는다. 한 번 입을 열면 다음에 다시 나왔을 때 ‘선’이 끊기기 때문인데 잡범 사기꾼으로 보이는 김 씨는 이번 사건에서도 경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고 있지 않느냐”며 “구속을 기피하는 인물은 빨리 풀려나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으로 타인의 범죄 혐의를 제공한다. 김 씨도 딱 그런 인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김 씨의 첫 사기 사건 판결문을 본 한 법조계 관계자는 “실체가 없는 사기꾼의 금품을 받은 것으로 현직 검사가 처음으로 경찰의 압수수색을 받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며 “언론인과 정치인, 법조인과 경찰 등이 향응을 제공하는 한 명의 사기꾼한테 제대로 놀아난 꼴이 됐다”고 지적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