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 주축 폴란드인들 CMO만 한국인…외국인 ‘바지사장’ 세우는 편법으로 법망 빠져나가
“100억 원 가까이 사기 쳤지만 해외로 도피하면 그만입니다. 다단계에 유사 수신, 온갖 사기를 쳐도 사건이 수사 중지되면서 사실상 올스톱 상태입니다.” B 코인 피해자 A 씨의 말이다. B 코인은 동명의 B 사가 만든 코인이다. B 사는 사이먼이란 폴란드 국적 인물이 설립한 회사다. 이 회사 개발자 주축은 폴란드 인물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이 회사에서는 유일한 한국인인 H 씨가 마케팅 최고책임자(CMO)로 활동했다.
B 사가 한국에 알려진 건 2018년 10월쯤으로 추정된다. 이때부터 B 사 마케팅 최고책임자 H 씨가 B 사를 홍보하기 시작했다. B 사는 솔루션 공급회사라고 전해진다. H 씨는 B 사가 리버스 ICO(Reverse Initial Coin Offering)를 할 것이라고 하면서 코인 투자를 권유했다.
리버스 ICO는 일반적인 코인 투자 모금을 하는 ICO와는 조금 다른 개념이다. ICO(Initial Coin Offering)는 주식시장에서 기업 공개(상장)를 의미하는 IPO(Initial Public Offering)와 유사한 개념이다. 일반적인 경우인 ICO는 자금확보형이라 불리며 아직 상용화된 서비스 모델이 없거나 기존 사업과 별개로 암호화폐를 발행한다. 미래 비전을 믿는 불특정 다수로부터 자금을 수신하고 코인을 발행해 이를 투자자에게 지급한다.
리버스 ICO는 자금 확보의 목적도 있으나 기존 서비스 확장에 초점을 두고 암호화폐를 발행해 판매하는 방식으로 투자를 받는다. 기존 운영하는 회사가 있고, 이 회사가 자금을 조달한다고 했을 때 거래소 상장 절차는 복잡하고 까다롭다. 이 회사가 상장 절차 대신 리버스 ICO를 통한다면 코인을 발행하는 방식으로 빠르고 쉽게 자금을 모집할 수 있다.
리버스 ICO는 이미 운영 중인 회사가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미래 비전밖에 없는 ICO보다 안정적이라는 인식이 있다. 대표적으로 텔레그램이 개발자금 모금을 위해 두 차례에 걸쳐 리버스 ICO를 통해 17억 달러(약 1조 9000억 원)를 모은 바 있다. 최근에는 리버스 ICO가 안정적이라는 인식 때문에 투자자들을 유인하기 더 좋은 수단으로 활용되는 게 현실이다.
B 코인도 B 사가 솔루션 공급회사라는 기반이 있고, 리버스 ICO라는 점 때문에 인기를 끌었다. 2018년 10월경부터 H 씨는 B 코인 투자설명회를 열면서 홍보를 시작했다. 여러 피해자들의 말과 H 씨의 메신저 대화 내용을 종합해보면 H 씨는 “B 사로부터 B 코인 판매대금 상당액을 받아 이를 B 코인 시세를 올리는 소위 ‘코인 펌핑’에 사용하겠다”고 말했다. 즉, 시세 조종을 통해 B 코인 가격을 올려주겠다는 말이었다. H 씨는 이런 말을 여러 차례에 걸쳐 말했다.
H 씨는 또한 “B 코인을 지속적으로 매달 약 1~2개 거래소에 상장시켜 거래를 활성화하겠다”라거나 “B 코인을 국내 대형 암호화폐 거래소인 빗썸과 업비트 등에 상장 시켜 시세를 상승시키겠다”고 약속했다. 2018년 12월 사이먼이 한국에 방문해 투자설명회를 한 바 있다. 사이먼이 한국에 온 것은 딱 한 번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2018년 12월 B 코인 대형 호재가 떴다. B 코인 한국 텔레그램 방에 “2019년 3월 B 코인 보유자에게 S 토큰을 일정 비율로 무상 분배해주는 에어드랍을 하겠다”고 공지했기 때문이다. S 토큰 보유자에게는 B 사의 이익 10%를 분배해주겠다는 설명도 있었다. 리버스 ICO 당시에는 예정에도 없던 호재였다. 투자자 방에는 ‘B 코인만 가지고 있으면 S 토큰도 받을 수 있고 이에 배당 수익도 생긴다’는 기대감이 가득 차기 시작했다.
곧 거래소에 상장될 것이라는 기대감과 함께 B 코인을 산 만큼 S 토큰을 받을 수 있게 되자 투자자들의 투자도 크게 확대되기 시작했다. 또 다른 피해자 C 씨는 “B 코인 개발자나 H 씨가 투자금 유치를 확대하기 위해 S 토큰 지급 약정을 한 것 아니겠나”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약속된 내용은 지켜지지 않았다. 대형 거래소에 상장되지도 않았고 S 토큰 발행도 되지 않았다. 인지도가 거의 없는 거래소에 상장됐지만, 가격은 폭락을 거듭했다. 현재는 모든 거래소에서 상장 폐지되었기 때문에 과거 캡처한 자료 외에는 자세한 차트조차 찾아볼 수 없는 상태다.
‘10배 간다’던 코인이 가격 폭락에 2019년 연말 상폐까지 맞이하자 피해자들 항의가 빗발쳤다. 2020년 H 씨는 코인 모집 대금 가운데 40%를 보상금으로 받게 돼 있었다는 걸 밝히게 된다. H 씨는 이 대금을 코인 펌핑에 쓰기로 했는데 약속된 금액 가운데 약 4%만 썼다는 것도 드러났다.
피해자들은 이더리움 1개당 B 코인 5000개를 지급 받는 방식으로 구매했다. 피해자 가운데 일부인 고소에 참여한 피해자들만으로 따져봤을 때 B 코인 구매를 위해 지급한 이더리움은 약 4만 5000개다. 현재 이더리움 가치로 따져봤을 때 약 1000억 원 규모다.
이 가운데 H 씨가 수당으로 입금 받은 이더리움 개수는 40%인 약 1만 8141개로 파악된다. 현재 이더리움 가치로 약 400억 원이다. 이 가운데 이더리움 750개가량만 펌핑에 사용했다고 알려졌다. H 씨는 이후 가치가 거의 사라진 B 코인을 R 코인으로 바꿔주겠다고 했지만, R 코인도 실체가 없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피해자들은 2020년 7월 사이먼과 H 씨 등을 고소했고 수사가 어느 정도 진행이 되는 듯했지만 결국 ‘수사 중지’ 처분이 내려졌다. 사이먼이 현재 한국에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한국에 없다는 외국인 대표 한 명 때문에 수사가 전혀 진행되고 있지 않다”며 답답함을 드러냈다. 한편 일요신문은 H 씨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H 씨는 주변에 ‘나도 피해자다’라고 해명했다고 전해진다.
이번 사건을 법률 조언한 한상준 법무법인 대건 변호사는 앞으로도 수사 중지로 법을 회피하는 사례가 늘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변호사는 “주범 가운데 일부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수사 중지 처분이 내려지는 경우가 많다. 국내 주범을 단독으로 기소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데 그렇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수사 중지 처분에 대해 이의신청을 해도 결국 경찰청 내부에서 판단하기 때문에 수사 중지 처분이 유지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보면 된다. 이러한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는 한 이 사건과 같은 일들은 반복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