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노후·환경훼손’ 숙박기능 폐쇄 계획에 “등산객 생명줄 잘라” 반발…오색케이블카 추진 ‘꼼수’ 의혹도
#대피소가 숙박시설이냐는 논란
설악산 중청대피소 철거 논란은 한 국회의원의 지적에서 출발했다. 2017년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이 “대피소가 대피소로 기능하지 않고 숙박시설처럼 비정상적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다”고 지적했고, 이에 당시 국립공원공단은 시설 노후화와 환경 훼손 등의 사유로 2019년에 중청대피소를 철거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의견 수렴을 이유로 철거 일정이 미뤄졌다가 2022년 4월 이후로 철거 계획이 다시 잡혔다.
2019년 신창현 전 의원은 ‘국립공원공단 대피소 관리계획’을 발의했고, 국립공원공단은 중·장기적으로 국립공원 내에 있는 20여 개 대피소의 숙박 및 매점 기능을 폐지하고 친환경적으로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중청대피소 철거도 이 ‘국립공원공단 대피소 관리계획’의 일환이다.
대피소 숙박 기능을 없애기 위한 법리적 토대도 마련됐다. 2019년 ‘국립공원 대피소 개선계획’이 세워졌고 2020년에는 대피소를 ‘휴양 및 편의시설’에서 ‘보호 및 안전시설’로 분류하는 법 개정을 마쳤다. 또 담요 대여 폐지를 비롯해 물품판매 항목을 17종에서 10종으로 축소하고 신재생에너지 사용률도 57%에서 71%로 확대하는 등의 사업이 이미 완료됐다.
하지만 산악계 전반에선 중청대피소 철거에 대한 반발이 거세다. 석채언 서울특별시산악연맹 회장은 “설악산 등산로들이 서로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한 중청대피소는 단순히 조난자들의 대피처로서의 기능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장소에서 등산객들이 쉬어갈 수 있게 해 등반객들의 조난 위험을 최소화해주는 ‘예방적 기능’이 우선시 되는 장소”라고 설명하며 “만일 중청대피소가 숙박 기능을 잃게 된다면 등산객들의 체력 저하와 겨울 저체온증 등으로 인해 사고에 노출될 확률이 높아진다”며 앞장서서 대피소 철거를 반대하고 나섰다.
서울특별시산악연맹 측은 철거 사유인 시설 안전도 문제에 대해 “시설 노후화는 보수를 통한 해결이 가능하고 생태계 훼손 문제는 등산객들에 의한 것이 아닌 기후 변화로 인한 온도 상승이 주원인인 것으로 파악된다”며 “환경 문제에 대해서라면 케이블카 설치를 추진하고, 희운각대피소의 숙박 규모를 늘리는 등 국립공원공단이 오히려 환경 훼손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일들을 추진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중청대피소 대안이 희운각대피소?
이에 국립공원공단은 현 수용인원이 75명인 중청대피소가 철거되는 대신 기존 수용 인원이 30명이던 희운각대피소가 올해 안에 80명 규모로 증축되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국립공원공단 관계자는 “중청대피소를 대체할 수 있는 시설인 소청대피소가 중청대피소에서 1.2km 지점에 있고 희운각대피소 역시 2km 반경 내에 위치해 있어 양 대피소로 분산하면 등산객 수용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하지만 서울특별시산악연맹은 “국립공원공단에서 숙박의 대안으로 지목한 희운각과 소청 대피소는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없다. 중청대피소의 숙박 불가로 희운각까지 내려가게 되면 장거리의 천불동계곡 길을 걸어야만 하고, 소청대피소의 경우에도 역시 수렴동에서 백담사에 걸친 긴 코스를 걸어야 한다. 이미 체력이 떨어진 상태로 이 코스들을 더 걷는다면 전문산악인이라도 사고 위험이 높을 수밖에 없다”며 중청대피소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강조했다.
지난 8월 10일 서울특별시산악연맹은 “중청대피소는 특히 겨울 등산객들에겐 생명줄이나 다름없어 중청대피소 철거는 곧 등산객들의 안전을 앗아가는 위험한 발상”이라 꼬집으며 국립공원공단에서 추진 중인 중청대피소 철거에 반대하는 공식 입장문을 발표하고 대피소 철거 저지를 위한 본격적인 규탄 행동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국립공원공단을 해체해 달라”는 청원까지 등장했다.
한인석 한국대학산악연맹 회장도 “중청대피소는 설악산 등산로의 핵심으로 산을 조금이라도 알고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 필요성과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국립공원공단이 주요 대피소 시설을 보완하고 활용도를 더 높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두 명 정치인의 ‘대피소를 라면과 초코바 장사하려고 지었느냐’는 무분별한 발언에 휘둘리고 있어 안타깝다”며 “한국대학산악연맹도 중청대피소 철거를 반대한다”고 전했다.
이에 국립공원공단 관계자는 “이번 중청대피소 정비작업은 완전한 철거가 아니며 위험한 부분을 철거하고 대피소 본연의 기능을 위한 축소‧정비 사업”이라며 “국립공원공단이 독단적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고 산악단체와 환경단체, 지역주민 등과 네 차례의 토론회를 거쳐 절충안을 받아들인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어 “중청대피소는 지상층과 지하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지상층이 안전진단에서 D등급을 받았다. 강한 바람이 불면 건물이 흔들리는 정도라 지상부를 뜯어내고 기존에 곰팡이 등 청결문제로 잘 쓰지 않던 지하층을 리모델링해 3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긴급대피 공간을 만들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사고 발생 시 출동해 응급처치를 할 수 있도록 응급구조사 자격이 있는 구조대 9명이 365일 대피소에 상주하게 된다. 기존의 숙박 기능은 없어지지만 대피 기능을 남겨놓기 때문에 위험한 상황에 처한 등산객을 수용하고 대피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색케이블카 추진 위한 명분?
하지만 산악계 곳곳에서 “국립공원공단의 산에 대한 전문성 부족이 국민의 등산 행복추구권까지 짓밟고 있다”며 중청대피소 철거를 반대하고 있다.
송정두 한국등산학교 교장은 “중청대피소는 설악산 정상부인 대청봉에 가기 위한 설악산의 요지다. 1500만 명에 이르는 국내 등산인이 모두 사용하는 장소를 공단 마음대로 변동하거나 축소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대피소 시설이 노후하면 보수하고 숙박 기능과 대피소 기능을 함께 유지할 수 있다. 전문가 집단의 의견수렴이 되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고 전했다.
변기태 한국산악회 회장도 “중청대피소 철거는 말도 안 되는 행정이다. 악천후 발생 시 중청대피소가 갖고 있는 입지적 요건은 설악산에선 절대적이다. 수많은 사람의 인명이 달려 있는 대피소에 숙박 기능을 없앤다는 것은 대피 기능이 없어지는 것과 같다”며 “계곡에 위치한 희운각대피소는 폭설 시 눈에 파묻힐 위험이 있는 데다 경유지이기 때문에 능선 위에 위치한 중청대피소의 역할을 대체하기 어렵다. 중청대피소 축소는 공단의 전문성 결여와 산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행정편의주의”라고 꼬집었다.
일각에서는 중청대피소의 숙박 기능을 없애고 희운각대피소의 규모를 키우는 것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오색케이블카 추진의 명분을 만드는 것일 수 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오색지구에서 끝청봉까지 3.5km 구간을 곤돌라로 연결하는 오색케이블카 추진에 힘을 싣는 정책이 아니냐는 것. 현재 설악산에는 1970년에 설치되어 해발 700m인 권금성 구간을 운행하는 설악케이블카가 있지만 최근 오색케이블카 설치 추진이 논의되고 있다.
중청대피소 축소와 오색케이블카를 연결 짓는 것은 무리한 비약이라는 의견도 없지 않지만, 한 산악계 인사는 “오색에서 대청봉 간 등산로는 한국에서도 대표적인 급경사길인데 중청대피소의 숙박 기능이 사라지면 일반인이 설악산 정상부인 대청봉에 오르기는 사실상 더 어려워진다. 특히 바람이 심하고 낮의 길이가 짧은 겨울엔 대청봉에 오르고 싶은 평범한 등산객이라면 케이블카를 선호하게 될 것”이라며 “중청대피소 철거가 오색~대청봉 간 케이블카 추진의 빌미를 제공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오색케이블카에 대해서는 현재 환경부가 양양군에 환경영향평가서 재보완 요청을 한 상황에서 양양군이 다시 국민권익위원회에 환경부의 재보완 요청 취소를 위한 행정심판을 청구한 상태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