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씨 “급여 부정수급 조사 때 ‘최종환 명예회장 매일 출근’ 진술케 해”…최용권 아들 최제욱 “그런 사실 없어” 일축
조 아무개 씨는 2000년 7월 삼환기업 총무부 운전직 직원으로 입사, 2012년 9월 고 최종환 삼환기업 명예회장이 별세할 때까지 그의 수행기사로 근무했다. 2008년 10월부터 2020년 9월 퇴사하기 전까지는 최 명예회장의 장남 최용권 당시 회장의 지시로 최 명예회장 일가가 사는 서울 한남동 자택에서 당직·숙직 근무를 섰다. 한남동 자택에는 최 명예회장 일가 5가구 10여 명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약 12년간 그들 일가를 수행해온 셈이다.
이 과정에서 조 씨는 최용권 전 회장 등으로부터 폭언·폭행 ‘갑질’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당직·숙직에 따른 연장근로수당 1억 2500만여 원을 받지 못했다고 지난 5월 고용노동부 서울서부지청에 최용권 전 회장과 삼환기업에 대한 진정서 및 고발장을 접수했다.
앞서 조 씨는 지난 2월 최용권 전 회장과 아들 최제욱 전 상무이사 등에게 미지급 숙직·당직 체불금 청구를 위한 내용증명을 보냈다. 내용증명 안에는 최용권 전 회장과 최제욱 전 이사 등이 조 씨에게 검찰에 출석해 거짓을 진술하도록 지시했다는 주장이 담겼다.
조 씨는 2013년 3월 8일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당시 진술서에는 최종환 명예회장 운전기사로서 최 명예회장의 일과를 설명했다. 조 씨는 검찰에 “최종환 명예회장은 2007년 초까지 매일 자택에서 오전 9시쯤 출근했다. 점심식사는 거의 사내 구내식당을 이용했고, 주 1~2회 나가 먹었다. 오후에는 회사에서 업무를 보고 오후 2~3시쯤 자택에 돌아와 휴식 후, 헬스장에서 2~3시간가량 매일 운동을 했다. 오후 6시쯤 자택으로 귀가했다”고 진술했다.
이어 “최 명예회장은 2007년 초 이후에는 주 4회 정도 출근했고,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주 3회 회사에 나갔다”며 “2012년에는 월 1회 출근했다”고 덧붙였다.
앞서 삼환기업 노동조합은 2012년 11월 최용권 전 회장이 10년간 수백억 원대 비자금을 조성해 차명계좌 수십여 개를 관리해왔다며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당시 노조의 고발장에는 최용권 전 회장에 대해 6가지 의혹을 제기했다.
그중 하나는 “최종환 명예회장이 2003년경부터 영구 퇴직해 삼환기업에 단 한 차례도 출근한 적 없는데 회사 ‘전자공시자료’에는 상근으로 표시하게 해 연간 수억 원의 연봉을 수령해 갔다”는 급여 부정수급 혐의였다. 이에 검찰은 최종환 명예회장의 출근 및 업무 수행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수행기사였던 조 씨를 소환했고, 조 씨가 출근 여부를 확인해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조 씨는 검찰에서의 진술이 최용권 전 회장 등의 지시로 사실이 아닌 내용을 외워서 진술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내용증명에 따르면 조 씨는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참고인 진술을 앞두고 삼환기업 비서실 임원이 밤늦게 찾아왔다. 나에게 회장 지시라면서 최종환 명예회장의 회사 출근 여부에 대해 시키는 대로 하라며 출근기간을 정해주면서, 잘 기억해서 검찰에 가서 이대로 진술하라고 했다”며 “다음 날 오전 국내 굴지의 법무법인 사무실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 자리에 변호사 2명과 (최용권 전 회장 아들들인) 최제욱 전 이사, 최동욱 전 이사가 있었다. 검사 질문에 답변 요령과 최 명예회장 출근기간에 대해 다시 한 번 주지시키고, ‘겁먹을 것 없다’ ‘차분하게 알려준 대로 답변하면 된다’고 한참 설명했다”고 전했다.
검찰 조사를 마치고 나오자 제대로 진술했는지 최용권 전 회장이 내용을 확인했다는 상황도 설명했다. 조 씨는 “서울중앙지검에 오전에 들어가 오후 늦게 진술을 마치고 한남동 자택에 왔다. 그러니까 최용권 전 회장이 기다리고 있다면서 바로 올라가라고 했다. 최용권 전 회장이 검찰에 가서 진술한 내용을 다 얘기하라고 해서, 나는 기억나는 대로 전부 보고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조 씨는 “당시에는 내가 왜 검찰에 가서 진술을 해야 하는지 누구도 얘기해주지 않아 영문을 몰랐다. 후일에야 언론 등을 통해 최 명예회장 급여·퇴직금 소송분쟁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며 “어이가 없었다. 최용권 전 회장 일가는 내게 있지도 않은 사실을 허위로 진술케 해 본인들의 이익을 찾아 먹었다. 그러고는 나에게 당연히 지급해 줘야 할 연장근로수당 등은 안 주고, 말만 꺼내면 폭언과 압박으로 무마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고 토로했다.
법무법인 사무실에서 변호사들과 함께 허위진술을 지시했다고 지목된 최제욱 우성개발 대표는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그런 사실이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이후 의혹에 대해 질문을 정리해 문자로 보냈지만, 따로 답변을 받을 수 없었다.
최제욱 대표가 현재 대표이사로 있는 우성개발 관계자는 앞서 지난 7월 15일 “허위진술 강요 등의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어 “고용노동청 연장근로수당 미지급 고발건과 관련해 요점을 흐리려는 의도로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당시 최종환 명예회장이 건강상 출근을 하지 못할 상황이었으며, 따라서 최용권 전 회장이 부친의 급여를 부정수급 했을 가능성은 이미 나온 바 있다. 앞서 최 명예회장의 딸이자 최 전 회장의 여동생인 최용주 씨는 과거 한겨레 인터뷰에서 “부친이 2008년부터 건강이 안 좋아 식사도 도움을 받아 했고, 거동도 휠체어로만 겨우 할 정도였는데 출근은 무슨 출근이냐”고 말했다.
특수부 검사 출신 법조계 관계자는 “최종환 명예회장이 건강상 문제로 출근을 못했는데, 조 씨가 계속 출근을 해왔다고 허위 진술을 했다고 가정해보자. 조 씨가 거짓진술을 해서 보는 이득이 없다. 조 씨가 최 명예회장의 급여를 받은 것도 아니지 않느냐. 얻을 게 없는데 검찰에서 허위로 진술할 이유가 없다”며 “그렇다면 조 씨가 거짓으로 진술해야 이득을 보는 측에서 사주 혹은 지시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설명했다.
최용권 전 회장은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기 이전인 2012년 삼환기업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경영에서 물러났다. 이후 수십 개의 차명계좌를 개설해 거액의 사업자금을 빼돌리는 방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와 계열사를 부당지원해 183억 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기소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았다.
한편 삼환기업은 이후에도 자금난에 시달리다가 2016년 10월 소액주주들의 주도로 다시 한 번 법정관리에 돌입, 2018년 5월 SM그룹에 630억 원에 매각됐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