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 “진상짓 했다고 도둑 몰아 출입제한” 대법서 무죄…강원랜드 “10년 전 일, 내용 파악·공개 어려워”
강원랜드에서 절도죄로 엮였다가 결국 무죄를 받은 A 씨의 얘기다. 2012년 절도죄로 기소된 그는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를 받아냈다. A 씨 소송은 처음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1심에서 유죄를 받는 등 굴곡도 있었다. 어찌 된 사연인지 A 씨 진술과 판결문을 종합해 사건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나는 주변에서 ‘도신’으로 통했다. 도박으로 돈을 날리는 게 아니라 베팅액을 조절하며 돈을 꽤 따왔기 때문”이라는 A 씨는 강원랜드를 즐겨 찾았다. 그는 속칭 ‘병정놀이’를 할 아르바이트들도 항상 대동하는 큰손이었다. 강원랜드는 과도한 사행성을 제한하기 위해 한 판, 하루 베팅액이 제한돼 있다. 병정놀이는 자신을 위해 베팅만 해주는 ‘병정’들을 이용해 판돈을 키우는 방법이다.
“병정놀이를 하려면 1인당 하루 100만 원 이상이 든다. 대리 베팅을 해주는 대신 기본으로 얼마를 챙겨주고 크게 따는 판에는 10만 원이라도 줘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강원랜드는 테이블이 부족해 자리 차지한 사람에게 돈을 주고 테이블을 사야 한다. 그 돈도 1인당 50만 원 이상이다.”
2010년 2월 27일, A 씨는 이날도 야심차게 입장해 블랙잭 테이블로 향했다. 그런데 A 씨는 몇 시간 만에 1억 원 넘는 돈을 잃게 된다. 화가 난 A 씨는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려치면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딜러는 갑자기 병정놀이를 문제 삼았다. 당시 딜러는 “병정으로 대리 베팅한 것 아니냐”고 했고 이에 A 씨는 “지금까지 뻔히 보고 묵인했다가 1억 넘게 날린 뒤에 무슨 소리 하는 거냐”며 더욱 분노하게 됐다.
실제로 강원랜드에서는 일정 부분 병정놀이를 묵인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여러 차례 언론에도 보도된 바 있다. 화가 난 A 씨는 10만 원짜리 칩을 딜러 쪽을 향해 팁이라며 던지기 시작했다. A 씨는 “당시 행동은 정말 잘못됐지만, 돈을 크게 잃자 태세 전환하는 딜러도 잘했다고 볼 수 없지 않느냐”고 항변했다.
법원도 판결문에 “강원랜드는 도박의 과도한 사행성을 방지하기 위해 1인당 베팅금액을 원칙적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도박을 하는 고객들이 속칭 병정을 대동하여 대행 베팅자들을 포함한 다수의 사람이 1개 테이블 주변에 밀집해 모여 있는 상황을 공공연히 묵인하고 있다”고 적시했다.
큰돈을 잃은 뒤에도 A 씨는 병정에게 200만 원씩 칩을 준 뒤, 병정을 조종하기 위해 서서 지켜보고 있었고 딜러는 이 문제를 계속 지적했다. 그때 딜러가 “자꾸 병정놀이하지 마시고 앉으라”고 했고 이에 A 씨는 잠깐 앉아서 게임을 하다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A 씨가 담배를 피우러 간 사이 B 씨가 A 씨 자리에 앉아 게임을 했다.
A 씨는 돌아와서 자기 자리인 줄 알고 칩을 정리하던 중 B 씨가 ‘내 칩이 섞였다’고 했다. A 씨는 헷갈렸지만, CCTV를 열어보면 병정놀이한 것이 드러나고 그럼 강원랜드 출입 정지 사유가 될 수도 있어 사과한 뒤 칩을 돌려주고 10만 원짜리 칩 1개를 줬다. A 씨는 “병정놀이로 적발 시 출입 금지의 근거가 된다. 잃은 돈을 만회할 기회조차 없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좋게 좋게 끝내자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흐름이 바뀌었는지 A 씨가 크게 따기 시작했다. 신이 난 A 씨는 병정들에게 “몰빵하라”고 지시했다. 크게 따기 시작하자 강원랜드 측 매니저가 찾아와 ‘잠시 사무실로 같이 가자’고 했고 A 씨는 “이제 따기 시작했는데 무슨 소리냐”면서 흥분을 했다. 강원랜드 측 보안요원까지 같이 오자 A 씨는 어쩔 수 없이 사무실로 따라갔다.
사무실에 간 A 씨에게 강원랜드 측은 “절도를 인정하면 좋게 끝내겠다”고 했고, 빨리 테이블로 돌아가고 싶은 A 씨는 “알겠다”고 인정했다. 그러자 강원랜드 측은 “지금부터 출입정지 3년이다”라면서 퇴장을 통보했다. 이에 A 씨는 ‘무슨 소리냐’며 불복하고 다시 테이블로 돌아갔더니 이번에는 경찰이 찾아와 A 씨 손에 수갑을 채웠다.
그렇게 절도 혐의를 받게 된 A 씨는 검찰의 약식 기소로 벌금 100만 원을 받게 된다. 이에 불복한 A 씨는 정식 재판을 청구한다. A 씨는 “내가 정식 재판을 청구한 건 100만 원을 내기 싫어서, 혹은 무죄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강원랜드 출입을 반드시 해야 했다. 그게 전부였다”고 말했다.
강원랜드 측은 “게임장 CCTV에 A 씨가 절도한 게 틀림없이 나온다”고 주장했다. 1심에서는 유죄가 나와 벌금 100만 원이 그대로 확정됐다. 1심에서는 “피해자에 대한 경찰 진술조서, 압수조서 등의 증거를 종합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했다”고 판결했다. 이에 A 씨는 2심에서는 유명 변호사를 선임하면서 항소했다. 벌금보다 수십 배 많은 선임료를 내면서도 그가 필요한 건 무죄를 통한 강원랜드 출입정지 해제였다.
2심에서 A 씨는 “제발 절도하는 모습이 담겼다는 CCTV를 보여달라”고 줄기차게 얘기했다고 한다. 2심 법원은 강원랜드 측에 CCTV를 공개하라고 했고 이렇게 공개된 CCTV에서는 황당하게도 A 씨가 훔친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재판부는 “A 씨가 계속 블랙잭 도박을 하는 일련의 행동 과정에서 특이할 만한 상황은 발견되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재판부는 “A 씨는 강원랜드에 자주 출입하는 단골이고, 한번 도박하는 경우 1000만 원 이상 자금을 쓴다. A 씨는 일단 블랙잭을 시작하면 약 4~5시간을 하는데, 한번 베팅 금액은 60만~120만 원 정도에 달했고, A 씨가 따는 판에는 딜러와 병정들에게 수시로 10만 원짜리 게임 칩을 팁으로 줬다. 즉, A 씨에게는 10만 원짜리 게임 칩 1개가 욕심을 내서 훔칠 대상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결국 대법원에서 A 씨는 무죄로 확정되면서 강원랜드 출입 제한 조치가 풀린다.
어렵게 다시 찾은 강원랜드. 하지만 A 씨는 이후 연속으로 큰돈을 잃어 수십억 원을 날리면서 결국 자신이 강원랜드와는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됐다고 한다. A 씨는 “강원랜드에서 진상을 피웠다고 해서 절도죄를 뒤집어 씌워 출입을 정지시킨 일이 있다는 걸 사람들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강원랜드 측은 당시 사건에 대해 “10년 전 일로 직접 고소 고발이 아닌 신고를 통해 사건이 진행돼 자세한 사항은 알지 못한다”며 “자세한 내용 파악도 고객 개인정보 보호 측면도 있어 말씀드리기 어렵다”고만 답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