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7일 출국 앞두고 반바지 티셔츠 등만 지급, 빙상연맹 부실 행정 질타 목소리 높아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은 ‘심석희 모바일 메신저 폭언 파문’이 불거진 뒤에도 올림픽을 향한 담금질에 여념이 없다. 대표팀은 2021년 10월 21일 올림픽 개최지 베이징에서 열리는 ISU 쇼트트랙 1차 월드컵 출전을 위해 10월 17일 출국한다. 논란 중심에 선 여자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는 선수촌을 퇴촌한 상태다. 심석희는 1차 쇼트트랙 월드컵에 불참할 예정이다. 그 가운데 쇼트트랙 대표팀이 경기에서 착용하는 트리코(유니폼)를 아직 지급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10월 16일 오후 쇼트트랙 대표팀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17일 오후 6시 대표팀이 출국 예정인데 아직 트리코(유니폼)를 지급받지 못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까지 대표팀 선수들이 2018-19시즌에 입던 유니폼이나 창고에 있던 유니폼을 입고 훈련을 했는데, 올림픽 시즌용 국가대표 유니폼을 언제 정식으로 지급받을지는 감감 무소식”이라고 했다. 그는 “실제 시합 때 입을 유니폼을 입고 훈련을 한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선수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실전용 유니폼이 지급되지 않은 것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면서 “지금까지 빙상연맹이 선수들에게 지급한 것은 반바지와 티셔츠 등 물품뿐”이라면서 “시상대에 입고 올라가는 시상복도 아직 지급받지 못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대표팀 선수들이 아직 유니폼을 지급받지 못한 상황을 두고 빙상계에선 ‘심석희 파문’ 이후 빙상연맹이 다른 곳에 신경 쓰느라 본연 업무인 선수단 운영에 손을 떼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취재 결과 ‘이런 대외적 상황’은 유니폼 논란과 거의 무관한 것으로 파악됐다. 오히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불거졌던 빙상연맹 사무국의 부실행정이 3년이 지난 지금 다시 재현되고 있는 양상이다.
빙상연맹은 최근 유니폼 납품 업체 선정과 관련해 홍역을 치렀다. 10월 15일 국회 문체위 국정감사에서도 이런 내용이 도마에 올랐다.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은 빙상연맹 유니폼 납품 업체 선정 과정의 절차적 문제를 지적했다.
9월 16일 빙상연맹이 김예지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빙상연맹은 6월 29일부터 7월 8일까지 쇼트트랙 및 스피드스케이팅 유니폼 구매 입찰 공고를 게시했다. 그러나 이 경쟁입찰은 1개 업체만 제안서를 제출해 유찰됐다. 빙상연맹은 유니폼 구매 진행을 위해 업체별 제안서를 접수했다. 제안서 접수에 응한 기업은 2개였다. 빙상연맹은 이 업체 중 S 사를 선택해 8월 5일 유니폼 200벌에 대한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품질 논란이 불거졌고, S 사 납품은 없던 일이 됐다.
취재에 따르면 빙상연맹은 새로운 구매 대행 업체에 긴급하게 20벌 정도 소량의 유니폼만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팀 선수들은 여분 유니폼이 부족한 상태로 시즌에 돌입한 셈이다. 한 빙상 지도자는 “만약 시합 전에 도착한 유니폼을 입었는데, 선수들에게 유니폼이 잘 맞지 않으면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사실상 행정 실패라는 분석이 나온다. 빙상연맹 사무국을 둘러싼 고질적인 부실행정 논란 원인으론 인사 문제가 꼽히고 있다. 한 빙상계 관계자는 “빙상연맹이 겉으로는 개혁을 외치지만, 내부적으론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와 별로 다를 바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평창 올림픽 당시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었던 사무국 직원 A 씨가 사무처장 대리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면서 “‘무자격 코치 파견 논란’, ‘규정 해석 오류 논란’ 등이 불거질 당시 실무 책임자였던 A 씨가 사무처장 대리직으로 영전을 하면서 부실행정 논란이 재현되고 있다. A 씨가 과거 빙상연맹 논란 중심에 선 인사들과 여전히 교류하고 있다는 소문도 여기저기서 돈다”고 주장했다.
2020년 11월 BBQ가 빙상연맹 회장사로 뒤에도 부실행정의 씨앗은 꾸준히 자라고 있었다는 후문이다. 2021년 초엔 국가대표 선발전과 종별선수권을 치를 장소를 구하지 못해 김홍식 빙상연맹 부회장이 장소 섭외 자문을 얻으러 다닌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빙상연맹은 외부인의 도움을 받아 어렵사리 국가대표 선발전과 종별선수권을 치렀다. 올림픽이 겹친 중요한 시즌, ‘국가대표 선발전 장소 대관’이라는 기본적 과제를 빙상연맹이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코로나19 방역단계가 격상된 7월엔 주니어 피겨 대표선발전 기간 3일 동안 개최 장소가 서울에서 광양, 진천으로 두 차례나 변경되는 소동을 겪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런 사건들 속에서 A 씨는 꾸준히 부실행정에 대한 책임론에 휩싸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이번 시즌 빙상연맹은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감독 자리 또한 공석으로 남긴 채 시즌을 시작해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이번 유니폼 논란에 대해 한 빙상 관계자는 “이번만 딱 논란이 불거진 것이 아니라 그간 무관심 속에서 곪아왔던 부실행정 리스크가 이번에야 터진 것”이라면서 “심석희 진상조사위원회와 별개로 흉흉한 분위기 속에서 국제대회를 치러야 하는 선수들 입장에선 빙상연맹이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빙상연맹 본연 업무 중 하나는 국제대회 출전 선수들에 대한 사무보조인데 연맹은 여전히 소잃고 외양간만 고치는 부실행정 퍼레이드를 펼치고 있다”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매번 의혹에 휩싸이는 선수와 지도자는 바뀐다. 그럴 때마다 선수와 지도자가 의혹과 관련한 책임을 뒤집어 쓰고 징계를 받는다. 여론의 질타도 그들을 향한다. 그런데 부실행정 논란 중심에 있는 빙상연맹 관계자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평창 올림픽 당시 연맹 실무진이 바뀌지 않은 상황에서 베이징 올림픽을 앞둔 현재에도 부실행정의 레퍼토리도 비슷하다. 여론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쏠린 사이 부실행정이 관심 밖에 있었을 뿐이다. 연맹 사무국 행정체제를 개편하고 바로잡지 못한다면 ‘제2, 제3의 심석희 파문’은 언제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빙상연맹 관계자는 “선수들이 아직 유니폼을 지급받지 못한 것이 맞다”고 했다. 취재에 따르면 유니폼은 10월 17일이나 18일 경에 지급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