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안락사 일부 인정, ‘세나개’ 구조견도 안락사 정황, 보호비 부정수급 의혹도…“어떤 처벌도 받겠다” 사과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동변)은 10월 18일 이정호 전 소장과 수의사 등 3명을 동물보호법 제8조 제1항 제1호 위반 등의 혐의로 군산경찰서에 고발했다. 보호 중인 유기견을 불법으로 안락사한 혐의다. 동변은 이 전 소장의 불법 안락사 행위가 동물보호법 제8조 제1항 제1호 ‘목을 매다는 등의 잔인한 방법으로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안 된다’는 조항을 위반했다고 보고 있다.
물론 우리 법은 지자체 위탁 유기동물보호소에 입양 공고일이 지난 유기동물에 한해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다. 다만 동물보호법 제22호 제2항에 따라, 동물의 인도적 처리는 반드시 수의사에 의해 시행돼야 한다. 또, 안락사를 시행하는 수의사는 심정지 및 호흡정지 약을 투여하기 전 마취제를 통해 대상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하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군산시유기동물보호소에서는 최소한의 절차도 없이 본인이 직접 안락사를 시행해왔다는 점이다. 이 전 소장은 2018년 2월부터 군산시로부터 지자체 동물보호센터 운영권을 위탁받아 지난 3월까지 군산시유기동물보호소를 운영해왔다. 이 전 소장의 보호소는 운영 기간 동안 ‘안락사 없는 보호소’를 표방해 여러 방송과 언론 매체에 소개되며 유명세를 얻었다.
지난 3년 동안 이 전 소장의 보호소가 언론에 소개된 것만 최소 10차례다. 그는 ‘유기견의 대부’로 불렸다. 그러다 지난해 5월에는 “방송 이후 보호소가 유명해져 유기동물이 너무 많아졌다”며 “불가피하게 안락사를 하게 됐다”고 입장을 바꿨다. 다만 자체적으로 안락사심의위원회를 도입해 심의를 거쳐 안락사 대상을 선정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이전에도 ‘안락사 없는 보호소’는 없었다. 동물보호단체 ‘비글구조네트워크’(비구협)에 따르면 군산유기동물보호소 전‧현 직원들은 “이 전 소장이 공식적으로 안락사를 한다고 밝힌 2020년 5월 이전인 2018년부터 다수의 유기견을 안락사해왔고 마취 없이 심장정지약을 투여했다”고 제보했다. 방송으로 유명해진 이후 유기동물이 밀려들어 불가피하게 합법적인 안락사를 시행한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안락사를 하지 않는다”고 홍보를 하던 기간에도 불법 안락사는 시행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확인 결과, 제보자들이 직접 찍은 사진 속 이 전 소장은 심정지제가 든 것으로 추정되는 주사기를 들고 자신에게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는 개를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지난해 1월 EBS의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에 출연해 구조한 개 ‘세나’ 역시 안락사 당한 정황도 포착됐다. 제보자에 따르면 세나는 2020년 8월 21일 해외 입양 대비 건강검진을 목적으로 병원을 방문했는데, 이때 안락사 대상 선정 과정 없이 비공식적인 안락사가 시행됐다고 한다. 그 후 해외로 간 것처럼 ‘입양 완료’ 처리를 했다가 문제 발생을 우려하려 안락사 한 것으로 수정했다고 한다.
비구협에 따르면 이 전 소장이 불법으로 안락사시킨 동물은 2019년 4월 초부터 9월까지 최소 80마리가 넘는다. 제보자들은 이렇게 사라진 동물 가운데 일부는 자연사한 동물 사체와 함께 주차장 공사현장 인근과 소나무밭 아래에 매장되는 방식으로 은폐됐다고 주장했다. 현재 이 전 소장은 5~17마리를 불법으로 안락사시켰다고 말하고 있다.
허위 및 중복 공고를 통해 보호비를 부정 수급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군산시로부터 지급 받는 예산을 맞추기 위해 이 전 소장과 일부 관계자들이 실제 보호소에 있는 동물의 수를 과장하여 보고했다는 것이다. 유기동물보호센터 운영권을 위탁 받은 유기동물보호소는 지자체로부터 마리당 보호비를 지원 받는다.
2019~2020년 동물보호관리시스템 공고를 확인해 본 결과, 군산시유기동물보호소 측은 동일한 사진을 하루 간격으로 올리면서 마치 다른 공고인 것처럼 연속으로 게시하거나, 동일한 개를 장소만 다른 곳에서 찍어 10개월 간격으로 올리기도 했다. 덩치가 작은 어린 동물의 경우 입양이나 자연사 상태로 위장했다가 성견이 되면 전혀 다른 동물인 것처럼 재공고한 정황도 발견됐다. 한편, 보호소 내 동물들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부여된 공고번호와 실제 동물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전 관계자들의 증언도 나왔다.
한편, 중복공고에 대해 군산유기동물보호소 관계자는 “2020년 3월 중복공고는 실수로 올린 것이 맞다”면서도 “잘못 올린 것을 알고 보호비 수급을 위해 개체 수를 보고할 때 이를 제외하였는데, 동물보호관리시스템 공고는 미처 수정하지 못 했다. 이후 군산시 자체 감사에 관련 자료를 제출했다”고 해명했다.
이 전 소장은 인터넷 매체 ‘셜록’ 인터뷰에서 자신의 혐의를 처음 인정했다. 그는 전문의약품인 심정지약을 어떻게 구했느냐는 질문에 “(군산보호소) 담당 수의사를 통해 심정지약을 받았다”며 “(의사에게) ‘내가 구조한 내 새끼니까 내가 보내고 싶다’고 말하고 약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보도 이후 논란이 커지자 10월 15일에는 페이스북을 통해 “배신감과 분노, 실망하신 모든 분들에게 머리 숙여 죄송하다”며 “어떠한 변명도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저지른 일에 대한 어떠한 처벌도 받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수많은 질타와 추궁으로 더 이상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계속하기엔 남아있는 아이들에게 피해가 된다는 생각이 든다”고 사과했다. 이 전 소장은 동업자와의 분쟁으로 지난 4월 군산시유기동물보호소를 퇴사한 이후 인근에 사설동물보호소를 설립해 운영 중이다.
이에 대해 김세현 구비협 이사는 “이 전 소장은 언론으로 만든 ‘착한 이미지’를 이용해 많은 사람들을 기만하고 최근 또 다시 후원금으로 운영하는 사설동물보호소로 유기견의 아픔을 착취하면서 경제적 이익을 꾀하려 했다”고 비판했다.
한편, 군산유기동물보호소의 현 직원들은 보호소 운영에 어려움을 호소했다. 한 관계자는 “근무 당시 이 전 소장이 불법 안락사를 하는지 전혀 알지 못 했다. 알았다면 당연히 문제 삼았을 것”이라며 “사건이 널리 알려지면서 군산시유기동물보호소는 불법 안락사를 하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남아버렸다. 이 전 소장이 떠나고 남은 사람들은 막막한 심정이다. 현재 일하고 있는 보호소 직원들은 불법 안락사 행위와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