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뛸 듯이 기뻤던 도쿄행, 소름 돋았던 일본전…인삼공사 이적 후 주전 도약, 행복배구 해요”
목포여상 2학년 때 국가대표로 발탁된 염혜선은 2008년 전체 1순위로 현대건설에 입단한 기대주였다. 그러나 프로에선 이미 자리를 잡은 선배 세터들 덕분에 후보 신세를 면치 못했다. 라바리니 감독 체제에서도 이다영이 학교 폭력 논란으로 제외되기 전까지 그는 이다영의 백업에 머물렀다.
그런 그가 대표팀에서는 물론 소속팀인 대전 KGC인삼공사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신탄진에 위치한 인삼공사 체육관에서 염혜선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올 시즌 KGC인삼공사의 상승세가 눈에 띈다(11월 12일 현재 현대건설에 이어 2위). 성적이 좋다 보니 팬들의 반응이 뜨겁다 못해 데일 정도인데 이런 분위기를 체감하고 있나.
“정규시즌의 좋은 분위기가 도쿄올림픽에서 이어진 것 같다. 올림픽에서 좋은 성과를 얻어서인지 팬들이 정말 많이 좋아해주고 알아봐주신다. 이전에는 올림픽이 열려도 배구에 대한 관심이 지금과 차이가 있었다. 지금은 모든 선수들에게 관심을 보인다. 선수생활 하면서 인터뷰를 이번처럼 많이 하는 것도 처음이다.”
―도쿄올림픽 대표팀에 발탁되려고 오른 손등 골절상을 당한 후 수술했음에도 손등에 박은 핀을 제거하지 않고 대표팀 경기를 소화했다고 들었다.
“지난 2월 블로킹 훈련 중 손등 골절상을 당했다. 곧장 수술을 했는데 손등에 박은 핀을 제거하면 복귀 시기가 늦어진다고 해 핀을 제거할 수 없었다. 올림픽 전초전인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서 기량을 보여주지 못하면 대표팀에 뽑히기 어려울 것 같아 수술 후 2, 3개월 만에 코트에 복귀했다. 처음엔 공이 손에 닿을 때마다 욱신거리는 통증이 있었지만 올림픽에 가려면 그 고통을 이겨내야만 했다. 솔직히 무서웠다. 수술 후 3개월가량 볼을 만지지 못한 채 대표팀에 합류했는데 처음에는 공이 무섭고 공을 올릴 때 자세가 잘 안 나왔다. 대표팀에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 멘탈이 붕괴될 정도였다. 이탈리아에서 치른 VNL 동안 거의 눈물로 밤을 지새웠던 것 같다.”
염혜선은 스스로 ‘괜찮다’는 주문을 걸며 힘든 시기를 견뎌냈지만 VNL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여 올림픽 최종 명단에 뽑힐 거라는 확신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 7월 라바리니 감독이 도쿄올림픽 본선에서 뛸 대표팀 최종 명단을 발표했고, 그 명단에 세터 염혜선 이름이 적혀 있었다.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대표팀 발탁 소식을 듣고 펑펑 울었다. VNL 끝나고 마음을 내려놓았는데 도쿄로 향하기 전 경남 하동에서 치른 코호트 훈련 동안 올림픽에서 뛰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졌다. 무조건 가고 싶었다. 올림픽이니까. 물론 내 욕심일 수도 있지만 눈앞에 놓인 기회를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세터 3명(염혜선 안혜진 김다인) 중 2명이 도쿄에 가는데 그 2명에 꼭 들어가고 싶었다. 그게 현실로 이뤄지니까 꿈인가 생시인가 싶더라.”
―라바리니 감독한테 많이 혼났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나뿐만 아니라 감독님한테 혼나지 않은 선수가 거의 없을 것이다. 처음에는 진짜 많이 혼났다. 1토스 1잔소리였다. 그런데 감독님 지적이 다 맞는 지적이었고, 우리가 잘하길 바라는 마음에 고칠 부분을 지적하신 거라 잘 받아들일 수 있었다. 라바리니 감독님은 정말 좋은 분이다. 대표팀에서 뛴 모든 선수들이 감독님을 그렇게 기억할 것이다.”
―라바리니 감독의 어떤 점이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나.
“선수의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대단하신 분이다. 선수를 믿어주고, 좋은 플레이가 나왔을 때 칭찬도 많이 해주면서 피드백을 주셨다. 처음에는 대표팀에서 잘할 자신이 없었는데 감독님의 당근과 채찍 덕분에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었다.
―어려운 과정을 거쳐 도쿄에 입성했고, 모든 선수들이 고군분투한 덕분에 올림픽 4위라는 아름다운 족적을 남겼다. 가장 기억나는 경기를 꼽는다면.
“일본전이다. 지금도 일본전을 떠올리면 소름이 돋을 정도다. 경기 후 취재구역에서 한국 기자들 앞에서 펑펑 울었다. 그 어떤 시합 때보다 긴장을 많이 했지만 재미와 감동을 준 경기였다. 이번 대표팀에선 (김)연경 언니 중심으로 똘똘 뭉친 덕분에 목표로 잡았던 8강을 넘어 준결승전에 오를 수 있었다. 모두 간절한 마음으로 경기에 임했고 값진 결과를 얻어낼 수 있어 보람이 컸다. 준결승전에서 맞붙은 브라질은 정말 강팀이더라.”
―이제 V리그 이야기를 해보자. 올 시즌 인삼공사에 공격수 2명이 새로운 얼굴이다. 이소영이 FA(자유계약)로 GS칼텍스에서 인삼공사로 자리를 옮겼고, 외국인 선수로 옐레나가 합류했다. 세터 입장에선 새로운 공격수들이 들어오면 신경이 많이 쓰일 것 같은데 실제로는 어떤가.
“호흡이 잘 맞아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새로 들어온 공격수들의 실력이 뛰어난 터라 공을 올리는 데 다양한 루트가 생겨 또 다른 재미를 느끼는 중이다.”
―지난 시즌까지 인삼공사에서 활약한 디우프 선수가 있을 때 ‘몰빵 배구’를 이끈다는 비난도 있었다.
“세터 입장에서 고르게 공을 올려주는 게 맞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외국인 선수에게 공을 올릴 수밖에 없다. 승부는 이겨야 하는 게 아닌가. 이기려고 하는 배구인데 ‘몰빵 배구’라고 비난받는 게 속상했다.”
―사실 세터나 리베로는 못했을 때 부각되는 포지션 아닌가.
“공격수가 못하면 세터 탓이라고 한다. 어릴 때부터 그런 소리를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젠 익숙해졌다. 속으로 내가 잘못한 게 맞다. 앞으로 잘 올려줘야지 하며 반성도 많이 했다.”
―이소영과 호흡은 어떤 편인가.
“정규시즌 세 번째 경기였던 현대건설 경기에선 서로 호흡이 잘 맞지 않았는데 감독님과 서로 경기 영상을 보고 난 후 바로 해결책을 찾았다. 소영이랑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다. 소영이가 공격력도 뛰어나지만 수비에서 큰 활약을 해주기 때문에 팀 전력에 엄청난 도움이 되고 있다. 소영이를 상대팀 선수로 만났을 때는 우리 팀의 공격을 모두 받아내는 바람에 짜증도 났는데 지금은 우리 팀에서 상대 팀 공격을 다 받아주니까 정말 든든하더라. 인삼공사로 오기 전 약 한 달가량 GS칼텍스에서 훈련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소영이랑 함께 뛸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컸다. 그러다 인삼공사로 트레이드됐을 때 소영이가 많이 울었다. 인삼공사에서 소영이를 다시 만나리라곤 전혀 예상 못했는데 이렇게 같은 유니폼을 입고 뛰고 있다는 게 재미있다.”
―그동안 트레이드와 보상 선수로 여러 차례 팀을 옮겼다. 팀을 옮길 때마다 주전 세터들이 있어 벤치에서 뛸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그 기다림이 무척 힘든 시간이었을 텐데.
“우리 팀 리베로 노란도 나와 비슷한 처지였다. 잘하는 선수인데 후보에 머물다 보니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보여줄 기회가 없었다. 노란과 같이 기업은행에서 뛸 때 우리가 주로 뛴 코트가 B코트였다. 훈련할 때 주전들은 A코트에서 후보들은 B코트에서 훈련했는데 그런 상황들을 마주할 때마다 오기가 생기더라. 언젠가는 나도 A코트에서 뛰고 있을 거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염혜선은 세터 선배인 김사니와 이효희를 롤 모델로 삼고 있다. 고교 시절 처음으로 대표팀에 발탁됐을 때 김사니와 함께 월드컵 대회에 출전했던 기억이, 생애 첫 올림픽 무대인 리우올림픽에 이효희의 백업 멤버로 지낸 추억이 염혜선의 배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인터뷰 말미에 배구가 얼마나 좋으냐고 우문을 던졌다. 염혜선은 경기 결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만 코트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는 현답을 내놓는다. 염혜선은 2019년 IBK기업은행 시절 표승주의 보상 선수로 GS칼텍스로 이적했다가 한 달 만에 KGC인삼공사로 트레이드된 순간을 잊지 못한다.
“인삼공사에 감사한 마음뿐이다. 주전 세터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배구를 통해 행복을 느끼게 해준 팀이 인삼공사다. 그 고마움은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대전=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