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 뚫린 과학화 경계시스템 또 다시 도마 위로…체조 선수 출신 탈북민, 북한 무반응 ‘대공용의점’도
사건의 시작은 2022년 1월 1일 오전 0시 51분 무렵이다. 한 민통초소가 관리하는 CCTV에 월북자 A 씨 모습이 포착됐다. 군은 경고방송을 했다. A 씨는 경고방송을 들은 뒤 인근 마을로 발길을 돌렸다. 1월 1일 오후 6시 36분 A 씨는 다시 나타났다. GOP 철책에서 A 씨 흔적이 감지됐다. 철책이 부러져 굽어지는 ‘절곡’ 현상을 과학화 경계시스템이 포착했다. 경고등이 빛나고 경고음이 울렸다.
소대장 등 6명으로 구성된 초동조치조가 철책으로 향했다. 군 관계자에 따르면 초동조치조는 특이사항을 발견하지 못하고 철수한 것으로 파악됐다. 초동조치조의 성과 없는 철수 이면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경계망 관리시스템이 존재했다. 사건이 발생한 GOP 인근 감시카메라 3대에 월북자가 철책을 넘는 장면이 5회 포착됐다. 그러나 감시병은 이런 움직임을 인지하지 못했다.
녹화 영상을 다시 돌려보는 과정에서도 오류가 발생했다. 영상 저장 서버 시간과 실제 시간에 차이가 있었다. 실제로 경고등과 경고음이 작동한 시간과 카메라 녹화 영상 내 시간이 달랐던 것인데, 군은 영상 서버 시간 기준으로 영상을 분석한 뒤 특이상황이 아니라고 오판했다. 1월 5일 합동참모본부가 철책 월북 사건 현장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합참 관계자는 “지침 상 하루 두 번 영상장비 시간을 맞추는 동기화 작업을 해야 하는데, 이게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철책에 절곡 등 특이사항이 발견된 순간 보고체계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대대 지휘통제실은 현장 상황과 영상에 특이사항이 없다는 이유에서 별도 보고를 진행하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철책에 유의미한 특이사항이 발생했을 경우 대대장이나 상급부대에 보고해야 한다는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셈이다.
엉성했던 군 경계 시스템은 월북자 A 씨가 비무장지대(DMZ)에서 식별됐을 때도 제 역할을 하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군은 DMZ에서 A 씨가 식별된 뒤 작전 병력을 투입했지만, 해당 지역 지형과 이동방향을 고려해 A 씨 이동을 ‘귀순’에 초점을 맞추고 움직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철책을 넘을 시점의 보고가 이뤄지지 않아 A 씨 동선 알리바이를 맞추기 쉽지 않았던 것으로 풀이된다.
그 사이 A 씨는 작전 병력과 거리를 벌리며 이동했다. 오후 10시 49분경 군사분계선 이북에서 A 씨 움직임이 식별됐다. 1월 2일 오전 0시 48분경 A 씨는 군 감시망에서 자취를 감췄다. A 씨의 월북은 성공으로 종결됐다. 동시에 군 경계작전은 완전한 실패로 돌아가게 됐다.
전·현직 군 관계자들은 이번 사건으로 다시 한 번 과학화 경계시스템 사각지대가 드러났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일요신문 취재에 응한 전직 연대장급 지휘관은 “경계의 생명은 현장감에 있다”면서 “현재 군이 도입하고 있는 과학화 경계시스템이라는 것은 결국 CCTV나 열감지장비(TOD)를 여러 개 설치해놓고 그 장비가 송출하는 화면을 최소 인원이 돌아가면서 감시하는 시스템이다. 집중을 해서 모니터링을 해도 중요한 장면을 놓칠 가능성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렇다고 CCTV를 감시하는 병사들이 365일 24시간 집중력을 유지해 그 모든 화면을 관찰할 수도 없다”면서 “이런 사각지대를 관리책임을 갖고 있는 현장 간부들이 메워줘야 하는데, 일선에서는 지휘통제실에서 간부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휘통제실은 스마트폰 사용이 불가능한 장소이지만, 군 내에선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고 주장했다.
전직 장성급 군 관계자는 “경계 현장에서 유의미한 움직임은 사람 눈으로 포착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면서 “이번 사건을 봐도 화면을 분석하느라 초동조치 시간이 늦어지고, 화면 녹화 시간이 일치하지 않아 현장과 본부 사이 혼선이 있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모든 군 시스템 변화가 과학화에 집중돼 있는 까닭에 99%의 효율성이 100%의 정확성보다 중요시되고 있다”면서 “99.9% 시간 동안 별일이 없더라도 0.1% 시간에 일어나는 일을 감지하지 못하면 사고가 발생하는 곳이 군이다. 그 0.1%의 상황을 예방하고 대처하는 것이 군이 존재하는 본질적 목적인데, 정초부터 우리 군은 그런 본질적 임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고 했다.
국제 군사력을 분석하는 군 전문가는 “중국의 경우 과학화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CCTV를 쳐다보는 병력을 두고, CCTV 감시 병력을 감시하는 2차 감시 병력을 또 배치한다. 어찌 보면 우스운 광경이지만, 이런 광경이 과학화 경계시스템의 모순을 증명하는 사례이기도 하다”고 했다.
일각에선 경고등과 경고음이 야생동물로 인해 오작동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해 일선 군인들로부터 ‘양치기 소년’ 취급을 받는다는 지적도 있었다. 또 다른 전직 군 관계자는 “화재경보가 자주 오작동하는 건물에 화재경보가 울리면 사람들이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듯, 일선 부대에서도 경고등과 경고음 오작동으로 인해 경계 긴장감이 풀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철책 월북 경계 실패로 월북자 A 씨의 신원에도 관심이 집중됐다. A 씨는 체조 선수 경력이 있는 탈북민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A 씨는 2020년 11월 22사단 철책을 통해 탈북한 뒤 14개월 만에 다시 같은 관할에서 북으로 넘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재월북 사건인 셈이다.
2020년 7월 19일 김민형 재월북 사건과 비교가 가능하다. 당시 김 씨는 인천 강화군 소재 배수로를 통해 철책선을 통과한 뒤 헤엄을 쳐 월북했다. 김 씨는 성폭행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던 부분이 월북을 결정하는 계기가 됐을 것으로 분석된 바 있다. 김 씨의 재월북 루트는 그가 탈북을 할 때 루트와 일치해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2022년 A 씨 재월북은 김 씨 월북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대공 용의점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까닭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1월 3일 A 씨 재월북 동기에 대해 “가족에 대한 그리움, 정착과정에서 경제적 심리적 어려움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며 ‘대공 용의점’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그러나 A 씨는 2020년 11월 탈북한 뒤 서울북부하나센터에서 사회정착교육을 받았는데 교육 초기 이상한 모습을 보여 센터 측이 경찰에 간첩·월북 가능성을 알리기도 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A 씨는 충남 당진 인테리어 회사에 근무하며 건설 파트 일용직으로 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돈을 수천만 원 모았던 A 씨는 주변에 유럽여행 계획까지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11월 A 씨는 눈이 아프다며 일을 그만뒀고, 연락이 끊긴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측 반응도 이번 월북사건을 둘러싼 미스터리 중 하나다. 2020년 7월 김민형 재월북 사건 당시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개성시에서 악성 비루스(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의심되는 월남 도주자가 3년 만에 불법적으로 분계선을 넘어 7월 19일 귀향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북한 지도부는 긴급회의를 소집해 국가비상방역체계를 최대 비상체제로 격상했다.
2020년 9월 ‘공무원 피살사건’ 당시와도 차이가 있다. 공무원 피살 사건이 벌어질 당시 북한군은 방독면을 쓰고 접근한 뒤 한국 공무원 이 아무개 씨에게 신원 확인을 요청했고, 이후 총격을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측이 코로나19 방역과 관련해 극도의 긴장감을 갖고 있는 것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2022년 철책 월북 사건 이후 북한 측은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1월 5일 기준 A 씨의 생사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국경을 완전 폐쇄한 북한이 방역체계에 변화를 준 기류도 감지되지 않고 있다.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는 “월북한 A 씨에 대해 ‘간첩이다’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간첩이 아니’라고 확증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라면서 “대공용의점이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