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면 합의서 작성 두고 대우건설 노조와 갈등…인사권·경영권 관련 이견 보여
중흥그룹은 2021년 12월 KDB인베스트먼트와 대우건설 지분 인수를 위한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매매 대상주식은 KDB인베스트먼트가 보유한 대우건설 지분 50.75%이고, 인수가는 2조 1000억 원이다. 현재 중흥그룹은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에 기업결합 심사를 신청한 상태다. 공정위의 심사가 완료되면 최종 거래가 마무리될 예정이다. 정창선 중흥그룹 회장은 계약을 맺으면서 “대우건설 인수는 중흥그룹 제2의 창업과도 같다”며 “외적 환경의 변화나 어려움에 흔들리지 않는 세계 초일류 건설그룹을 만드는 데 역량을 쏟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창선 회장의 의지와 달리 전국건설기업노동조합 대우건설지부(대우건설 노조)는 이전부터 대우건설 매각에 반대했다. 대우건설 노조는 2021년 7월 중흥그룹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후 매도자 실사를 한 것을 문제 삼았다. 매도자 실사는 통상 매도자가 매도 전 물건 가치를 스스로 산정한 후 매수 희망자에게 정보를 제공해 적정 가치를 가늠하는 과정이다.
대우건설 노조는 당시 “본입찰을 통해 인수 희망가격이 확정되고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된 이후에 매도자 실사가 진행됐다”며 “결국 산은과 KDB인베스트먼트 등 매각 관계자들의 이해관계에 맞춰 절차도 원칙도 없이 대우건설 매각이 졸속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우여곡절 끝에 SPA가 체결됐지만 내부 갈등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중흥그룹 측은 대우건설 노조에 독립경영과 고용보장 등을 약속했다. 대우건설 노조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독립경영을 위해 대표이사 내부 승진 △사내 계열사 외 집행임원 선임 인원 제한 △인수 후 재매각 금지 △본부 분할매각 금지 △자산매각 금지 등을 서면에 넣을 것을 요구했다.
중흥그룹 측은 매각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아 서면 합의서 작성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현재 대우건설 최대주주는 KDB인베스트먼트이므로 서면 합의서를 작성할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우건설 노조는 지난 1월 17일 대우건설 본사에 마련된 중흥그룹 인수단 사무실 앞을 점거하고 출입을 봉쇄했다. 중흥그룹 인수단은 용산구에 임시 사무실을 마련해 업무를 보고 있다. 대우건설 노조 측은 “(중흥그룹은) 대우건설의 존폐가 달린 독립경영 관련 사안들에 대해 노조와의 합의를 거부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흥그룹이 서면을 작성하지 않는 표면적인 이유는 최대주주가 KDB인베스트먼트라는 이유에서지만 실제로는 인사권 문제로 갈등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흥그룹이 대우건설 인수를 완료하면 대대적 임원 인사가 예상된다. 정원주 중흥그룹 부회장(정창선 회장의 장남)은 1968년생이지만 대우건설 각자 대표인 김형 대우건설 사장과 정항기 대우건설 사장은 각각 1956년생 1964년생이다. 전무·상무급에서도 정 부회장보다 젊은 임원은 손에 꼽힐 정도다. 오너가 젊은 만큼 임원진에도 세대교체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대우건설 노조는 임원진의 내부 승진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정원주 부회장은 2021년 12월 SPA 체결식에서 “대우건설 경영진 구성과 관련해 내부 인원 승진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심상철 대우건설 노조 위원장은 “현 시점에서 내부승진은 시키지만 향후 언제든 본인들 입맛대로 바꿀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전했다.
중흥그룹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중흥그룹이 경영권과 인사권 관련 사안을 문서화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것으로 안다”며 “대우건설의 독립경영을 약속한 중흥그룹이 대우건설 노조와 경영권 관련해 협의를 진행하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전했다.
대우건설 매각 주체는 어디까지나 KDB인베스트먼트와 중흥그룹이다. 대우건설 노조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매각 작업을 진행할 수 있는 상황이다. 대우조선해양 매각 과정에서도 전국금속노동조합 대우조선지회(대우조선 노조)가 강력하게 반발했지만 산은 측은 특별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그러나 중흥그룹 입장에서는 대우건설 노조와의 관계를 회복하지 못하면 향후 경영에 적지 않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당장 대우건설 사무실에 들어가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고, 인수 후 그룹 조직을 개편할 때도 내부 반발을 겪을 수 있다. 이 때문인지 중흥그룹 내부에서는 KDB인베스트먼트의 중재를 원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KDB인베스트먼트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자세한 이야기는 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대우건설 노조와 중흥그룹 간 갈등은 이동걸 산은 회장에게도 부담이다. 이동걸 회장은 취임 후 야심차게 산은 자회사 매각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최근 대우조선해양 매각이 유럽연합(EU)의 불승인으로 무산됐고,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할 때도 HDC그룹과 협상이 결렬돼 한진그룹과 재협상을 하는 등 난항을 겪었다. 대우건설 노조와 중흥그룹의 협상이 결렬돼 인수 포기로 이어지는 것은 이동걸 회장 입장에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중흥그룹 측은 대우건설 노조와의 갈등이 인수 작업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중흥그룹 관계자는 “지속적으로 시간을 두고 합의를 할 것”이라며 “중흥그룹으로서도 화학적 결합을 원만하게 이뤄야 하므로 대화의 창을 열고 지속적으로 노조와 대화할 용의가 있다”라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