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 데뷔한 쇼트트랙 신동, 국대 밀리자 러시아 귀화…중국 대표팀 코치 부임으로 또 한면 조명
#범상치 않은 데뷔 무대
빅토르 안은 올림픽 등장부터 범상치 않았다. 그가 올림픽에 첫발을 내디딘 때는 20년 전 대한민국 대표팀 안현수로 나선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이다. 국내외 주니어 대회를 휩쓸던 그는 단숨에 올림픽 무대까지 밟았다. 국가대표 선발전 순위를 토대로 대표팀이 구성되는 지금과 달리 그는 당시 국가대표 감독의 직권으로 대표팀에 합류했다.
단순히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는 것을 넘어 만 16세의 나이에 빅토르 안은 개인전 출전권까지 얻어냈다. 감독의 지목을 받고 두 종목에 출전했다. 지금이라면 논란이 벌어지고도 남을 일이지만 당시에는 '오노 사건'이 겹치면서 비교적 조용히 지나갔다.
왜소했던 체격, 앳된 얼굴만큼이나 기량이 설익은 시기였기에 메달을 따내는 등의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그럼에도 어린 나이에 1000m 종목에서 결선에 진출, 빙상팬들에게 자신을 각인시켰다.
#전성기 뒤 찾아온 부상, 귀화 이후 부활
빅토르 안은 이후 세계 최고 선수로 올라섰다. 2003~2007년 세계선수권 5연패를 기록했다. 이는 현재까지 남자선수 역대 최고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 사이 열린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는 세 개의 금메달과 한 개의 동메달을 차지, 전 종목에서 메달을 따내며 올림픽을 자신의 무대로 만들었다.
한 대회에서 네 개의 메달을 따낸 빅토르 안의 당시 나이는 만 20세. 충분히 다음 대회도 노릴 수 있었다. 하지만 2008년에 접어들면서 부상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오랜 기간 세계 최정상으로 활약한 그의 몸은 약해져가던 상태였다. 2008년 1월 훈련 중 무릎 부상 후 빠르게 복귀를 시도하다 부상이 재발하는 악재가 반복됐다. 결국 부상 여파로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는 국가대표 선발전을 뚫지 못하며 불참했다.
소속팀마저 해체되는 불운을 겪었다. 빅토르 안은 러시아에서 몸을 만들며 운동을 하겠다는 선택을 했다. 당초 그가 밝힌 러시아 생활 기간은 1년이었지만 곧 귀화 소식이 전해졌다. 대한민국 쇼트트랙 스타 안현수가 러시아의 '빅토르 안'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국내 대표팀에서 밀리고 소속팀마저 사라진 빅토르 안에게 러시아 귀화는 기회였다. 러시아는 2014년 동계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있었다. 빅토르 안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매력적인 환경이 조성됐다. 러시아로서도 자국에서 열리는 올림픽 성적을 위해 과거 쇼트트랙 황제가 필요했다.
8년 만에 복귀한 올림픽 무대에서 빅토르 안은 3관왕에 올랐다. 만 20세 시절과 같이 금메달 세 개와 동메달 한 개를 목에 걸었다. 러시아는 이 대회에서 아홉 개의 금메달을 따냈는데, 그중 세 개를 빅토르 안이 따냈다. 반면 당시 우리나라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은 '노메달'에 그치며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또 한 번의 스캔들과 중국행
러시아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건재를 과시한 빅토르 안은 고국 대한민국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도핑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소치 동계올림픽 이후 러시아 선수단 내 여러 종목에서 대규모 약물 스캔들이 터졌고 빅토르 안도 이에 휘말렸다.
빅토르 안은 평창 동계올림픽에 각별한 의욕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커리어에 마지막 올림픽이자 고국 대한민국에서 열리는 대회였기 때문이다. 한국팬들 앞에서 경기를 펼치고 싶은 의지가 컸고 약물 스캔들 이후 구명을 위해 제소까지 했다. 하지만 대회 참가는 좌절됐다.
평창 올림픽 이후 러시아에서 선수생활 은퇴와 복귀를 반복하던 그는 지도자로 나서기 시작했다. 최초 러시아행 당시 지도자 생활까지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가 선수들을 지도하기 시작한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고국 대한민국이었다.
고국에서 지도자 생활이 순탄치 않았다. 평창 올림픽 직후 국내 복귀를 타진했지만 러시아 귀화, 도핑 스캔들 등으로 형성된 부정적 여론에 부딪혔다. 지도자 생활을 약속했던 러시아를 등졌다는 지적도 있었다.
다만, 개인교습 형태의 지도 문화가 있는 국내 빙상계에서 '지도자 빅토르 안'에 대한 수요는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향하는 시선이 워낙 따가워 자리를 잡는 것이 여의치 않았다. 일각에서는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최를 앞둔 중국의 러브콜에 응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으나 본인은 이를 부인했다. 하지만 빅토르 안은 결국 중국 대표팀 코치로 부임했다.
#또 다시 주목받는 쇼트트랙 황제
빅토르 안은 이번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기간 해외팀 코칭스태프임에도 국내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과거 명성과 러시아-중국으로 이어진 독특한 행적 탓이다. 대한민국 안현수에 이어 러시아 빅토르 안은 중국에서 '안셴주'로 불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대회를 지켜보는 이들은 빅토르 안의 작은 언행에도 반응하고 있다. 쇼트트랙 종목 첫 메달이 걸린 혼성계주 경기 당시, 중국이 금메달을 따내자 환호하는 빅토르 안의 모습에 부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그가 우리나라 선수를 격려하는 모습이 사진으로 전해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1960년대 발표된 전광용 작가의 단편소설 '꺼삐딴 리'에 빅토르 안을 비유할 정도다. 일제강점기부터 광복 이후를 살아가는 소설 속 주인공이 친일-친소련-친미 노선을 갈아타는 모습이 올림픽 개최국 대표팀 유니폼을 입는 그와 닮았다는 것이다.
이번 대회를 관통하는 중국의 편파판정 논란 탓에 빅토르 안은 더욱 비난을 받고 있다. 그는 남자 1000m 경기에서 대한민국 대표팀 황대헌 이준서 등이 연속으로 실격돼 국내 팬들의 반발이 절정이던 시기,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저의 과오에 대한 질책은 받아들이지만 가족을 향한 비난은 삼가해달라"는 내용의 글을 남기기도 했다. 현재는 글을 삭제한 상태다.
올림픽 무대에 첫발을 내디딘 2002년부터 20년의 세월 동안 파란만장한 길을 걸어온 빅토르 안, 태극마크 이외에 다른 두 나라 대표팀 소속으로 올림픽에 참가한 그는 향후 대한민국 대표팀에 복귀할 수 있을까. 팬들에겐 질타의 대상이 됐지만 그는 역대 최강의 스케이터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일부 국내 선수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귀화 이후로도 숱한 선수들이 존경하는 인물로 ‘안현수’를 꼽아왔다.
하지만 국내 빙상계는 그의 국내 무대 복귀를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고 있다. 빙상계 한 관계자는 "개인 코치는 몰라도 향후 대한민국 대표팀 코칭스태프로 부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며 "빙상연맹 지도부가 개편되면서 그를 찾을 가능성이 더 낮아졌다. 뛰어난 능력을 보인다고 하더라도 이번 중국행으로 그에 대한 여론은 더욱 나빠졌다. 연맹으로서도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