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서에 패한 중국기사들 잇단 도발…신 “커제와 10번기? 대면대국으로 잡음 봉쇄” 자신감
신진서는 지난해 제22회 농심배에서 탕웨이싱 9단, 이야마 유타 9단, 양딩신 9단, 이치리키 료 9단, 커제 9단을 연파하고 우승컵을 들어올린 데 이어 얼마 전 막을 내린 23회 대회에서도 미위팅 9단, 위정치 8단, 커제 9단, 이치리키 료 9단을 제압하고 2년 연속 대역전 드라마를 썼다.
이는 이창호 9단이 2004년 제6회 농심배에서 마지막 주자로 나서 5연승을 거두며 우승컵을 차지해 ‘상하이 대첩’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업적에 필적할 만한 위업이라 평가받는다.
하지만 한국의 라이벌 중국은 편치 못한 분위기다. 이세돌 9단 은퇴 후 수년 동안 세계대회를 주름잡았던 중국은 최근 2년간 농심배 우승컵을 놓친 것은 물론 신진서, 박정환, 신민준 등에 밀리며 세계대회에서도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최근 농심배에서 신진서에게 패한 커제 9단의 몽니(?)가 중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화제다. 전말은 이렇다. 커제는 농심배 세계바둑최강전 13국에서 신진서 9단에게 완패한 그날 저녁, 자신의 심경을 SNS(소셜미디어)에 올려 눈길을 모았다.
커제는 “이게 정말 사람의 바둑인가. 인공지능(AI) 일치도가 무려 71%에 달한다. 단 한 번도 문제수가 등장하지 않았다. 내가 예전에 상대했던 알파고보다 더 강해 보였다. 도저히 내 바둑을 둘 수 없었다”면서 “이 정도 실력이라면 이 세상에 신진서 9단을 대적할 기사는 없다. 신진서 9단은 코로나19 이후 중국기사에게 23연승을 거뒀는데 이런 바둑을 본 적이 없다”고 썼다.
그리고 문제는 다음 대목에서 나온다. 커제는 “다만 신진서는 결정적인 장면에서 화장실이라도 가는지 자리를 자주 비우는 모습을 보였다. 그의 치팅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건 문제가 있다”며 명백히 AI를 이용한 부정행위를 암시하는 듯한 말을 남겼다. 이는 당연히 중국 팬들에게 신진서가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뉘앙스를 주었으며, 실제 신진서를 비난하는 댓글이 가득 달리기도 했다.
커제뿐만이 아니다. 춘란배 결승에서 신진서에게 패했던 탕웨이싱 9단도 신진서와 미위팅의 첫 번째 대국이 끝난 후 자신의 SNS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미위팅이랑 상대할 때 신진서는 화장실을 6번 갔고 게다가 몇 번이나 자기 차례에 갔다. 사람들이 점점 무서운 추측을 한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할까봐 겁난다. 나는 그가 천하제일이길 바란다.”
명백한 도발이다. 그러나 생방송으로 진행된 당시 대국 장면을 확인해본 결과 그들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신진서가 자리를 비운 경우는 항상 자신이 둘 차례에서가 아닌 상대가 둘 차례에서였으며, 최근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세계대회는 심판이 항상 옆에 있다고 보는 것이 맞아 상식적으로 인공지능을 이용한 부정행위가 불가능하다.
그리고 커제와 탕웨이싱 주장의 허구성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선배 후야오위 8단에게 반박당한다. 후야오위는 최근 중국바둑이 신진서에게 무릎을 꿇은 이유에 대한 글을 올렸다.
후야오위는 “커제가 신진서의 인공지능 일치율이 71%라고 말했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절예(중국산 인공지능)에게 돌려보니 65.8%였다. 이것 역시 놀라운 일치율이지만 세계정상급에게 어려운 수치는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커제가 바둑판 밖의 변수에 대해 말하지만) 내가 볼 때 커제의 패배 원인은 스스로 잘 두지 못했고, 상대방에게 초반에 당한 후 찬스가 없었다. 커제는 과거 신진서를 비롯한 한국 기사들에게 성적이 좋았다. 그래서 한국의 제1호 가상적이 되었다. 그러므로 한국은 그를 철저히 연구했을 것이다. 우리가 불평만 할 것이 아니라 한국이 그랬듯 이제는 중국의 기사들이 지피지기의 전제하에 수준을 끌어올리고 상대방에 맞는 훈련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모든 것은 실패를 직시하고 객관적으로 대할 때부터 시작된다”고 일침을 가했다.
또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이번 농심배의 모든 경기를 지켜본 목진석 감독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커제의 발언이 있고난 후 화쉐밍 중국기원 부주석이 (커제의 발언은) 중국기원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니며 개인적인 일탈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세계대회에서 우승할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기사들의 발언은 팬들에게 잘못된 선입견을 갖게 하며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될 일”이라며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한편 이번 논란의 중심에 놓인 신진서는 처음 대국이 끝난 후 가진 회견에서는 “커제 9단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것 같다. 유명 기사일수록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 의도한 바가 아니더라도 팬들이 다른 느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행동은 삼가야 한다”고 점잖게 대응했으나, 최근엔 “중국 기사들의 의혹 제기는 프로기사로서 굉장히 불쾌한 것”이라며 “농심배 같은 큰 승부에서 인공지능을 이용한 치팅을 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는 나뿐 아니라 중국은 물론 한국 팬들에게도 굉장히 무례한 발언이다. 정상급 기사라면 모든 바둑인들의 귀감이 되는 행동을 보여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신진서는 또 “최근 커제와의 10번기가 성사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다할 이유가 없다. 무조건 하겠다. 단, 또 다른 말이 나오지 않기 위해서라도 무조건 대면 대국이어야 할 것”이라고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곧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이 진정될 수도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가운데 세계대회 패권을 둘러싼 한국과 중국의 ‘바둑갈등’이 얼굴을 마주하고 맞붙는 대면 대국에서 어떤 양상을 보일지 궁금하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