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애플TV+ 공세 속 국내 OTT 티빙·왓챠 신작 승부수…자극적 소재 외 다양한 장르 출격
국내 진출한 해외 OTT 서비스 플랫폼 가운데 넷플릭스와 디즈니 플러스(Disney+)에 밀려 ‘3인자’에 머물렀던 애플TV+는 3월 25일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PACHINKO)를 공개한다. 상반기 기대작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이 작품은 미국 제작사가 제작해 온전한 ‘K드라마’라고 보긴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한국계 미국인 작가 이민진의 작품을 원작으로 코고나다, 저스틴 전 등 한국계 미국인 감독이 연출하고 윤여정, 이민호, 김민하, 정은채, 정웅인 등 한국 배우들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주목 받는다. 애플TV+ 측 역시 ‘파친코’를 ‘닥터 브레인’에 이어 두 번째 한국어 작품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3월 25일 3편을 첫 공개한 뒤 4월 29일까지 매주 금요일마다 한 편씩 공개하는 ‘파친코’는 이미 해외 비평가들 사이에서 뜨거운 호평을 받은 바 있다. 할리우드리포터는 “강력하고 감동적이며, 시대를 초월한 시작”이라고 평했으며, 플레이리스트는 “2022년 최고의 신작 중 하나”라며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어워즈워치, 인디와이어, 플레이리스트 등에서 A의 평가를 받는가 하면 영국 이브닝 스탠다드에서는 별점 5개 만점에 5개를 선사했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가 원작인 ‘파친코’는 고국을 떠나 억척스럽게 생존과 번영을 추구하는 한인 이민 가족 4대의 꿈과 희망을 기록한 이야기를 그린다. 앞서 리 아이작 정 감독의 영화 ‘미나리’ 역시 한인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를 그려 긴 세월이 흘러도 이방인으로 남아야 했던 이민자들의 오랜 아픔에 공명했다는 해외의 호평을 받은 바 있다. ‘파친코’도 이민에 대해 별다른 감흥이 없는 국내 시청자들보단 해외 시청자들에게 더 어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여기에 윤여정, 이민호 등 해외의 K콘텐츠 팬들에게 특별한 인상을 남겼던 배우들이 출연하면서 그들의 굳건한 팬덤이 시청자 층의 기반을 다져줄 것으로 보인다.
애플TV+가 해외 시청자들을 정조준한다면 티빙은 국내 시청자들의 품을 파고든다. 2021년 ‘유미의 세포들’과 ‘술꾼도시여자들’로 신규 유료 가입자 수가 급증했다는 티빙은 2022년 상반기 ‘내과 박원장’과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 두 코미디 작품을 연달아 공개했다. 각각 진중한 이미지로 익숙한 이서진과 박해준의 코미디 드라마 주연작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긴 했지만, 전작만큼 큰 반향을 이끌어내진 못했다.
여기에 티빙이 던진 승부수는 공포 스릴러, 피카레스크(주인공을 포함해 주요 등장인물이 모두 악인인 장르) 장르의 오리지널 시리즈 ‘돼지의 왕’이다. 영화 ‘부산행’ ‘반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을 통해 ‘연상호 유니버스’를 보여줬던 연상호 감독의 동명의 애니메이션이 원작이다. 20년 전 친구로부터의 메시지와 함께 시작된 의문의 연쇄살인으로 인해 ‘폭력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스릴러 드라마 ‘돼지의 왕’은 김동욱, 김성규, 채정안 등이 출연해 국내 시청자들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주연 가운데 김동욱은 이미 OCN 호러 드라마 ‘손 the Guest(더 게스트)’로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바 있다.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이나 영화 ‘국가대표’처럼 가볍거나 발랄한 캐릭터로 기억되던 그가 진중한 스릴러 연기로 호평을 받으며 연기의 폭을 한층 넓혔다는 평을 받았다. ‘돼지의 왕’에서의 활약이 기대되는 것도 이 같은 연기 변신 호평에서 비롯된다.
그동안 큰 성장을 보이지 못했던 왓챠도 상반기 공개한 BL(Boys Love·남성 동성애 로맨스) 드라마 ‘시맨틱 에러’로 이슈 선점에 성공했다. 앞서 ‘좋좋소’ 등 소규모 웹드라마로 마니아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입소문을 타던 가운데 ‘시맨틱 에러’를 통해 OTT 콘텐츠 트렌드 톱10 2위를 차지하며 비이용자들에게도 브랜드 네임을 알려 앞으로의 성장에 기대감이 모이고 있다. 이런 성장세를 타고 지상파나 케이블, 타 OTT 오리지널 콘텐츠에서 보기 어려웠던 다양한 장르의 영상화가 이뤄질 수 있을지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이런 가운데 국내외 OTT 서비스 플랫폼의 최강자 자리를 지키고 있는 넷플릭스가 내놓은 올해 K콘텐츠 청사진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미 지난 2월 25일 공개된 ‘소년심판’이 장르의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공개 사흘 만에 비영어권 드라마 부문 시청 3위를 차지하는가 하면, 3월 1~2주(2월 28일~3월 13일) 동안 비영어권 전 세계 차트 1위를 기록했다. 촉법소년들의 범죄와 국내법의 한계를 다뤘다는 점에서 해외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얻어내기 쉽지 않을 것이란 제작진의 우려가 불식되는 순간이었다.
이제까지 넷플릭스가 공개한 국내 작품 가운데 해외 시청자들의 높은 관심을 받은 것은 대부분 오락적인 재미를 앞세운 자극적인 작품이었다는 지적이 있었다. 넷플릭스 창사 이래 역대 가장 많은 시청 가구 수를 기록했던 ‘오징어 게임’을 비롯, 좀비물인 ‘킹덤’ ‘지금 우리 학교는’ 등의 작품 역시 자극적인 소재로 먼저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며 시청을 유도하는 식이었다. 이런 가운데 법정 드라마, 그중에서도 ‘드라마적인’ 요소를 강조하는 국내 작품이 해외 시청자들 사이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었다는 건 이후 이어질 차기작들에게도 고무적인 결과다.
한 OTT 플랫폼 홍보 담당자는 “넷플릭스의 ‘킹덤’ ‘오징어 게임’ ‘지금 우리 학교는’ 등으로 이미 해외 시청자들에게는 한국 작품의 완성도가 인증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이런 믿음이 이후에 공개될 다양한 장르의 다른 한국 작품들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처음에는 자극적인 소재에 대한 흥미로 시작된 관심이 ‘믿고 보는 한국 작품’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짚었다. 특히 넷플릭스의 경우는 올 한 해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수리남’ ‘안나라수마나라’ 등 영화 포함 총 25개 작품의 공개를 예고하고 있는 만큼 물량공세로도 OTT 서비스 플랫폼 점유율 1위의 아성을 지킬 것으로 보인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