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1명이 환자 30명 이상 돌봐, ‘입원 대기’도 급증…“이런 혹사 없었으면” 2년 전 ‘대구 간호사’ 바람 무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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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만, 40만, 30만, 20만…. 코로나19 확산세가 점차 수그러들고 있다.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하루 신규 확진자 67만 명을 넘기며 정점을 찍었던 뒤의 일이다. 정부도 오미크론 유행의 정점을 지났다고 판단,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하고 사실상 해제까지 검토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일상으로 돌아갈 기지개를 켜고 있다. 그런데 확진자의 최종 종착지인 코로나19 전담병원과 의료진은 2년 전에도 지금도 여전히 일상에서 죽음을 목격하고 있다.
#코로나19 치명률조차 몰랐던 2년 전
시작은 2020년 2월이었다. 대구지역 첫 확진인 31번 환자를 시작으로 감염자가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국공립기관인 대구의료원만으로는 밀려드는 환자를 감당할 수 없었다. 민간의료기관으로서는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이 공적인 역할을 자처해 병상을 내놓았다. 대구의 의료기관은 전국에 “인력을 보내달라”고 SOS를 쳤고 일부가 응답했다. 7년 차 간호사 A 씨도 2년 전 대구에 파견돼 일한 간호사 가운데 한 명이다.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퍼진 상황에서 돌아보면 대구는 첫 확산지라는 이유만으로 ‘코로나19 감염지’라는 누명을 쓴 것이지만, 당시엔 누구든 대구를 방문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 속에서 동산병원은 전쟁터 속 야전병원으로 불렸다.
A 씨는 “벌써 옛날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 그땐 확진자 한 명이 누구를 만나서 뭘 했는지까지 9시 뉴스를 탔잖아요. 자고 일어나면 확진자가 20만 명이 늘어나 있는 지금과는 받아들이는 무게가 달랐죠. (코로나19) 치명률에 대한 정보도 전무한 상황이라 저도 ‘걸리면 죽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갔어요. 누구든 걸리면 죽는다는데 저는 사람을 살리려고 간호사가 됐으니까”라고 말했다.
‘대단하다’는 말에 A 씨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 하루 만에 그만두고 싶었어요. 사명감으로 갔는데 하루가 지나니 사명감 같은 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쁘더라고요. 의료진에게 당시 코로나19는 어떤 면에서든 처음인 상대였어요. 상황을 좀 파악하고 나니까 불안함과 두려움이 몰려왔어요. 치료에 대한 결과를 전혀 예측할 수 없이 환자를 돌본다는 건 엄청난 부담이거든요. 일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엉엉’ 울면서도 일을 멈출 수 없어서 계속 했어요.”
그렇게 한 달 하고 보름 정도 지나니 환자가 줄었다. 국내 최초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됐던 동산병원은 그 해 여름, 전담병원에서 해제됐다. 밖에서는 대구와 의료진의 노고에 박수를 보냈다. 정부 주도로 ‘덕분에 캠페인’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A 씨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한다.
“전국민의 응원을 받으니 힘이 났죠. 제 직업에 자부심을 크게 느끼기도 했고요. 그땐 제대로 된 숙소도 없이 병원에서 먹고 자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제 후배들한테도 그렇게 응원만 받으면서 일하라고는 못 할 것 같아요. 대신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되 네 몸을 불사른 대가는 꼭 챙기라’고 하고 싶어요. 우리는 그러지 못 했으니까요. 언젠가 또 다른 감염병이 생길 텐데 이번 사태를 반면교사 삼아 다음에는 우리 간호 인력이 이 정도로 혹사당하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병동 밖에서도 일어나는 죽음
2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확산세가 감소하고 있다고 하는 정부와 현장의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코로나19 전담병원 의료진은 여전히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오히려 신규 확진자 정점 구간의 여파로 사망자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통상 신규 확진자 수는 약 2~3주 뒤에나 위중증 환자와 사망자 수에 반영되는 까닭이다.
인천의 한 중소종합병원(2차병원)에서 근무하는 유 아무개 씨가 소속된 병원은 올해 초 갑자기 코로나19 전담병원이 됐다. 소속 병원이 통째로 업무를 바꾸면서 유 씨도 덩달아 코로나19 전담 의료진이 돼 중등증(경증-중증사이) 병동에서 일하고 있다. 상급종합병원(대학병원)에서 9년, 현재 병원에서 4년을 일한 13년 차 간호사 유 씨에게도 매일 쏟아지는 업무는 감당하기 버거운 양이다. 유 씨는 전담병원 업무의 기준이 무의미해졌다고 했다.
“전담병원으로 바뀌기 전에도 코로나19 병동은 있었어요. 그래도 그때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어서 간호 업무에 중점을 두고 일을 할 수 있었어요. 전담병원으로 바뀌고 나서부터는 보조인력마저 보충해주지 않아 간호사들이 환자를 이송하는 경우가 대다수라 직접적인 간호를 제공할 수 있는 시간은 부족해졌죠. 몇몇 의사들은 원장의 환자부터 받으라는 지시에 감당하지 못 하는 환자를 받는 등 기준은 무의미해져버렸습니다.”
문제는 중증 병동이 아닌 곳에도 중증 환자가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약 60%대의 중증 병상 가동률을 들어 의료대응 여력이 충분하다고 말하지만 죽음은 중증 병동 밖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중등증 환자는 중증 환자에 비해 코로나19 증상은 경미하지만 입원 환자 가운데 상당수가 고령층 혹은 와상환자로 언제든 중증으로 갈 확률이 매우 높은 이들이다. 이미 건강이 좋지 않거나 거동이 불편했던 상황에서 오히려 격리 해제 이후 상태가 악화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처음에는 중증‧준중증환자가 많지 않아 관련 병동 두 곳을 폐쇄했는데 2월 중순에 오미크론 변이가 터지면서 요양병원, 요양원, 재택치료 고위험군 환자들이 정말 넘쳐 났어요. 대부분의 환자들이 나라에서 정한 분류대로라면 준중증-중증 환자들이었습니다. 준중증 환자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기계도 비치되지 않은 상태로 중등증 병동에 준중증 환자를 받기 시작했죠. 환자들이 몰아닥치는데 기계는 없고, 의료진은 물건을 빌리느라 아비규환이었어요.”
와상환자는 치료보다 돌봄과 간병이 두세 배는 더 필요하다. 이 역시 간호사들의 몫이다. 대면 진료를 위해 회진을 하는 의사도 있지만 중등증 환자의 경우 각 병상에 CC(폐쇄회로)TV를 설치해 간호스테이션에서 환자를 모니터링하며 돌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사는 환자와 통화를 해 상태를 확인하거나 간호사로부터 보고를 받는다. 그나마 환자의 정신이 온전해 통화가 가능하면 다행이지만 애초에 준중증으로 분류된 환자 가운데 상당수가 중등증 병동에 입원해 있어 통화조차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면진료는 고사하고 간호사 한 명이 실질적으로 돌보는 환자는 30명을 훌쩍 넘기는 것이 일상이다. 유 씨가 일하는 병원의 경우 환자 36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치매, 와상환자다. 병실에 들어간 간호사 두세 명이 36명을 주사부터 피검사, 기저귀 교체, 활력징후 측정, 그리고 욕창방지를 위한 자세 변경 등을 해준다. 차지 간호사 한 명은 이 모든 환자의 상태를 혼자서 파악해야 한다. 병동에서 ‘언제든 누구 하나 큰 사고 치겠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간호사 1명당 환자 10명이라는 기준은 특별한 경우에만 맞춰지는 숫자다. “중등증 병동은 환자 10명 당 간호사 1명을 기준으로 두고 있는데, 그 조건은 실사가 나올 때만 해당돼요. 실사기간을 제외하고는 간호사가 적든 많든 환자를 빈자리 없이 다 채우라는 지시가 내려와요. 그러다 실사기간이 되면 환자수 대비 간호사 수 맞춘다고 다시 환자 안 받고 돌리고…. 이런 형태는 꼭 전담병원이 아니더라도 이전에도 그랬고, 어느 병원이나 마찬가지예요.”
정부가 준다는 수당이 제대로 지급되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지만 결국 그보다 더 답답한 건 주먹구구식으로 돌아가는 현장이었다. 유 씨는 정말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병상 부족으로 돌아가는 일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대면진료를 통해 입원이 필요한 환자를 제대로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강조했다.
“확진자 수가 줄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전국에서 준중증, 중증, 유아, 산모 환자는 병상 부족으로 어레인지(사용 예약)가 되고 있어요. 병상을 배정받지 못한 아이들과 산모들을 보면 너무 마음이 아파요. 요즘 입원하는 환자들을 보면 정말 열이 나고 힘든 사람은 30% 정도고 나머지는 집에서 보호자가 돌보기 힘든 노인분들입니다. 기저귀 갈고 식사 준비해드리기 힘든 보호자의 마음도 이해하지만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확진자 수가 감소한다 하더라도 치료가 필요한 이들을 위한 병상은 항상 부족할 거라고 생각해요.”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