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유망주와 플래툰 기용 예고…박, 이른 시간 내 성적 못 내면 마이너행 우려
고교 졸업 후 그들의 진로는 엇갈렸다. 박효준은 116만 달러에 뉴욕 양키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미국으로 향했고, 김하성은 KBO리그 넥센 히어로즈에 2차 3라운드 전체 29순위로 입단했다. 김하성은 히어로즈 시절 3년 연속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는 등 화려한 성적을 올린 뒤 2021년 샌디에이고와 4년 2800만 달러 보장 계약을 맺었다. 김하성이 2021년 샌디에이고에서 빅리그 생활을 시작했다면 박효준은 7년간 마이너리그에서 인고의 세월을 보내다 2021년 7월 양키스에서 빅리거의 꿈을 이룬다.
2022시즌 야탑고 선후배는 샌디에이고와 피츠버그에서 개막 로스터에 이름을 올린 후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동병상련의 마음일 터. 둘 다 주전이 보장되지 않아 제한된 기회 속에서 자신의 진가를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샌디에이고 팬들 사이에선 김하성과 C.J. 에이브람스 중 누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유격수에 적합한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에이브람스는 2019년 드래프트 최고의 고교 유격수로 전체 6번픽 지명을 받고 520만 달러에 샌디에이고와 계약을 맺었다. 타고난 운동 능력과 감각을 갖고 있는 유망주로 꼽힌 에이브람스는 루키리그에서부터 빼어난 활약을 펼치며 샌디에이고 구단의 큰 관심을 받았다.
에이브람스는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더블 A 팀에서 활약했는데 이번 스프링캠프 초청 선수로 빅리그 선수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며 17번의 시범경기에서 타율 3할2푼4리(37타수 12안타), 2홈런, 4타점, 7득점, 3도루, OPS 0.873로 좋은 성적을 거뒀다.
김하성으로선 아쉬움이 남는다. 지난해 내셔널리그 홈런왕인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가 왼쪽 손목 골절로 3개월간 뛸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샌디에이고는 김하성을 ‘대체 자원 1순위’로 지목한 바 있기 때문이다.
밥 멜빈 감독도 당시 인터뷰를 통해 “타티스 주니어의 부상은 다른 선수들이 그가 돌아올 때까지 잘 버티고 있어야 한다는 동기부여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고 “우리가 지난해 김하성과 계약한 이유가 있다. 그가 기회를 잡을 것”이라며 김하성에게 주전 유격수 자리를 맡길 것임을 시사했다.
김하성은 지난 시즌 117경기 타율 2할2리(267타수 54안타), 8홈런, 34타점, OPS 0.622로 아쉬운 성적을 남겼지만 올해 13번의 시범경기에서는 타율 3할6푼7리(30타수 11안타), 1홈런, 5타점, OPS 1.072 맹타를 휘둘렀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정규시즌 개막전 선발 출전은 김하성의 몫이었다. 그러나 김하성은 4월 15일 현재 4경기에서 10타수 2안타 2볼넷 5득점을 기록했다. 에이브람스와의 경쟁 구도 체제에서 상대를 압도할 만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지 못한 것. 그로 인해 15일 샌디에이고 홈에서 펼쳐진 홈 개막전의 유격수 선발 출전은 에이브람스의 몫이었다. 미국 현지 언론도 샌디에이고의 특급 유망주의 활약에 한껏 기대를 드높였다.
에이브람스는 그 기대를 무너트리지 않았다. 15일 홈 개막전에서 홈 팬들의 뜨거운 응원을 받으며 3-0으로 앞선 2회말 선두타자로 나서 좌월 홈런을 때렸다. 볼카운트 0-1에서 상대 선발투수 찰리 모튼의 2구째 93.9마일의 패스트볼을 받아쳐 홈런을 만들었는데 샌디에이고 동료들은 빅리그 데뷔 홈런을 친 루키를 더그아웃에서 침묵 세리머니로 맞이했다. 관중석의 팬들이 연신 “CJ”를 외치며 환호를 보내자 에이브람스는 다시 더그아웃 밖으로 나와 손을 흔들며 팬들의 환호에 화답했다.
샌디에이고 전담 기자들은 팀 내 최고 유망주의 데뷔 첫 홈런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클럽하우스에서 김하성과 라커가 붙어 있는 에이브람스는 이날 경기 후 가장 많은 기자들을 상대로 자신의 데뷔 첫 홈런에 대한 소감을 들려줄 수 있었다.
타티스 주니어가 복귀할 때 까지 김하성을 주전 유격수로 낙점하려 했던 멜빈 감독은 에이브람스의 실력과 스타성에 매료된 듯 우타자인 김하성은 좌투수가 선발 출전할 때, 좌타자인 에이브람스는 우투수가 선발 출전할 때 번갈아 출전시킬 것임을 시사했고, 홈 개막전 선발 출전은 에이브람스한테 맡겼다.
김하성으로선 출전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매 타석에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야만 한다. 그 답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이도 선수 자신이다.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박효준은 시범경기 때만 해도 개막 로스터에 이름을 올리는 게 목표였다. 박효준은 마이너리그 7년 만에 그 꿈을 달성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현실은 냉혹했다. 피츠버그는 현재 내야수들끼리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28일 로스터에 합류한 명단을 보면 외야수는 3명, 내야수는 무려 9명이나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박효준은 포수, 투수, 1루수를 제외하곤 모든 포지션에서 뛸 수 있는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진화하고 있다.
14일(한국시간) 피츠버그 홈에서 펼쳐진 시카고 컵스와의 경기에 9번 타자 우익수로 출전한 박효준에게 경기 전 우익수 출전 경험이 많은 지를 물었다. 박효준은 “시범경기 때 딱 한 차례 출전했다”고 대답했다. 자신의 주 포지션인 2루수를 맡았다면 마음이 편했을 텐데 강한 어깨와 빠른 발을 필요로 하는 외야수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을 터. 하지만 박효준은 이런 대답을 들려준다.
“강한 타구는 내야든 외야든 처리하기가 힘들 수밖에 없는데 시즌 초엔 어깨에 힘을 주는 게 부담스럽다. 보강 운동을 통해 어깨를 단련시켜 외야 수비에 대응해야만 한다. 지금은 외야든 내야든 가릴 때가 아니다. 자꾸 나가서 보여줘야 출전 기회가 생기기 때문에 경기 출전 자체가 지금은 감사하고 행복하다.”
14일 컵스전에서 박효준은 2타수 무안타 1득점 1볼넷 1삼진을 기록했다. 이날 박효준이 상대한 컵스의 선발 투수 카일 헨드릭스는 싱커, 포심 패스트볼, 체인지업, 커브 등 네 가지 구종을 구사했는데 싱커의 평균 구속은 86.2마일, 포심 패스트볼은 86.7마일이었다. 한마디로 기교파 투수라고 할 수 있다.
박효준은 빠른 공을 좋아하는 편이다. 마이너리그에서 숱하게 상대한 공이 빠른 공이다 보니 느린 공의 투수를 상대할 때 어려움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선수들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마이너리그에서 빠른 공을 상대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기교파 투수를 상대한 경험이 거의 없었던 나로선 낯선 상황이었다.”
박효준은 삼진을 당한 첫 타석 이후 두 번째 타석을 앞두고 더그아웃에서 계속 태블릿을 보고 또 보며 다음 타석을 준비했다. 그 덕분에 볼넷을 얻어 출루했고 득점까지 올리게 됐다.
지금으로선 높은 금액의 몸값을 받고 입단한 김하성보다 박효준의 입지가 좀 더 불안한 상황이다. 5월 1일까지 유지되는 28인 로스터가 26인 로스터로 축소될 경우 성적을 올리지 못하면 마이너리그행을 예상할 수도 있다.
박효준은 아직 피츠버그에 자신의 거처를 마련하지 못했다. 구단에서 마련해준 호텔에서 생활한다. 김하성은 펫코파크 인근에 집을 마련했고, 현재 어머니가 샌디에이고에서 김하성을 돕고 있다.
미국 샌디에이고=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