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선행 주자들 황당 실수로 끝내기 안타 날려…1루서 3루 직행했던 채태인 ‘채름길’ 별명 얻어
당시 뉴욕은 1-1로 맞선 9회 말 2사 1·3루 끝내기 승리 기회를 잡았다. 엘 브리드웰이 중전 적시타를 날렸고, 승리를 확신한 뉴욕 선수들은 그라운드로 뛰어 나와 기쁨을 나눴다. 이대로 승리가 확정됐다면 정규시즌 우승팀은 뉴욕으로 결정됐을 터. 그러나 경기는 다음 날 '무승부' 판정을 받았다. 3루 주자의 득점 장면을 본 뉴욕 1루 주자 프레드 머클이 2루까지 가지 않고 더그아웃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그 장면을 포착한 컵스 2루수 조니 에버스는 공을 받아 2루를 밟은 뒤 머클의 포스아웃을 주장했다. 메이저리그(MLB) 사무국도 컵스의 이의 제기를 받아들여 뉴욕의 득점을 무효화했다.
두 팀은 결국 추가로 정규시즌 우승을 건 단판 승부를 벌여야 했고, 이 경기에서 승리한 컵스는 여세를 몰아 월드시리즈 우승컵까지 들어올렸다. 동시에 뉴욕 팬들의 분노는 2루를 밟지 않은 머클에게 향했다. 머클은 당시 내셔널리그 최연소 선수였는데, 1926년 은퇴할 때까지 '본헤드 머클'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고통을 받았다. 존 맥그로 당시 뉴욕 감독은 MLB 사무국의 무승부 결정에 항의하면서도 "다른 경기에서 한 번 더 이겼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이라며 머클을 감쌌다.
#끝내기 승리 날린 주루 플레이
올 시즌 KBO리그에서도 이와 비슷한 본헤드 플레이가 나와 화제를 모았다. 5월 18일 잠실구장. 팽팽한 2-2 연장 승부가 이어지던 잠실 두산 베어스-SSG 랜더스전에서 벌어진 일이다.
두산은 1-2로 뒤진 8회 말 동점을 만들어 승부를 연장으로 몰고 갔다. 11회 말에는 천금 같은 끝내기 승리 기회를 잡았다. 선두 타자 김재호의 중전 안타와 정수빈의 절묘한 번트 안타로 만든 무사 1·2루에서 허경민이 초구 희생 번트에 성공해 1사 2·3루 기회를 이어갔다. SSG 벤치는 두산 다음 타자 안재석을 자동 고의4구로 내보내 병살타를 노린 만루 작전을 폈다.
다음 타석에는 9회 말 2사 2·3루에서 삼진으로 돌아섰던 조수행이 들어섰다. 절치부심한 그는 이번엔 SSG 불펜 투수 장지훈의 2구째 체인지업을 받아쳐 외야 왼쪽으로 짧은 안타성 타구를 보냈다. SSG 좌익수 오태곤이 몸을 날렸지만, 공은 한 발 먼저 그라운드에 떨어진 뒤 글러브 안으로 들어갔다. 좌전 안타. 3루 주자 김재호는 타구가 바운드된 것을 확인한 뒤 천천히 홈을 밟았다. 그렇게 두산의 승리로 경기가 끝나는 듯했다.
두산 선수들이 신나게 더그아웃에서 뛰쳐나오려던 순간, 심판진이 돌연 경기 종료가 아닌 공수교대를 선언했다. 두산 2루 주자 정수빈과 1루 주자 안재석이 이 타구를 좌익수 플라이로 착각하고 다음 베이스로 진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루와 3루 사이에서 멈칫했던 정수빈이 2루로 천천히 돌아가자 뒤에서 우왕좌왕하던 안재석도 다시 1루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상황을 눈치 챈 SSG 내야진이 빠르게 움직였다. 오태곤의 송구를 받은 유격수 박성한이 2루 주자 정수빈을 태그아웃한 뒤 곧바로 2루를 밟아 1루 주자 안재석까지 포스아웃 처리했다. 조수행의 타구는 '좌전 안타'가 아닌 '좌익수 땅볼'로 기록됐고, 이 땅볼이 좌익수-유격수(7-6T-6B) 병살타로 연결됐다.
두산은 곧바로 비디오 판독을 신청했다. 박성한이 2루를 먼저 찍고 정수빈을 태그했을 경우, 1루 주자 안재석의 포스플레이 상황이 해제되면서 김재호의 득점도 인정되는 점에 실낱 같은 희망을 걸었다. 하지만 리플레이 화면에서도 박성한이 정수빈을 먼저 태그한 뒤 2루를 밟는 과정이 분명히 확인됐다. 그렇게 조수행의 끝내기 타점과 김재호의 득점은 없던 일이 됐고, 경기는 12회 초로 넘어갔다.
프로 데뷔 6년 만의 첫 끝내기 안타를 허무하게 날린 조수행은 크게 흔들렸다. 수비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인 듯했다. 결국 1사 1·3루에서 나온 SSG 외국인 타자 케빈 크론의 플라이성 타구를 펜스 앞까지 따라갔다가 간발의 차로 놓쳤다. 그 후엔 마치 끝내기 안타를 맞고 그대로 패한 것으로 착각한 듯 고개를 숙인 채 후속 플레이를 하지 않았다. 조수행이 곧 상황을 깨닫고 다시 공을 잡으러 달려갔지만, 그 사이 SSG 1루 주자까지 홈을 밟아 스코어는 2-4로 벌어졌다. 크론 역시 어부지리로 3루에 안착했다. 두산은 결국 1점을 더 주고 2-5로 졌다.
놓친 줄 알았던 1승을 다시 얻게 된 김원형 SSG 감독은 경기 후 "나도 야구 하면서 처음 겪는 일이었다"고 혀를 내둘렀다. 또 "모든 사람이 '졌다'고 생각한 순간에 우리 선수들이 마지막까지 좋은 플레이를 완성한 덕에 행운이 따랐다고 생각한다. 끝까지 집중한 선수들을 칭찬하고 싶다"고 박수를 보냈다.
반면 김태형 두산 감독은 다음 날 경기를 앞두고 진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안재석이 심판 콜을 보지 못한 것 같다. 주루 코치가 계속 '진루하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선행 주자) 정수빈만 바라보다 다시 (1루로) 돌아가더라"고 떠올렸다. 이어 "2루 주자 정수빈은 (조수행의 타구가) 안타든, 플라이든 경기가 끝났다고 생각해서 멈췄던 거다. 1루에 있던 안재석은 심판콜을 보고 무조건 뛰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물론 그런 상황에서 주자가 순간적으로 빠르게 판단하기가 쉽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김 감독은 또 12회 초 조수행의 수비와 관련해서는 "그 장면은 자세히 보지 못했다. 어쩐지 공이 빨리 돌아와야 하는데 (외야에서) 한참을 안 오더라"며 "잡을 수도 있는 타구였는데 회전이 많이 걸렸던 것 같다. 벤치에선 '잡았다'고 생각했지만 끝내 못 잡았다"고 아쉬워했다.
승리 대신 패배를 얻은 두산은 선수단 미팅을 통해 "분위기를 다잡자"고 결의했다. 김 감독도 "강석천 수석코치에게 선수단 분위기를 다시 한 번 신경 써달라고 얘기했다. 각 파트 담당 코치들도 선수들과 얘기를 나눴을 것"이라며 믿음을 보였다. 하지만 두산은 이후 두 경기를 더 진 뒤 5월 21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간신히 5연패를 끊었다. 치열한 순위 싸움 중인 두산 입장에선 적잖은 충격과 내상을 남긴 하루였다.
#안타를 파울로 착각한 외야수
롯데는 두산의 본헤드 플레이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대형 실수로 승리를 놓쳐 입방아에 올랐다. 지난 6월 2일 부산 LG 트윈스전에서 외야수가 안타를 파울로 착각해 동점을 허용하는 해프닝이 벌어진 것이다.
롯데가 2-1로 앞선 7회 초 2사 후, 타석에 들어선 LG 대타 이형종은 롯데 불펜 투수 김유영을 상대로 오른쪽 외야에 높이 뜨는 플라이성 타구를 날렸다. 파울라인 근처까지 날아가긴 했지만, 우익수가 충분히 잡을 수 있을 만한 타구로 보였다. 그러나 롯데 우익수 고승민의 타구 판단이 안일했다. 천천히 달려가다 타구가 예상보다 빠른 것을 깨달은 고승민이 급하게 속도를 높여 팔을 뻗었지만, 공은 글러브 가장자리에 맞고 튕겨 나가 파울라인 밖으로 떨어졌다. 이닝을 그대로 끝낼 수 있는 상황에서 나온 실책성 플레이였다.
더 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고승민이 공을 잡으려다 놓친 지점은 페어 지역이었지만, 그 자신은 이 타구가 파울이 된 것으로 착각한 듯했다. 고승민은 재빨리 공을 잡아 내야수들에게 송구하는 대신, 천천히 파울 지역 펜스 앞에서 공을 주워 볼보이에게 던졌다. LG 타자 주자 이형종이 이미 2루를 밟고 3루까지 노리고 있는 상황인데도 그랬다. 낙구와 동시에 안타를 선언한 최수원 1루심의 판정도 보지 않은 채 고승민 본인의 오판에 기대 엉뚱한 플레이를 한 것이다. 공이 볼보이의 손에 들어간 순간, 멀쩡한 인플레이 상황은 볼데드 상황으로 둔갑했다.
롯데는 곧바로 안타-파울 관련 비디오 판독을 신청했지만, 두 번 볼 것도 없이 명백한 페어 타구였다. 심판진은 비디오 판독에서 원심을 유지한 뒤 류지현 LG 감독의 이의를 인정해 이형종에게 2개 베이스 추가 진루권을 줬다. 야구규칙 6.01(d)에 따르면, 공이 볼보이의 신체 혹은 장비(의자)에 맞을 경우 주자에게 2개 베이스 진루권이 자동으로 부여된다. 2루까지 진루했던 이형종은 이 규칙에 따라 동점 득점을 올렸다. 이 과정에서 심판진에게 거칠게 항의하던 제럴드 레어드 롯데 배터리코치가 퇴장당하기도 했다.
결국 래리 서튼 롯데 감독이 나와 정확한 설명을 들은 뒤 판정을 인정했다. 그리고 곧바로 우익수 고승민을 더그아웃으로 불러들였다. 그렇게 순식간에 허무한 동점을 허용한 롯데는 결국 연장 12회 접전 끝에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2-2 무승부를 기록했다.
치명적인 실수로 망신을 산 고승민은 그 후 나흘 뒤 1군 등록이 말소됐다. 좋은 타격감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LG전 본헤드 플레이로 인한 문책성 2군행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서튼 감독은 "그 문제와는 관계가 없다. 허리 쪽에 통증이 있어 엔트리에서 제외한 것뿐"이라며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지는 않다. 계속해서 부상 부위 보강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고 부인했다.
#잊을 만하면 소환되는 선수들
프로야구에서 이런 본헤드 플레이가 나올 때마다 반드시 언급되는 선수가 있다. SK 와이번스에서 은퇴한 내야수 채태인이다. 그가 삼성 라이온즈 소속이던 2011년 5월 3일 롯데전. 1루에 서 있던 채태인은 다음 타자 신명철이 우익수 키를 넘어 펜스 근처까지 향하는 안타성 타구를 날리자 일단 스타트를 끊었다. 채태인이 막 2루를 돌아 3루 쪽으로 방향을 바꾸려는 찰나, 상대 외야수들이 공을 잡을 것처럼 타구 가까이 접근하는 모습이 보였다. 채태인은 더블아웃을 피하기 위해 급히 몸을 돌려 다시 2루를 밟고 1루 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이 타구는 끝내 롯데 우익수 손아섭과 중견수 전준우 사이에 떨어지는 안타가 됐다. 그러자 마음이 더 급해진 채태인은 다시 2루를 거쳐 3루로 가는 과정을 반복하는 대신, 갑자기 마운드 옆 잔디를 가로지르면서 3루까지 직선 주행을 하기 시작했다. 2루를 지나치다 마음이 급해 베이스를 정확하게 찍지 못한 사례는 수차례 나왔어도, 아예 2루를 무시하고 3루로 먼저 달린 선수는 채태인이 처음이었다. 야구장에 있던 모두가 눈을 의심했고, 이내 술렁였다. 그 사이 롯데 2루수 조성환이 공을 잡아 베이스를 태그한 뒤 누의 공과를 어필했다. 결과는 당연히 아웃이었다.
야구장과 양 팀 더그아웃에는 한동안 폭소가 끊이지 않았다. 당시 삼성 사령탑이던 류중일 감독조차 헛웃음을 감추지 못했을 정도다. 차마 웃을 수 없던 사람은 단 한 명. 멀쩡한 안타가 '우전 땅볼'로 둔갑하면서 1루에 멈추게 된 신명철뿐이었다. 그 후 채태인에게는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는 의미의 '채럼버스(채태인+콜럼버스)', 자신만의 지름길을 만들었다는 뜻의 '채름길(채태인+지름길)' 등 다채로운 별명이 붙었다. 채태인은 은퇴하면서 "그때 2루를 안 밟고 뛴 게 현역 시절 가장 후회되는 순간"이라고 떠올렸다.
LG 포수 유강남의 '유령 주자 사건'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5월 21일 인천 SSG전. 9회 초 5-4로 승부를 뒤집은 LG는 9회 말 1사 만루에서 마무리 투수 고우석이 밀어내기 볼넷을 내줘 다시 5-5 동점을 허용했다. 계속된 1사 만루 끝내기 위기에서 SSG 이재원의 타구가 LG 3루수 문보경 앞으로 향했다. 문보경은 공을 잡고 3루를 찍어 2루 주자 한유섬을 포스아웃 처리한 뒤 홈으로 송구했다. 3루 주자 추신수가 홈과 3루 사이에서 런다운에 걸렸다. 승부는 그렇게 연장전 돌입을 눈앞에 둔 듯했다.
그때 혼란스러운 상황이 벌어졌다. LG 포수 유강남이 추신수를 3루까지 쫓아가다 태그에 실패했고, 그 사이 추신수와 한유섬이 잠시 3루 근처에서 맞닥뜨렸다. 곧이어 유강남은 돌연 추신수가 아닌 한유섬을 태그하러 따라가기 시작했다. 추신수조차 당황해 홈으로 주춤주춤 발걸음을 옮겼지만, 유강남은 이미 포스아웃된 주자 한유섬에게 집중하느라 그 장면을 놓쳤다.
심지어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유강남이 3루 커버를 하던 손호영에게 급히 공을 토스했지만, 손호영 역시 홈송구를 하지 않고 추신수를 바라만 봤다. 런다운에 걸렸던 추신수가 아무런 방해 없이 홈을 밟으면서 SSG는 기상천외한 끝내기 승리를 올렸다. KBO 공식 기록원은 손호영이 홈으로 공을 던졌을 경우 주자를 아웃시킬 수 있었을 거라고 판단해 손호영의 끝내기 실책으로 최종 기록했다.
이 장면은 경기 다음 날 MLB닷컴에 '당신이 꼭 봐야 할 황당한 끝내기 장면'이라는 제목과 함께 동영상으로 소개됐다. 한유섬이 이미 아웃된 주자라는 걸 깨닫고 황당해하는 유강남의 얼굴이 클로즈업되기도 했다. MLB닷컴은 "MLB에서 뛰다 KBO리그로 간 추신수가 끝내기 득점의 주인공이었다"며 반가움도 표현했다.
배영은 중앙일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