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들 ‘그럼 어려울 땐 세금 깎아 줄 건가’ 불만…업종별 형평성 논란도
SK이노베이션과 에쓰오일,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 4사는 최근 국제유가가 오르면서 올 1분기 역대 최대 규모의 영업흑자를 기록했다. SK이노베이션 1조 6491억 원, 에쓰오일 1조 3320억 원, GS칼텍스 1조 812억 원, 현대오일뱅크 7045억 원으로 4사 합계가 4조 7668억 원에 달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 2조 2589억 원 보다 2배 이상 늘었다.
정유사들이 사오는 원유는 시세대로 계산된다. 값이 오르면 재고로 보유한 원유 값도 오른다. 유가가 50달러일 때 1000만 배럴은 장부상 5억 달러로 평가되지만, 유가가 100달러로 오르면 장부상 10억 달러가 되고 5억 달러의 평가이익이 발생하는 원리다. 정제유 값도 원유값에 연동된다. 유가가 50달러일 때 정제마진이 10달러라면 유가가 100달러일 때는 20달러가 되는 식이다. 유가가 오르면 이익 절대 규모도 늘어나는 구조다.
'횡재세'를 해외에서는 이미 시행 중인 곳도 있다. 영국은 지난 5월 에너지 요금이 급등하자 석유와 가스업체에 25%의 초과 이윤세를 부과하고 이를 재원으로 가계에 150억 파운드(약 24조 원)를 지원하기로 했다. 미국 민주당도 이윤율이 10%를 넘어서는 석유회사에 추가로 21%의 세금을 물리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국내에서 법률로 기업의 이익을 제한하거나 환수하려는 시도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 당시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은 대기업의 초과 이익을 중소 협력업체와 나누는 ‘초과이익공유제’를 제안했다. 정부·여당·대기업의 반발에 도입이 무산됐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대선 공약 중 하나였던 ‘협력이익배분제’라는 모델을 개발했지만, 20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됐다. 전체 중소기업의 20%에 불과한 대기업 협력사만 특혜를 본다는 문제와 재계의 반발 때문이다.
성공한 사례도 있다. 1998년 법인세법 56조에 적정유보초과소득에 대한 법인세 항목이 신설된다. 자기자본 100억 원을 초과하는 대기업집단 소속 법인에 적정수준을 초과하는 이익에 15%의 세금을 부과하는 내용이다. 2001년 삭제된 이 조항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기업의 미환류 소득에 대한 법인세 항목으로 부활한다. 투자·임금·배당 등으로 환류하지 않은 소득에 10%의 세금을 추가하는 내용이다.
정유사의 떼돈에 세금을 물리는 데 따른 논란은 두 가지다. 많이 벌 때 세금을 더 내면 어려울 때는 세금을 깎아줘야 하는지와 정유 외에 다른 업종에 대해서도 적용할지다. 당장 정유사들은 영업이익 가운데 절반가량이 실제 발생한 이익이 아닌 원유재고 가격 상승에 따른 평가이익이라고 주장한다. 반대로 유가가 급락한 2020년에는 연간 5조 원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했지만 세제상 혜택이 없었다고 강조한다.
초과이익공유제나 협력이익배분제는 물론 실제 시행됐던 미환류소득법인세도 특정 업종을 대상으로 하지 않았다. 원자잿값 상승으로 이익을 보는 기업들은 정유사들 외에도 많다. 금융위기나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만들어진 저금리 환경에서 ‘떼돈’을 번 금융회사나 가상자산거래소들도 있다.
정유사 이익에 세금을 부과해도 기름값이 낮아지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정유사들이 이익을 줄이기 위해 낮은 가격에 기름을 공급해도 일선 주유소들이 이익 극대화를 위해 소비자 판매가격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초과 이익을 조절하기 위해 정제마진을 낮출 경우 무역수지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석유제품은 반도체에 이어 2위 수출품목이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