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한테 동기 부여 제공 가장 어려워…유재학 감독 사퇴 소식? 나도 믿기지 않았다”
2004년부터 2020년까지 16년 동안 현대모비스 유니폼을 입고 뛰며 5번의 정규리그 우승과 6번의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맛봤던 양동근 코치. 그 중심에는 유재학 감독이 존재하지만 유 감독은 최근 감독 자리에서 내려와 총감독으로 자리를 옮겼고, 조동현 감독이 유 감독의 뒤를 이어 사령탑에 올랐다.
한 시대를 풍미한 한국 농구의 대표적인 포인트가드로 역대 최고의 활약을 펼쳤던 양 코치를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농구장이 아닌 한 야구 아카데미에서 만났다.
양동근 코치를 농구장이 아닌 야구 아카데미에서 만난다고? 실제로 일어난 상황이다. 양 코치의 딸 지원 양이 미국에서 소프트볼 선수로 뛰고 있는데 방학 동안 국내에 왔다가(가족들은 미국 거주 중) 야구 레슨을 받게 된 것. 지원 양의 야구 선생이 전 두산, 롯데 선수 출신인 ‘바른야구’의 임재철 단장이다.
“내가 KIA 이범호 코치와 친구인데 이 코치를 통해 NC 손시헌 코치를 알게 됐고, 손 코치를 통해 임재철 단장을 만날 수 있었다. 지원이가 운동 신경이 뛰어난 편이다. 농구는 겨울에 배우고, 여름엔 소프트볼을 하고 있는데 이번에 지역 대표로 뽑혀 플로리다에서 열리는 전미대회에 참가할 예정이다. 그래서 미국 가기 전 임 단장한테 짧은 레슨을 받았다.”
임재철 단장은 양지원 양의 소프트볼 실력에 대해 “유전자의 힘은 무섭다는 걸 새삼 느꼈다”면서 “남다른 파워로 인해 타구 비거리가 엄청나다. 특유의 긍정적인 멘탈도 눈에 띄는 부분”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양 코치는 은퇴 후 미국에서 보낸 1년여의 시간을 ‘휴식과 행복’으로 정리했다. 선수 생활 동안 가족한테 소홀할 수밖에 없었던 시간들의 보상이 미국에서 이뤄졌다며,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하루하루를 감사히 여겼다고 말한다.
“원래는 미국에서 2, 3년 더 있다가 팀에 복귀하고 싶었는데 유재학 감독님이 너무 오래 있으면 한국 농구의 감을 잃어버릴 수 있으니 짧고 굵게 다녀오라고 조언해주셨다. 1년 정도 지나 가족들을 미국에 두고 혼자 귀국해서 2021년 7월 여름 팀에 합류했다. 초보 코치로 뭘 해야 할지도 잘 모른 상태에서 정신없이 시즌을 치른 것 같다. 선수 때와는 다른 면에서 코치 생활이 만만치 않다고 들었는데 상상 이상으로 힘든 부분도 있더라.”
양 코치가 가장 어렵다고 생각한 건 선수들에게 동기부여를 제공하는 상황들이다. 자신도 선수 때 경험한 바에 의하면 코치가 선수한테 전하는 동기부여의 타이밍과 내용이 중요한데 그걸 찾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
“선수들과 나 사이엔 세대 차이가 존재한다. 내가 배운 방식으로 선수들을 대하면 진심이 왜곡될 수 있어 말하고 싶다고 다 말하지 않고 참고 인내하는 법도 배웠다. 내가 말하기 전에 선수들이 먼저 느끼길 바라면서 말이다. 그런 상황들이 어려웠다.”
양 코치가 선수 시절 달고 뛰던 주장 완장은 현재 함지훈이 차고 있다. 누구보다 주장의 어려움을 잘 헤아리고 있는 양 코치는 자신의 은퇴 후 함지훈이 부대끼는 시간들을 보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훈이가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나랑 함께 보낸 세월도 길었고 내가 선수들을 리드하는 상황이 아닌 자신이 후배들을 끌고 가야 하는 현실이 종종 벽으로 다가왔으리라 본다. 코트에서 같이 뛴 형이 코치로 돌아오게 되면 좋은 점도 있겠지만 불편한 점도 존재했을 것이다. 지난 시즌 코트 안팎에서 지훈이가 감당하고 있는 고민들을 지켜보면서 마음 속으론 응원을 보냈다.”
양동근이 선수로 뛰는 동안 울산 현대모비스는 영광스런 순간들을 만끽하며 KBL의 명문 팀으로 자리를 잡았다. 양동근의 존재감이 절대적이었던 팀이 양동근이 빠진 공백을 메우고 채우는 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일이다. 양동근은 누구보다 선수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심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더 이상 선수로 뛸 수 없는 몸이다. 그럼에도 양동근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팀 성적을 비교한다면 선수들이 얼마나 부담을 느끼겠나.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 나의 선수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팀도 내가 없는 이후의 상황을 예상해서 미리 준비했고, 감당할 건 감당했다고 본다. 후배들이 그런 비교의 시선에 위축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 또한 이겨내야 하는 부분이었으니까 말이다.”
울산 현대모비스는 7월 20일 매우 이례적인 보도자료를 냈다. 2004년부터 18년 동안 팀을 이끌었던 ‘만수’ 유재학 감독이 사퇴한다는 소식이었다. 2004~2005시즌부터 울산 모비스의 사령탑을 맡은 이래 지난 시즌까지 6번의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이뤘다. KBL 역대 최초 700승을 올린 감독계의 레전드인 유 감독이 현장에서 물러나 총감독을 맡는다는 소식은 농구인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안겨줬다.
“나도 놀랐다. 기사 나오기 며칠 전에 미리 알았지만 그때도 ‘이게 진짜인가?’ 싶어 믿기지 않았다. 솔직히 지금도 농구장 가면 감독님이 나와 계실 것만 같다. 선수 시절부터 은퇴 후, 그리고 코치 생활할 때까지 나한테 감독은 유재학 감독님뿐이었다. 내 농구 인생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분인데 그분이 안 계신다는 게 와 닿지 않는다. 그럼에도 내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조동현 감독님을 도와 팀을 잘 이끌어가는 것이고, 선수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 그래서 이번 시즌을 준비하는 시간들이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선수와 감독이 아닌 코치와 감독으로 한 시즌을 보낸 경험이 양 코치한테는 묵직한 추억으로 남았다고 한다. 선수 때는 보이지 않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감독이 굉장히 외로운 자리라는 것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유재학 감독님과 거의 20년을 함께 생활했는데 코치 입장에서 본 감독님의 모습은 이전과 큰 차이가 있었다. 감독님을 통해 ‘와, 저 스트레스를 어떻게 감당하셨을까’하는 의문과 감탄이 반복됐다. 코치들이 의견을 내지만 최종 결정은 감독님의 몫 아닌가. 그 선택에 따른 결과, 결과에 대한 책임감, 팀을 이끌어가는 모든 부분들이 힘들어 보였다.”
양동근 코치는 선수 시절부터 울산 현대모비스 미래의 감독감으로 꼽혔다. 은퇴하면 지도자 과정을 거쳐 팀을 이끌 리더라고 평가받았다. 솔직히 당사자한테는 부담스러운 시선일 수밖에 없다.
“그것도 돼야 되는 거 아닌가. 내가 잘해도 안 될 수 있는 거고, 준비 많이 했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선수 때도 이 자리가 내 자리라고 고정해서 생각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세상에 당연한 일이 뭐가 있겠나. 현재에 충실하지 않으면 미래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은 다른 것보다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착실히 해나가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돌발 질문을 건넸다. 만약 다른 팀에서 양동근 코치를 감독으로 영입한다면 울산 현대모비스를 떠날 수 있느냐는 내용이었다. 그는 “선수 때도 접촉해 온 팀이 없었는데 지금 굳이 나를 데리고 갈 팀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선수도 그렇지만 팀을 이끄는 지도자는 자신의 선택이 아닌 선택을 받아야 가능한 일이라고 못 박았다.
양 코치는 2001년 동아시아경기대회로 성인 국가대표팀에 데뷔한 이래 2015년 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까지 14년간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한 바 있다.
이미 막을 내렸지만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렸던 국제농구연맹(FIBA) 아시아컵에 나섰던 남자 농구대표팀과 관련된 질문을 이어갔다. 대표팀은 8강에서 뉴질랜드한테 패하는 바람에 목표로 삼은 4강 진출에 실패했다. 당시 한국은 뉴질랜드와의 8강전에서 2쿼터까지 46-40으로 앞서 있다가 3쿼터에 이대성이 두 번째 테크니컬 반칙을 받으며 퇴장했고, 4쿼터 막판 최준용이 심판 판정에 강하게 항의하다 또 퇴장당하면서 승기를 잃고 78-88로 패했다. 이후 이대성은 개인 SNS를 통해 사과문을 게시하며 팬들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을 나타냈다.
양 코치는 이대성이 대표팀 주장이었기 때문에 조금 더 감정 표출을 자제했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미 지난 일이고, 과거의 경험이 됐기 때문에 이대성이 그 일을 통해 또 다른 성장을 하길 바란다는 마음을 전했다. 대표팀 분위기가 좋았던 만큼 그 결과가 몹시 아쉽지만 최선을 다해 치른 경기들이라 누구의 잘못을 지적하기 보단 모두 배움을 갖고 각자의 팀으로 돌아갔기를 바랐다.
“내가 은퇴를 결심했던 건 젊은 선수들과의 경쟁에서 밀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 선수들은 나보다 더 좋은 피지컬과 기술을 갖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더 좋은 선수로 성장할 수 있다. 문제는 멘탈이다. 정신적인 면에서 강해지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이 있어도 소용이 없다. 대표팀이든 소속팀에서든 농구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선수가 되는 것도 필요하다. 그래야 ‘원팀’이 될 수 있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