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 투어·KPGA 등 가는 곳마다 우승…여러 나라 거치며 자라 영어·타갈로그어도 능통
#'양파' 극복하고 우승
김주형은 4라운드 합계 20언더파, 260타로 2위 그룹과 5타 차로 여유 있게 우승했다. 이번 대회에서 시작이 좋지는 못했다. 1라운드 1번 홀에서 쿼드러플 보기를 범한 것이다. 파4 홀에서 8타를 기록, 소위 주말 골퍼들 사이에서 불리는 '양파'를 기록했다.
첫타부터 러프로 보낸 그는 두 번째 타에서도 실수를 범하며 약 43m만 전진했다. 홀컵까지는 여전히 약 91m 이상 남아 있었다. 세 번째 타는 과도한 힘이 들어간 듯 보였다. 15m 내외로 홀컵과 거리를 좁혔지만 그린 뒤로 공이 넘어갔다. 결국 그린 위로 온전히 공을 올리기까지 7타를 기록했다.
충분히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어진 홀에서도 실수를 반복하며 무너질 수 있었다. 그대로라면 컷 탈락이었다. 그러나 김주형은 좀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양파 이후 두 번째 홀에서 파를 기록한 김주형은 3번 홀에서 곧장 버디를 기록하며 흐름을 뒤집었다. 이날 전반에만 버디 3개, 후반에는 4개를 추가하며 종합 3언더파를 기록했다.
대회 첫날 양파와 함께 대회 20위권 밖에 있던 김주형이 우승컵을 들어 올릴 수 있었던 배경은 최종일 활약이었다. 4라운드에서만 9언더파를 몰아치며 우승을 차지했다. 전반에만 버디 6개, 이글 1개로 8타를 줄이며 역전에 성공했다.
미국의 골프 전문가 저스틴 레이에 따르면, 지난 PGA 투어 40년의 역사에서 김주형은 양파로 대회를 시작하고도 우승을 차지한 유일한 선수가 됐다. 생애 첫 PGA 투어 대회 우승을 독특한 이력과 함께 시작했다.
#다양한 무대에서 활약
김주형의 이번 대회로 PGA 투어에서는 첫 우승 경험이지만 그간 아시안 투어,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등 다양한 무대에서 활약했고 가는 곳마다 우승을 경험했다.
티칭 프로 아버지 아래에서 태어난 김주형은 자연스레 골프를 접했고 6세부터 클럽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양한 나라에서 거주 경험이 있고 그만큼 다양한 무대에서 골퍼로도 활동하며 '잡초 골퍼'로 불리기도 했다. PGA 투어 홈페이지에서도 김주형이 '중국, 태국, 호주, 필리핀 등 여러 나라를 거치며 자랐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 같은 배경을 가진 만큼 타갈로그어(필리핀 공용어)와 영어에도 능통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린 시절 해외에서 생활하며 골퍼로 성장했기에 국내 정상급 골퍼라면 대부분 경험한 국가대표 경력이 그에겐 없다.
필리핀에서 6년간 아마추어 무대에서 경험을 쌓은 김주형에겐 두려울 것이 없었다. 2019년 아시안투어 하부투어에서 3승을 거둔 그는 1부투어 진출 이후 우승을 거두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당시 그의 나이 17세였다. 역대 아시안투어 최연소 우승 2위의 기록이었다.
이후로도 아시안투어에서 활동을 이어가던 김주형은 행선지를 고국으로 돌렸다.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며 안정적인 활동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김주형은 KPGA 투어 첫 대회에서 준우승을 했고 그 다음 주 열린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18세 21일로 KPGA 투어 프로 신분 최연소 우승, KPGA 입회 이후 최단 기간 우승 기록을 세웠다.
시즌 내내 투어 일정을 소화한 2년 차에는 정상급 활약을 보였다. 14개 대회에 참가했고, 소액의 상금도 받지 못한 대회는 단 2개 대회였다. 9개 대회에서 톱10에 들었으며 우승 1회 준우승 3회를 기록했다. 연말 시상식에서 투어 대상, 상금왕을 휩쓸었다. 10대 선수가 이 같은 타이틀을 차지한 것은 투어 역대 최초의 일이었다.
2021시즌, 국내 무대를 평정하고 본격적으로 미국에 진출한 김주형은 데뷔 시즌에 우승을 일궈냈다(이전까지 KPGA 투어 일정을 병행하며 초청 선수로 PGA 투어 대회 참가). 국내에선 동그란 얼굴에 '곰돌이'로 불리던 별명도 달라졌다. 미국 현지에서는 그를 '버디 트레인'이라고 부른다. 기차가 주인공인 어린이용 애니메이션 '토마스와 친구들'을 좋아해 그가 스스로 자신의 영어이름을 '톰'으로 지었기 때문이다.
#첫 2000년대생 우승자 김주형의 미래
한국 골프는 역대 8명의 PGA 투어 우승자를 배출했고 김주형은 선배들과 비교해 가장 어린 나이에 우승을 차지했다. PGA 투어 사상 첫 2000년대 이후 태어난 선수의 우승이며 역사를 통틀어서도 최연소 우승 2위의 기록이다.
PGA 투어는 막판으로 돌입했다. 정규시즌을 끝내고 플레이오프 일정을 시작했다. 김주형은 정규시즌 마지막 대회에서 극적으로 우승하며 플레이오프 티켓을 손에 넣었다.
2022년이 돼서야 본격적으로 PGA 투어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그는 Q스쿨 등을 통과하지 않았기에 초청 선수로 뛰었다. 일정 이상 성적을 내며 내년 투어 참가권을 따냈다. 그럼에도 플레이오프 출전은 언감생심이었지만 마지막 기회에서 우승을 하며 PGA 투어 회원 자격과 플레이오프 진출을 결정지었다.
플레이오프 일정은 향후 3주간 이어진다. 1차 대회 격인 페덱스 챔피언십에서는 125명, 2차 대회 BMW 챔피언십에는 70명, 3차 대회인 투어 챔피언십에는 30명으로 점차 문이 좁아진다. 30명만 경쟁하는 투어 챔피언십까지 진출한다면 다음 시즌 열리는 메이저 대회에 전부 참가할 수 있는 권한을 얻는다. '최연소 우승자' 김주형이 30명 이내에 든다면 세계 최고들이 모인 PGA 투어에서도 정상급 선수로 인정받는 것이다.
플레이오프에서 활약한다면 김주형의 신인왕 수상 가능성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PGA 투어 신인왕은 포인트를 매기는 LPGA와 달리 선수들의 투표로 결정된다.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는 점에서 김주형은 '임팩트'를 남겼다. 하지만 여전히 페덱스 랭킹 등에서 앞서는 경쟁자들이 존재한다. 확실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선 플레이오프에서 성적이 필수다.
최근 골프계 가장 뜨거운 화두는 새롭게 창설된 리그인 리브(LIV) 골프 인비테이셔널이다. 하지만 리브에 김주형이 등장하는 일은 당분간 없을 것으로 보인다. 김주형은 최근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나는 어릴 때부터 PGA 투어에 뛰는 것이 꿈이었다. 가능한 오래 뛰고 싶다"며 "리브 골프에는 관심 없다"고 밝혔다. 어린 선수인 만큼 상금에 대한 과도한 욕심도 부리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이번 시즌 김주형의 PGA 투어 활동 중 전체 상금은 252만 9338달러(약 33억 원)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