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시절 학폭 혐의로 법정행…김유성 드래프트·안우진 국대 선발 여부에도 시선 쏠려
학폭은 야구뿐 아니라 스포츠의 거의 전 종목에 만연한 문제다. 너무 많은 선수가 어릴 때부터 맞거나 때려가며 운동을 했다. "기강을 잡는다"는 명목 아래 폭력은 감정 분출의 도구로 쓰였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선수 인터뷰 때 "어린 시절엔 맞는 게 너무 싫어서 운동을 그만두려다 결국 운동이 좋아서 다시 돌아왔다"는 고백이 줄을 잇곤 했다.
프로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2000년대 후반 다혈질로 소문난 고참 선수가 1군에 올라오면 같은 팀 후배들은 팀 훈련이 끝나도 라커룸에 들어가지 않았다. "눈에 띄면 무슨 트집이 잡힐지 모른다"는 이유에서다. 스타플레이어 출신인 한 야구인은 2군 감독 시절 종종 선수 따귀를 때리거나 땡볕 아래 땅에 머리를 박게 하는 단체기합을 줬다. 모두 학창시절 '운동부 문화'에서 시작된 뿌리 깊은 폭력의 잔재다.
과거엔 학폭 피해를 당해도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었다. 지금은 그나마 피해자가 피해를 호소할 온라인 공간이라도 생겼다. 가끔은 '무고'로 악용되기도 하지만 일단 학폭 사실이 확인된 가해자에게 더는 선처하지 않는다. 스카우트들도 선수의 인성을 성적 못지 않게 중요한 요소로 고려하고 있다. 프로야구는 학폭의 그림자를 지우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영하와 김대현, 결국 법정으로
특히 지난해는 학폭 문제로 체육계 전체가 시끄러웠다. 배구계의 특급 스타였던 이재영과 이다영 자매가 학창 시절 동료 선수를 괴롭힌 사실이 알려지면서 파장이 커졌다. 남자부에서도 송명근, 심경섭 등이 학폭 가해자로 지목됐다. 또 이상열 전 KB손해보험 감독은 2009년 국가대표팀에서 박철우를 구타했던 사건을 언급하다가 결국 피해자의 분노를 자극하는 실수를 했다. 결국 여론의 거센 질타 끝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영하와 김대현의 학폭 논란도 이때 처음 불거졌다. 두 투수는 선린인터넷고 동기다. 학창 시절 원투펀치로 활약한 뒤 2016년 1차 지명으로 각각 두산과 LG에 입단했다. 프로 입단 뒤에도 금세 유명해졌다. 이영하는 2019년 17승을 거두면서 차세대 오른손 에이스로 기대를 모았다. 김대현 역시 LG에서 선발과 불펜으로 꾸준히 기회를 얻으면서 1군 주축 투수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지난해 2월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이영하와 김대현에게 학창 시절 일방적으로 괴롭힘을 당했다'는 글이 올라오면서 이들을 향한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선린인터넷고 야구부 후배 A 씨는 이후 방송사 시사 고발 프로그램을 통해 "이들에게 학교 폭력에 시달렸고, 그 후유증으로 인해 학교와 야구부 훈련에 나가지 못한 적도 많았다"고 주장했다.
이영하와 김대현 모두 이 사실을 강하게 부인했다. 이영하는 당시 에이전트를 통해 "단체 집합으로 야구부 기강을 잡으려고 한 적은 있다. 이 부분은 사과한다"면서도 "특정인에게 가혹행위를 한 적은 없었다"고 했다. 김대현도 변호사를 통해 "A 씨의 주장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두산과 LG 구단은 A 씨와 선린인터넷고 야구부 관계자를 여러 차례에 만나 진상을 파악하려고 했지만, 양측의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렸다. 두 구단은 결국 판단을 유보했고, 그렇게 둘의 학폭 논란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A 씨는 최근 이영하와 김대현을 스포츠윤리센터에 신고해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천명했다. 스포츠윤리센터가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면서 둘의 학폭 문제는 다시 한 번 수면 위로 올라왔다. 결국 둘은 검찰 송치 후 불구속 기소됐다. 이영하는 서울서부지방법원, 군 복무 중인 김대현은 군사법원에서 각각 재판을 받는다.
두산은 기소 사실을 파악한 뒤 이영하를 8월 21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했다. 이영하는 현재 퓨처스리그 경기에도 나서지 않고,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사무총장 출신인 김선웅 변호사를 법률대리인으로 선임해 재판을 준비하고 있다. 구단도 변호사에게 이번 사건을 일임했다. 김 변호사는 "이번 일은 고교 재학 중에 벌어진 일이고 공소 시효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이영하 선수는 경찰 조사만 받았는데, 검찰이 피해자 조사만 하고 기소했다. 공소 시효 때문에 기소 절차가 빨리 진행된 거 같다"며 "재판에서 기소된 내용에 대해 충분히 소명하려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영하는 재판이 끝날 때까지 마운드에 설 수 없어 사실상 올 시즌을 조기 마감했다. 야구계는 "1심에서 어떤 판결이 나든, 항소가 이어지면 법적으로 긴 다툼이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1차지명 취소됐던 김유성의 운명은
고려대 투수 김유성(20)은 2020년 고교야구 최고 투수 중 한 명이었다. 김해고 에이스로 활약하면서 모교의 창단 첫 전국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시속 140km이 괴롭혀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입혔다"고 주장하는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바로 그 후배 학생의 어머니였다. 폭로글에는 "NC 구단에 끊임없이 이 사실을 어필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주장도 담겨 있었다.
김유성도 폭력 사실에 대해서는 인정했다. 그는 "중학교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올라가던 2017년, 여수로 전지훈련을 떠났다. 엘리베이터를 탑승하는 과정에서 후배와 마찰이 있었고, 후배의 가슴 부분을 한 차례 주먹으로 때렸다"고 떠올렸다. NC는 자체 조사 결과, 김유성이 내동중 시절 학교폭력위원회로부터 출석정지 5일 조치를 받았고, 이듬해 창원지방법원에서 화해권고 결정이 내려진 사실을 확인했다. 당시 화해가 성사되지 않아 김유성은 20시간의 심리치료 수강, 40시간의 사회봉사 명령을 받았다.
일단 NC 구단은 "징계를 모두 소화했고, 선수가 충분히 반성하고 있다"며 김유성을 감쌌다. 그러나 피해자 어머니가 재차 김유성과 그의 부모, NC 구단의 대처를 비난하자 여론은 NC를 등졌다. 결국 NC는 지명 사흘 만에 김유성의 지명 철회를 발표했고,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도 김유성에게 1년 출장정지 징계를 내렸다. NC가 지명을 포기한 뒤 김유성은 자동으로 신인 2차드래프트 대상자가 됐지만, 10라운드 지명이 모두 끝날 때까지 이름이 불리지 않았다.
한 구단 관계자는 "학교폭력은 사회적으로 가장 큰 지탄을 받고 있는 문제 중 하나다. 지명에 부담이 따르는 게 당연하다"며 "김유성 외에 상위 라운드 지명이 확실시됐던 다른 선수 2명도 끝까지 이름이 불리지 않더라. 둘 다 학교폭력 전력이 확인된 선수라 행여나 같은 문제가 생길까봐 모든 구단이 외면한 것 같다"고 귀띔했다.
KBO는 이후 리그 규약에 '신인선수는 신인 드래프트 참가 신청서(소속학교 재학 중 받았던 징계, 부상 이력 기입) 제출시 학교폭력 관련 서약서와 생활기록부 등 KBO가 요구하는 자료를 함께 제출하여야 한다'고 명시했다. 또 '허위로 작성하여 제출한 신인선수에게는 선수계약 여부에 따라 지명 무효와 또는 참가활동 정지, 실격처분 등의 제재를 가할 수 있다'며 '지명 또는 계약이 무효화될 경우 구단은 다음 연도 신인 드래프트에서 동일 라운드 종료 후 추가 보상 지명을 실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른바 '김유성법'으로 불리는 조항이다.
김유성은 이후 고려대로 진학했다. 협회 징계로 대학 진학 후 1년 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하다가 올해 대학리그에서 공을 던지기 시작했다. 1년간 어깨를 쓰지 않고 충분히 휴식한 덕인지 "기량이 더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구속은 시속 155km까지 나왔고, 슬라이더를 비롯한 변화구의 완성도도 높아졌다는 후문이다.
심지어 KBO가 올해 신인 지명부터 '얼리 드래프트'를 도입하는 호재도 겹쳤다. 프로에 가지 않고 대학에 진학한 선수가 4년을 다 채우지 않아도 2학년부터 신인드래프트에 참가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김유성도 참가 신청서를 내 다시 한번 프로의 문을 두드리기로 했다.
2년 전보다 더 강해진 김유성을 놓고 복수의 구단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미 같은 문제로 세 차례 징계를 받은 만큼 이제는 지명해도 된다"는 입장과 "그래도 학폭 전력이 있는 선수에게 너무 일찍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9월 15일 열리는 신인드래프트 결과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야구 관계자들은 "이변이 없는 한 1라운드 안, 늦어도 2라운드에서는 지명될 가능성이 크다"고 점치고 있다. 한 구단 관계자는 "프로에 오면 선발, 마무리 모두 가능한 선수다. 1라운드 지명은 부담이 되더라도, 2라운드까지 넘어온다면 못 잡을 이유가 없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다만 이영하와 김대현의 검찰 기소로 학폭에 대한 비판 여론이 다시 고개를 든 게 변수다. 당사자인 김유성은 "어떤 결과든 겸허히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는 "드래프트 지명 순번은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프로에서 기회를 받는다면 정말 달라진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며 "모범적인 선수가 될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안우진, WBC 국가대표는 가능할까
키움 히어로즈 안우진(23)의 국가대표 발탁 여부도 거듭 도마 위에 올랐다. 안우진은 2018년 1차 지명을 받고 넥센(현 키움)에 입단하기 전부터 학폭 논란에 휩싸였던 선수다. 휘문고 3학년 시절 후배들을 집단 구타하는 데 가담한 사실이 알려져 비난의 화살을 한몸에 받았다. KBO는 "아마추어 시절 벌어진 일이라 규약상 처벌할 근거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넥센 구단은 당시 여론에 밀려 50경기 출장 정지라는 자체 징계를 내리기도 했다.
이보다 더 큰 처벌은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로부터 받은 '3년 국가대표 자격정지' 징계다. 3년 자격정지는 사실상 '영구 자격정지'와 다르지 않다. 대한체육회 규정상 3년 이상의 자격정지 징계를 받은 선수는 영원히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 안우진도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 대한체육회가 선수를 파견하는 주요 국제대회에서 태극마크를 달 수 없게 된 것이다. 리그 정상급 선수들은 대부분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통해 병역 대체복무 혜택을 받았다. 현재 KBO리그 최고 투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안우진에게는 유·무형적 손해가 상당한 징계다.
다만 내년 3월 열리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은 다르다. WBC는 메이저리그(MLB) 사무국이 주관하는 대회라 대한체육회 규정과 관계 없이 선수를 뽑을 수 있다. 안우진이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을 수 있는 유일한 무대인 셈이다.
안우진은 입단 후 매년 부상으로 고전했지만, 올해는 풀타임 선발 투수로 나서면서 리그 에이스급 활약을 하고 있다. 최고 시속 159km를 찍는 광속구의 위력이 무시무시하고, 슬라이더 구속은 시속 130km부터 시속 140km 후반까지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다승, 평균자책점 등 여러 투수 지표에서 상위권에 올라 있고, 2012년 류현진(토론토 블루제이스·당시 한화 이글스) 이후 10년 만에 국내 투수 200탈삼진 돌파도 앞두고 있다. 국가대표 감독이라면 당연히 1순위로 뽑고 싶은 투수다.
특히 이번 대회에선 미국과 일본이 일찌감치 우승을 목표로 선언하고 최고의 선수들을 끌어 모으는 분위기다. 상대적으로 약한 KBO리그 투수진을 고려하면 안우진은 대표팀 전력에 없어서는 안 될 카드다. 향후 MLB 진출을 노리고 있는 안우진 역시 "WBC에서 MLB 최고의 선수들을 상대하는 건 정말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며 태극마크를 향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KBO 기술위원회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국가대표 에이스급 투수를 안 뽑자니 선수단 전력이 약해지고, 눈 딱 감고 뽑자니 거센 비난 여론과 마주할 수 있어서다. 기술위원회는 일단 오는 11월까지 50인 관심 명단을 추려 WBC 조직위원회에 통보해야 한다. 이후 내년 1월까지 35인 예비명단, 2월 중순까지 28인 최종명단을 각각 제출해야 한다. 안우진의 '국가대표 자격'을 둘러싼 찬반 양론도 그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