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최초 일본시리즈 MVP 차지…연봉 5억 엔 포기하고 메이저리그 진출까지
은퇴 투어는 아무나 경험할 수 있는 이벤트가 아니다. 프로야구 10개 팀 선수들과 팬들이 인정하는 최고의 선수한테 주는 영광스런 타이틀이다. 소속팀 롯데는 물론 9개 구단들이 돌아가며 롯데와 마지막 홈 경기 때 이대호를 위한 은퇴 선물을 준비하면서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
2001년 롯데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한 이대호는 지난해까지 KBO리그 통산 1892경기에서 타율 0.307 351홈런 2020안타 1324타점을 기록했다. 은퇴를 눈앞에 둔 올 시즌 활약은 더욱 눈에 띈다. 9월 5일 현재 타율 0.329(3위), 149안타(4위), 18홈런(8위) OPS 0.869(7위) 등 전성기 못지않은 성적을 올리는 바람에 오히려 팬들이 은퇴를 만류할 정도다.
이대호가 대단한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가 ‘조선의 4번 타자’에 안주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2012년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해 오릭스 버펄로스(2012~2013년), 소프트뱅크 호크스(2014~2015년)에서 활약했고, 2015년에는 한국 선수 최초로 일본시리즈 최우수선수(MVP)에 올랐다.
MVP인 이대호가 소프트뱅크에 남는 건 당연한 수순으로 여겼지만 이대호는 안정된 길을 외면하고 메이저리그 도전에 나선다. 당시 소프트뱅크는 이대호에게 연봉 5억 엔(약 52억 원)을 제시했지만 그걸 포기하고 메이저리그 시애틀 매리너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은 것이다. 1년 400만 달러였고, 옵션이 포함된 금액이었다.
이대호가 메이저리그의 문을 두드린 건 최고의 무대에서 뛰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시애틀 매리너와 스플릿 계약(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지만 메이저리그에 승격할 경우 더 높은 연봉을 받는 조건)을 받아들였다.
이후 이대호는 시애틀 매리너스 스프링캠프 초청 선수 신분으로 25인 개막 로스터 진입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언어도, 환경도 낯선 곳에서 34세 베테랑 선수는 수비 훈련 중 몸을 날려 공을 잡고 발이 빠르지 않아도 타격 후 전력을 다해 1루로 뛰는 모습을 보였다.
이대호는 당시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주전 선수로 활약 중인 추신수와 오랜만에 해후했다. 부산 수영초등학교에서 같이 야구하며 동고동락했던 두 친구는 긴 세월을 돌고 돌아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지에서 깜짝 만남을 가진 것이다. 이대호는 당시 이 장면을 이렇게 회상했다.
“사실 신수한테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신수가 어린 나이에 미국 가서 고생했을 때 더 챙기고 연락도 했어야 했는데 그걸 못해 미안한 마음이 컸다. 여기 와 보니 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인정받고 있는 모습이 정말 멋지더라. 좋은 친구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 더할 나위 없이 든든했다.”
흥미로운 건 스프링캠프에서 맹활약으로 바늘구멍에 비유되는 25인 로스터에 합류한 이대호가 2016시즌 메이저리그 개막전에서 추신수와 만났다는 사실이다. 시애틀 매리너스가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원정 개막전을 치렀는데 이때 수영초등학교 출신의 두 친구가 개막전 행사를 앞두고 따로 만나 인사를 나눈 것이다.
그리고 2022시즌 그들은 메이저리그가 아닌 KBO리그에서 SSG 랜더스와 롯데 자이언츠 선수로 또 다른 인연을 이어가는 중이다. 최근에 추신수는 SSG 랜더스필드에서 은퇴 투어를 한 이대호에게 커피 차를 선물하고 같이 기념 사진을 찍으며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마흔 살 친구들의 우정이 스토리로 남아 진한 감동을 선사했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