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만에 두 번째 세계대회 우승컵…“4강서 1인자 최정 꺾은 후 자신감”
지난 9월 28일 서울과 중국 푸저우에서 온라인으로 열린 제5회 오청원배 세계여자바둑대회 결승3번기 제2국에서 오유진 9단이 중국 왕천싱 5단(31)에게 154수 만에 백 불계승을 거두고 종합전적 2-0으로 승리했다. 오유진은 앞서 27일 열린 결승1국에서도 125수 만에 흑 불계승을 거뒀다.
4강에서 전기 우승자 최정 9단을 물리치고 결승에 오른 오유진은 2016년 7회 궁륭산병성배 우승 이후 6년 만에 두 번째 세계대회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가히 ‘여자바둑 전성기’라 할 수 있는 요즘이다. 10대 신예들이 샘솟듯 나오고 기존 강자들은 자리를 내주지 않기 필사적이다. 오늘의 강자가 내일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고, 고작 1년 전 전적으로는 우위를 장담할 수 없는 게 최근 여자바둑의 흐름이다.
그런 가운데 최정에 가려 ‘만년 2인자’로 불렸던 오유진이 오청원배에서 힘을 냈다. 오청원배 전 슬럼프에 빠져 있던 오유진은 8월 국내 여자랭킹에서 3위로 밀려나더니 9월에는 4위까지 떨어졌다. 반전은 오청원배 4강부터였다. 역대전적 7승 30패로 압도적으로 밀렸던 최정 9단에게 6시간의 혈투 끝에 불계승을 거두고 결승에 올랐다.
“6년 만에 세계대회에서 우승해 너무 기쁘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걱정했는데 왕천싱 5단과의 결승전은 내용적으로도 괜찮았던 것 같고, 결승1국에서 이겨 2국에서 더 자신감 있게 둘 수 있었다”는 오유진을 만나봤다.
―우승을 예감했나.
“아니다. 오청원배 직전 컨디션이 좋지 않았는데 대회 일정이 갑자기 당겨져 당황했다. 원래는 12월 2일부터였는데 10월 중순으로 한 차례 당겨졌다가 다시 9월 27일로 또 당겨졌다. 왕천싱 5단의 출산 예정일이 11월이어서 어쩔 수 없다고 들었지만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일정이 당겨져 나뿐 아니라 최정, 김채영 선수도 좀 당황한 것으로 안다.”
―대회 직전 연패 모드여서 우승을 예상한 사람이 많지 않았다.
“지지옥션배에서도 지고 중요한 시합에서 김은지 3단에게 거푸 패하면서 좋지 않았다. 거기에 준결승 상대는 최정 9단이고…. 그런데 직전 열린 여자바둑리그 포스트시즌 대국들이 도움이 됐다. 팀은 비록 아쉽게 패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전승을 거둬 심적 안정감을 찾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 특히 포스트시즌에서 장고대국에 세 번 출전한 것이 감각을 찾는데 좋은 영향을 줬다.”
―속기보다 장고 대국이 편한가.
“아마 대부분의 기사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중요한 대국일수록 시간이 많은 게 편하다. 또 내 스타일 상 장고 대국이 맞는 것도 같다.”
―준결승 전 최정 9단과의 상대전적이 7승 30패로 매우 좋지 않았다. 부담스럽지 않았는가.
“최근 많이 따라붙긴 했지만 언제 만나도 부담스런 상대인 것은 틀림없다. 그렇지만 이번 대결은 초반부터 의도한 대로 잘 풀렸고, 최정 9단도 부담이 됐는지 초반부터 도발하기보다는 참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마 시간이 많아 긴 바둑으로 이끌어 후반에 승부를 내려고 했던 것 같다. 최정 9단에게 승리하면서 결승전을 앞두고 자신감을 얻었다.”
―전투나 몸싸움에서 약점을 보인다는 지적이 있다.
“많이 알려진 얘기다(웃음). 그런데 내가 싸움을 피하는 것만은 아니다. 충분히 싸울 수 있는 바둑은 주저 없이 전투를 한다. 하지만 긴 바둑이 편하니까 뒤에서 승부를 보는 쪽으로 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사활 공부나 인터넷 대국을 통해 기풍(棋風)을 바꿔볼까도 생각 중이다.”
―바둑은 어떻게 시작했는가.
“일곱 살 때 아빠의 권유로 언니하고 같이 배웠는데 언니는 중간에 그만두고 혼자 배우게 됐다. 제법 소질이 있었는지 바둑도장에 보내볼 것을 권유받아 열 살 때 허장회 사범님 바둑도장으로 옮겼다. 입단 1년 전엔 충암도장에서 공부했다.”
―평소 하루 일과가 궁금하다.
“대국이 없어도 일주일에 세 번 정도 한국기원에 나온다. 월, 화는 국가대표 자체 리그전이 있고 금요일엔 8명으로 구성된 여자국가대표 리그에 참가한다. 집에 있어도 바둑에 할애하는 시간이 많다. AI를 이용한 연구를 하루 평균 2시간 정도 한다. 복기도 하고 궁금한 것도 진행시켜 본다. 그 밖에 사활공부도 꾸준히 하고 인터넷 대국도 자주 하려고 하는 편이다.”
―선배들보다 쫓아오는 후배가 많은 위치가 됐다. 부담스럽지 않은가.
“처음엔 부담스러웠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신예라도 다들 실력이 강하기 때문에 져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마음도 편하다.”
―세계대회에선 중국 기사들을 많이 상대해야 한다. 중국 여자기사들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솔직히 중국보다 한국 쪽에 까다로운 기사들이 더 많다.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한국이 앞선다고 본다. 중국 기사 중에는 위즈잉, 저우홍위가 에이스로 보이고 우이밍, 리샤오시, 탕자원 등의 신예들이 센 것 같다.”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어릴 때는 세계대회 우승이 목표였는데 지금은 그냥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목표를 세운다고 목표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충실히 하루를 보내다보면 이번처럼 좋은 일이 따라오는 것 같다.”
한 바둑 전문가는 “현재 여자바둑 세계 최고의 권위는 오청원배가 갖고 있는데 최정, 김채영, 오유진만이 타이틀 맛을 봤다. 그런데 그 셋이 얼마 전 끝난 IBK기업은행 마스터스에서는 모두 1~2회전에서 탈락했다. 현재 여자바둑의 판도를 짐작할 수 있는 결과다. 향후 여자바둑계는 춘추전국시대에 돌입할 공산이 크고 팬들의 시선을 더욱 사로잡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