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도입하는 샐러리캡 대비 포석…“대체 불가 선발자원” 평가
롯데는 10월 26일 ‘안경 에이스’ 박세웅과 5년 총액 90억 원(연봉 70억 옵션 20억)에 다년 계약을 발표했다. 삼성이 2022시즌을 마치고 FA로 나오는 구자욱을 미리 묶어둔 것처럼 롯데 또한 미래의 FA 시장에 대비해 선점을 해둔 셈이었다. 이로써 롯데는 1년 후면 FA 자격을 취득하게 되는 박세웅을 미리 붙잡는 데 성공하면서 마운드 안정화를 구축했다. 롯데가 비FA 다년 계약을 맺은 건 박세웅이 처음이다. 롯데 구단 관계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박세웅 다년 계약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살펴본다.
박세웅은 롯데 입단 후 8시즌 동안 통산 53승 70패 평균자책점 4.77을 기록했다. 성적만 놓고 본다면 매력적인 숫자들이 아니다. 그러나 KBO리그에 우완 정통파 선발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박세웅의 가치는 매우 높은 편이다. 특히 올시즌 박세웅은 10승 11패 평균자책점 3.89를 기록하면서 2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기록했고(2018, 2019년 수술과 재활로 4승 기록) 최근 3시즌 84경기 467과 3분의 2이닝을 소화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이 기간 박세웅보다 더 많은 이닝을 던진 국내 투수가 없다. 1년만 더 뛰면 FA 자격을 얻는 박세웅을 놓치고 싶지 않은 롯데 입장에선 서둘러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롯데 구단 관계자는 박세웅과의 다년 계약을 진행한 배경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올 시즌 초·중반부터 박세웅의 다년 계약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그러나 시즌 중에 선수와 계약 문제를 이야기한다는 게 쉽지 않다. 한 경기 잘 던지면 돈을 더 많이 받아야하느니, 한 경기 못 던지면 어떻게 계약을 하려고 하느냐는 등 말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최대한 부담 주지 않고 구단이 다년 계약에 관심이 있다는 의사 표시만 했다. 박세웅의 경우 군대 문제도 걸려 있는 터라 선수도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선수 측과 계속 교감을 나누다 시즌 종료 후 빠르게 움직였고, 논의가 잘 돼 공식 발표로까지 이어졌다.”
롯데 구단은 박세웅에게 5년 90억 원을 제안한 가장 큰 이유로 박세웅 만한 선발 투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당분간 FA 시장에 나올 만한 선발 투수가 없다. 만약 대체 가능 자원이 있다면 그 정도의 금액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롯데가 지금까지 선수들과 계약하는 흐름을 보면 대체 자원 유무가 중요했다. 박세웅은 대체 불가의 선발 자원이고, 행여 중간에 군 입대를 한다고 해도 3년 후 KBO는 샐러리캡 제도에 큰 변화를 맞이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즉 3년 후 샐러리캡 제도가 사라지거나 구단 총액을 늘린다면 박세웅이 FA로 풀릴 경우 서로 영입하러 달려들 것이다. 우린 그런 부분까지 고려해서 박세웅과 다년 계약을 진행한 것이다.”
만 27세인 박세웅의 5년 최대 90억 원은 투수 계약을 기준으로 김광현(SSG) 최대 151억 원, 양현종(KIA) 최대 103억 원, 차우찬(LG) 95억 원에 이은 네 번째 큰 규모이고, 2015년 미국에서 돌아온 윤석민의 90억 원 계약과 타이를 이룬다.
박세웅의 병역 의무 관련해서도 롯데 구단 측에선 명확한 입장을 전했다. 박세웅은 2020 도쿄올림픽 대표팀에 승선했지만 대표님이 4위에 그쳤다. 지난해엔 항저우 아시안게임 예비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가 대회가 1년 연기되고 말았다. 그래서 상무에 지원했고, 서류 전형에 합격했다. 나이를 감안하면 상무에 입대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고, 이번 기회를 놓치면 자칫 현역 입대의 부담을 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롯데와 박세웅은 의견 일치를 봤다. 5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롯데는 내년 시즌 반등을 위해 박세웅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이런 구단 입장을 잘 알고 있는 박세웅은 상무 입대 대신 내년에도 롯데 마운드에 오르기로 결정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열려 대표팀에 발탁된다면 그 또한 좋은 기회일 수 있지만 현역으로 입대한다고 해도 부담스럽지 않다는 입장이다.
롯데 구단 관계자는 박세웅의 계약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설명했다.
“박세웅과의 계약에 옵션(20억 원)으로 안전장치를 해 놨다. 군 입대를 할 경우 계약 기간이 2년 더 유예되고, 만약 부상 등으로 박세웅이 수술을 하거나 부상자명단에 오를 경우 옵션이 발휘된다. 부상 없이 20억 원의 옵션을 다 챙겨갈 수 있다면 선수는 물론 구단한테도 좋은 일 아니겠나. 그만큼 성적이 뒷받침될 테니까 말이다. 이번 계약은 구단, 선수 모두 만족한 좋은 계약이었다.”
롯데 측에서도 박세웅의 다년 계약 발표 후 일부 팬들 사이에서 부정적인 여론이 존재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구단은 오히려 박세웅이 너무 저평가됐다며 아쉬워한다.
“구단은 박세웅 선수한테 90억 원을 주는 게 아깝지 않다. 평소 성실하고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준 선수라 선수단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믿는다. 박세웅이 롯데 에이스로 더 좋은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