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감원장 “감독 권한 타이트하게 행사” 경고…손 회장 연임 여부 따라 ‘정부 인사개입 의도’ 가늠
최근 이복현 금감원장은 금융지주 이사회 의장들과 만나 “금융당국은 통제의 기준을 잘 마련하고 이를 잘 이행했다고 판단할 수 있는 분이 지휘봉을 잡고 해당 기관을 운용하는 것이 좋다”면서 “그에 미치지 못하는 분이 운용한다고 판단되면 감독권한을 타이트하게 행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운영이나 통제의 관점에서 적정한지 아닌지에 대해서 (금감원이) 의견을 낼 수 있다”고도 했다.
금융권에서는 이복현 원장의 발언을 당국에서 중징계를 받은 이들은 CEO 자격이 없다는 입장표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현재 금융회사 CEO 가운데 당국의 징계를 받은 이는 한둘이 아니다. 금감원은 실제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겨냥하고 있다. 최근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2019년 벌어진 라임펀드 불완전판매에 대한 책임을 물어 손태승 회장에 문책경고를 결정했다. 문책경고 이상의 중징계를 받으면 금융회사 임원에 취임할 수 없다. 손 회장의 임기는 내년 3월까지다.
손태승 회장이 연임에 도전하려면 증선위 결정에 불복해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을 내고, 행정소송으로 가야 한다. 손 회장은 앞서 파생결합펀드(DLF) 불완전판매 책임으로 금감원장으로부터 문책경고를 받았지만 소송을 진행하며 연임에 성공할 수 있었다. 1심과 2심에서 승소하기도 했다. 일단 소송으로 가면 대법원 판결까지 시간을 벌 수 있어 임기를 마칠 수도 있다.
열쇠는 이사회가 쥐고 있다. 우리금융 이사회는 국내·외 금융사인 과점주주가 선임한 대표자들로 구성돼 있다. 사실상 회장이 추천하는 사외이사로 구성된 일부 금융지주와는 다르다. 이사들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 회장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주주로서 금감원장이 감독권한의 ‘타이트’한 행사를 예고한 데 따른 불이익이 더 걱정일 수 있다. 금감원은 최근 라임 사태와 관련 우리은행 직원 28명에게 무더기 징계를 내렸다. 불완전판매에 대해 우리은행의 잘못을 확인한 셈이다.
우리금융 이사회가 연임을 막는다면 손 회장 입장에서 소송은 어려운 선택이다. 1, 2심에서 승소한 DLF 사태와 달리 이번 라임사태는 비교적 위법사실이 분명하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경제범죄를 주로 다뤄 온 베테랑 검사 출신이다. 애매한 법 조항을 적용해 DLF 소송에서 잇따라 패소한 지난 정부의 금감원과 다를 수 있다. 연임에 실패한다면 설령 소송에서 이겨도 의미가 없다. 소송비용도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우리금융 이사회와 손태승 회장의 선택은 금융권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금감원은 손 회장과 함께 박정림 KB증권 사장,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 나재철 금융투자협회장(전 대신증권 대표) 등도 같은 이유로 중징계가 필요하다는 안건을 증선위에 올렸다. 손 회장에 대해 금융위가 금감원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여 중징계를 내린 만큼 다른 CEO들에 대해서도 같은 판단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시장의 관측이다. 아직 이들 CEO의 금융위 제재결정 일정은 나오지 않았다. 이와 관련, 금융권 한 관계자는 “제재 불복 소송으로 임기를 이어가는 현상이 관행이 되는 것을 끊으려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풀이했다.
다른 시각도 나온다. 최근 사임한 김지완 회장이 지난 정부 대선캠프 출신이고, 손 회장도 지난 정부에서 당시 우리은행 대주주였던 예금보험공사의 지지를 통해 회장직에 올랐기 때문이다. 금융권의 다른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 때 KB금융, 우리금융, 하나금융 회장직을 모두 대통령 측근이 차지했다”면서 “당시 핵심 관계자들이 이번 정부에서도 요직에 올라있으니 비슷한 시도를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BNK금융과 우리금융의 새로운 회장 후보에 누가 오를지에 따라 이번 정부의 인사개입 의도 여부는 드러날 수 있다. 올 연말 임기가 끝나는 농협금융 회장에는 내부 출신 1호인 손명환 회장의 연임이 유력하다. 손명환 회장 이전에는 줄곧 관료 출신들이 맡아온 자리다. 수협은행도 내부 출신 김진균 행장의 후임에 강신숙 수협중앙회 부대표가 선임됐다.
올해 연말 세 번째 임기에 도전하는 조용병 신한지주 회장은 금융당국의 제재나 소송 건이 없어 무난히 자리를 지킬 것으로 예상된다. KB금융은 내년 11월 윤종규 회장의 세 번째 임기가 끝난다. 3명의 부회장과 주요계열사 대표가 차기 회장 후보로 거론된다.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임기는 2025년 3월까지다. 다만 손태승 회장과 마찬가지로 DLF 사태로 중징계를 받고 소송 중에 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