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싸고 비좁은 도심 주거 문제 해결책 제시…“다양한 사람들 한데 어울려 사는 보금자리 꿈 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심정으로”
조강태 MGRV 대표가 주거 문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대학을 졸업하던 2005년 무렵부터다. 조 대표는 “서울의 집들은 비좁거나 비싸다. 모두가 문제를 느끼지만 아무도 풀어내지 못했기 때문에 이 문제를 꼭 해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10여 년간 베인앤컴퍼니 등 글로벌 컨설팅 기업을 다니면서도 꿈을 품에 안고 살았다. 그러던 중 지인이 마찬가지로 주거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현대그룹 오너 3세인 정경선 전 HGI 대표를 소개해줬다. 만나서 대화해보니 서로 뜻이 맞았다. 바로 의기투합해 직장을 그만두고 HGI로 이직했다. 조강태 대표가 키를 잡은 MGRV가 2019년 HGI의 자회사로 출범했다.
공유주거가 주거 문제를 풀어낼 해답이라고 느끼게 된 것은 2016년이었다. 당시 조강태 대표는 런던의 한 스타트업에서 선보인 공유주거 시스템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조 대표는 “공유주거(코리빙) 시스템을 우리나라에 이식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곧바로 사업을 기획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팀원들과 함께 미국과 영국, 일본 등 세계 각국의 공유주거 공간에서 직접 생활해보면서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키는 작업을 진행했다. 문제는 규제였다. 사업 검토 과정에서 MGRV가 구상하던 공유주거 공간이 국내의 주거 형태 기준에 부합하지 않았던 것이다.
서울 종로구에 24세대의 주민이 모여 살 수 있는 코리빙 하우스를 구상했는데 인·허가 심의부터 막혔다. 인·허가 담당 부처 쪽에서는 줄곧 반려한 끝에 ‘판단 불가’ 처분을 내렸다. 사업을 아예 접어야 할 수도 있는 위기였다. 좌절하던 찰나 당시 종로구청장이 ‘건축은 사회변화를 담아야 한다’며 2018년 건축 승인 처분을 내려줬다. 지자체장의 재량 덕분에 기적적으로 맹그로브 1호점인 숭인점이 문을 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사업 확장은 쉽지 않았다. 2호점과 3호점은 관광호텔을 리모델링해서 ‘장기숙박’ 명목으로 겨우 오픈했지만 여전히 주택을 개조해 공유주거 공간으로 삼는 건 불법이었다. 조강태 대표는 “해외 각국에서 공유주거를 주거 문제를 위한 솔루션으로 삼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방법이 안 보였다. 해답을 알고 있는데 활용을 하지 못해 정말 답답했다”고 말했다.
그러던 당시 대한상공회의소를 통해 규제 샌드박스를 알게 됐다. 규제에 가로막혔던 스타트업들이 샌드박스를 통해 사업화에 성공하는 사례들을 보자 희망이 생겼다. 공유주거 이슈도 풀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조강태 대표는 “선정될 수 있겠다는 확신은 없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들이 하나같이 말도 안된다며 고개를 내저었기 때문에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실제 선정 과정은 대단히 까다로웠다. 샌드박스를 신청하고 2021년 임시허가를 받아내기까지 2년 가까이 소요됐다. 다행히 규제 샌드박스가 마중물 노릇을 했다. 임시허가를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올해 초 국토교통부에서 소형주택 관련 법령을 개정한 데다 공유주택 건축규제 완화가 국무조정실의 ‘규제 챌린지 과제’에 선정됐다. 내년에 공동기숙사 시행령 개정안이 나오게 되면 해외의 공유주거 하우스와 동일한 수준까지 사업을 운영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맹그로브 숲’을 꿈꾸다
MGRV는 ‘맹그로브 숲’을 사업의 모티브로 삼았다. 맹그로브 숲은 열대 해안선 인근에 조성된 해표림으로 수많은 종들이 외부의 천적에서 보호받으며 모여 사는 천혜의 보금자리다. 조강태 대표는 “사회초년생들이 맹그로브처럼 외부의 위협이 차단된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스스로를 알아갈 시간을 갖길 원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맹그로브는 커뮤니티 활동을 장려하고 있다. 주말마다 요가나 가드닝, 독서모임 등 다양한 커뮤니티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친해진 멤버들끼리 함께 여행을 다니는 등 친밀한 관계로 발전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다. 외국인 유학생들의 비중도 약 40%에 달해 다양한 문화 교류가 이뤄진다. 걱정했던 도난사고나 분쟁 등은 거의 없다는 것이 MGRV 측의 설명이다.
주변 원룸과 임대료 수준이 비슷한 점도 큰 장점으로 꼽힌다. 조강태 대표는 “개인 냉장고를 비롯해 가구가 다 갖춰져 있고 중개보수비나 인터넷, 피트니스 시설비용 등을 따로 낼 필요가 없는 점을 감안하면 총 생활비용은 더 저렴하다”고 말했다.
기억에 남는 피드백도 있었다. 맹그로브에 머물렀던 한 멤버가 ‘다른 공유주거 하우스는 고급화되고 비싸기 때문에 내가 특별한 사람이 아니면 그런 곳에 머물기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데 맹그로브는 평범한 사람들이 들어와서 특별한 경험을 하는 곳 같다’는 피드백을 남겨준 것. 조강태 대표는 “제가 가장 바라던 모습이었다. 주거 문제를 풀어냈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장 고민이 많을 시기에 맹그로브가 어느 정도 답을 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맹그로브 1호점뿐만 아니라 각각 400명과 300명이 거주할 수 있는 2호점과 3호점 역시 공실 대비 대기인원이 4~10배 가까이 된다. 맹그로브를 거쳐간 멤버들을 통해 입소문을 탄 덕분에 2호점의 경우 100% 임대계약이 성사되는 데 8개월이 소요됐지만 3호점은 오픈 첫날 계약이 모두 끝났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조강태 대표는 “저희는 코리빙블라인드펀드 등 부동산 펀드를 통해 대형화된 코리빙 하우스를 공급하고 있는데 맹그로브가 항상 100% 만실 상태로 운영되기 때문에 임대료 수익이 대단히 안정적이다. 채권보다 조금 더 높은 수익률로 운용 중이라 투자자들과 저희, 그리고 맹그로브 멤버들 모두의 니즈를 만족시키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조강태 대표는 “지금은 사회초년생뿐만 아니라 삶의 단계별로 각각 필요한 주거 형태를 제공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며 “택시를 부를 때, 쇼핑할 때 우리가 각각 떠올리는 브랜드가 있는 것처럼 앞으로는 내가 독립할 때, 아이 키울 때, 시니어가 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가치 있는 주거 브랜드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