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 양의지 내주고 B등급 보상받고 두산 박세혁 보내고 유망주 박준영 얻어
다른 팀 출신 FA를 데려오려면, 선수에게 주는 계약금과 연봉 외에도 보상선수 출혈을 감수해야 한다. 순식간에 주요 전력을 잃게 된 원 소속구단도 전력 누수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어서다. 20인 보호선수와 보상선수에는 군 보류선수, 당해연도 FA, 외국인선수, 당해연도 FA 보상 이적선수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래서 주전급을 한 명이라도 더 보호하려는 구단과 조금이라도 더 좋은 선수를 데려가려는 구단의 눈치싸움도 치열해진다. 이번 스토브리그도 주요 FA들의 계약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곧바로 보호선수 지정과 보상선수 지명을 둘러싼 구단들의 고민과 선택이 이어졌다.
#등급에 따라 달라진 희비
3년 전까지만 해도 FA가 팀을 옮기면 나이와 경력, 재자격 여부, 몸값 등에 관계없이 직전 시즌 연봉의 200%에 해당하는 보상금과 팀 내 20인 보호선수 외 1명의 선수 계약을 원 소속구단에 양도하는 게 원칙이었다. 그러나 2020시즌 이후 FA를 신청한 선수들부터는 신설된 'FA 등급제'에 따라 보상 기준에 차등이 생겼다. 처음 FA 자격을 얻은 선수들은 구단 내 연봉 순위와 리그 전체 연봉 순위에 따라 A~C 등급으로 분류되고, FA 자격을 다시 얻은 선수는 무조건 B등급 이하를 받게 됐다. A등급 FA의 보상선수 기준은 기존과 같지만, B등급 선수가 이적했을 때는 원 소속구단이 묶을 수 있는 보호선수 수를 25명까지 늘릴 수 있다. 또 C등급을 받은 선수는 보상선수 없이 자유롭게 이적할 수 있다.
FA 등급제는 베테랑 선수나 연봉이 낮은 선수가 보상선수 부담 때문에 이적 길이 막히거나 'FA 미아'가 되는 걸 방지하기 도입됐는데, 실제로 올해 많은 선수가 효과를 봤다. 자립형 야구기업인 키움 히어로즈는 구단 자금 사정상 외부 FA를 영입하기 어려운 팀이지만, 올해 처음으로 C등급 FA인 NC 다이노스 출신 투수 원종현과 계약했다. 또 한화 이글스는 과거 트레이드로 다른 팀에 보냈던 투수 이태양과 내야수 오선진을 다시 데려왔는데, 둘 다 C등급이라 원 소속구단 SSG 랜더스와 삼성 라이온즈에 보상 선수를 내주지 않아도 됐다. 세 선수 모두 보상선수 출혈 부담이 없는 C등급의 장점을 톡톡히 누린 셈이다.
반면 이 규정으로 올해 가장 속이 쓰렸던 구단은 NC다. 전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던 주전 포수 양의지가 친정팀 두산 베어스와 두 번째 FA 계약을 한 탓이다. 첫 번째 FA 때 4년 총액 125억 원을 받고 NC로 왔던 양의지는 두 번째 FA 자격을 행사하면서 자동으로 B등급으로 분류됐다. NC 입장에선 전력상으로는 '특A급'인 FA를 내주면서 B등급에 준하는 보상을 받게 된 셈이다.
#투수와 포수를 택한 NC
NC가 택한 양의지의 보상 선수는 두산의 젊은 오른손 투수 전창민(22)이었다. 전창민은 2019년 신인드래프트 2차 1라운드(전체 9순위) 지명을 받아 두산에 입단했고, 2020년 현역 입대해 병역 의무를 마친 유망주다. 올해 9월 1군 무대에 데뷔해 9경기를 뛰며 경험을 쌓았다. 보호선수 25인 안에는 포함되지 못했지만, NC 입장에선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평가다. NC는 "전창민은 선발과 불펜이 모두 가능한 젊은 투수다. 팀에 큰 힘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고 했다. 이로써 NC는 두산으로부터 양의지의 직전 시즌 연봉인 10억 원과 전창민을 받게 됐다.
물론 양의지의 빈자리를 메울 포수도 필요하다. NC는 이미 양의지가 떠난 뒤 두산 출신 FA 포수 박세혁을 영입해 대안을 마련했다. 이어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한 내야수 노진혁의 보상선수로 롯데 포수 안중열(27)을 지명했다. 안중열은 2014년 신인드래프트 2차 특별지명 15순위로 KT 위즈에 입단한 뒤 2015년 롯데로 트레이드됐다. 6시즌 동안 통산 323경기에 출전해 타율 0.218, 출루율 0.296, 홈런 12개, 57타점을 올렸다. 올해는 33경기에 백업 포수로 나와 타율 0.155, 출루율 0.286, 홈런 2개, 2타점을 기록한 게 전부다. 하지만 박세혁으로 급한 불을 끈 NC는 백업 포수 안중열도 팀 전력 구성에 필요한 선수라고 판단했다.
노진혁은 A등급 FA라 롯데의 보호선수 20인 밖에서 보상선수를 택할 수 있었던 점도 NC 입장에선 다행이다. NC 구단은 "안중열은 강한 어깨를 지녀 도루 저지 능력이 우수하고 정규리그에서 300경기 이상 출장한 경험을 지녔다"며 "우리 팀 포수진의 깊이와 안정감을 더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LG는 보상선수 둘 다 투수
NC 다음으로 이번 스토브리그에 출혈이 컸던 팀은 LG 트윈스다. 4번 타자 채은성과 주전 포수 유강남이 각각 한화와 롯데로 이적했다. 부랴부랴 KIA 타이거즈 출신 FA 포수 박동원을 영입해 유강남의 자리를 메웠지만, 씁쓸한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주전 외야수 채은성을 데려간 한화에 즉시 전력감 외야수가 많지 않아서 더 그렇다. 둘 다 A등급 선수라는 게 불행 중 다행이다.
LG는 결국 채은성과 유강남의 보상 선수로 모두 투수를 택했다. 올해 LG의 강점이었던 마운드를 더 공고히 다지는 모양새다. 일단 채은성의 보상 선수로는 오른손 투수 윤호솔(28)을 지명했다. 윤호솔은 천안북일고를 졸업하고 2013년 NC 우선지명 선수로 프로에 데뷔(당시 이름은 윤형배)한 특급 유망주 출신이다. 고교 때 전국구 에이스로 이름을 날렸지만, 프로에 와선 학창시절 공을 많이 던진 후유증 탓에 기량을 마음껏 펼치지 못했다. 2018년 한화로 이적한 뒤 불펜에서 쏠쏠한 활약을 했다. 1군에선 통산 118경기에 등판해 6승 6패, 15홀드, 평균자책점 5.45를 기록했다. 올 시즌엔 3승 5패 7홀드, 평균자책점 4.04의 성적을 남겼다.
LG는 "윤호솔은 힘 있고 좋은 스피드의 직구를 주 무기로 던지면서 슬라이더와 포크볼도 활용할 수 있는 투수"라며 "최근 두 시즌 동안 1군에서 풀타임으로 뛰어 즉시 전력감으로 기용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LG는 또 유강남의 보상 선수로 롯데 왼손 투수 김유영(28)을 택했다. 경남고를 졸업한 김유영은 2014년 롯데에 입단해 통산 7승 3패, 1세이브, 18홀드, 평균자책점 5.64를 올렸다. 올 시즌에는 68경기에서 6승 2패, 13홀드, 평균자책점 5.65로 데뷔 후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
LG는 김유영을 "1군 경험이 많고 구위가 좋은 즉시 전력감 투수"라고 평가하면서 "필요에 따라 선발 투수로도 활용할 수 있다. 올 시즌 잠실구장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점도 고려했다. 팀에 많은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LG 역시 마운드 출혈이 없었던 건 아니다. 포수 박동원을 LG로 보낸 KIA가 LG 왼손 불펜 투수 김대유(31)를 보상 선수로 지명했기 때문이다. LG 입장에선 왼손 투수 김대유를 KIA로 보낸 대신 또 다른 왼손 투수 김유영을 맞아들이게 된 셈이다.
김대유는 부산고를 졸업하고 2010년 넥센(현 키움)에 입단한 뒤 SK 와이번스(현 SSG)와 KT를 거쳐 2020년부터 LG에서 뛰었다. 올 시즌 LG 불펜의 주축 멤버 중 한 명으로 활약하면서 59경기에서 2승 1패 13홀드, 평균자책점 2.04를 기록했다. 통산 성적은 6승 3패, 37홀드, 평균자책점 3.44다.
KIA는 "김대유는 구위와 공 끝 움직임이 뛰어나 왼손 타자뿐만 아니라 오른손 타자를 상대로도 강한 면모를 보인 투수"라고 지명 이유를 설명했다. 또 "접전 상황에서 등판해 1이닝을 책임질 수 있는 불펜 요원으로 좋은 활약을 해줄 것"이라고 바랐다.
이외에도 삼성은 B등급 내야수 김상수를 KT로 보내면서 보상선수로 KT 외야수 김태훈(26)을 데려왔다. 왼손 타자인 김태훈은 유신고를 졸업하고 2015년 KT에 입단한 유망주다. 1군에서는 75경기에만 출전해 타율 0.203, 홈런 2개, 8타점을 기록한 게 전부다. 하지만 퓨처스(2군)리그에서는 통산 타율 0.303(1147타수 347안타), 홈런 42개, 211타점을 올리면서 가능성을 보였다. 2020시즌에는 2군 남부리그 타격왕에 오르기도 했다.
삼성은 "김태훈은 변화구 대처 능력과 콘택트 능력이 뛰어나 대타 요원으로 활용 가치가 높다. 팀의 외야 전력도 두껍게 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보상선수 덕 본 두산, 이번에도?
KBO리그 역대 최초의 FA 보상선수는 삼성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박충식과 김상엽이었다. 2000년 삼성이 해태(현 KIA) 이강철과 LG 김동수를 나란히 FA로 영입하면서 터줏대감인 박충식과 김상엽이 푸른 유니폼을 벗게 됐다. 이듬해인 2001년에는 FA 홍현우가 해태에서 LG로 이적하면서 LG 소속이던 최익성이 보상선수로 팀을 옮겼고, 2002년에는 현대 유니콘스 출신 FA 박경완이 SK와 계약하면서 SK 조규제가 현대로 갔다.
보상선수로 지명됐다는 것은 원 소속팀이 보호전력으로 묶은 20인 혹은 25인 안에 들지 못했다는 의미가 된다. 이 때문에 과거엔 보상선수들의 상실감도 컸고, 실제로 이적 후 크게 성공한 사례도 많지 않다. 1군에서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하고 은퇴한 선수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의외의 활약으로 팀을 웃게 만든 선수도 충분히 있다.
최근 수년간 유독 내부 FA 유출이 많았던 두산은 그 신화의 선두주자다. 특히 2020시즌 후 최주환(SSG)과 오재일(삼성)의 보상선수로 영입한 내야수 강승호와 박계범은 나란히 주전 자리를 꿰차면서 팀에 큰 보탬이 됐다.
강승호는 2013년 LG가 1라운드 전체 3순위로 지명했던 유망주지만, SSG에서 음주사고로 구단 자체 징계를 받고 출전 정지 징계를 소화하던 중이라 지명 당시 논란을 낳기도 했다. 하지만 2021년 최주환의 전력 공백을 잘 메우고 주전 2루수로 활약하면서 두산이 7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데 힘을 보탰다. 25세 젊은 내야수인 박계범도 유격수, 2루수, 3루수를 모두 소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삼성의 쟁쟁한 주전 내야수 틈에서 자리를 잡지 못해 국군체육부대(상무)에서 병역 의무를 마쳤는데, 보상선수로 이적 후 한 시즌 만에 주전 유격수로 자리잡아 '최고의 선택'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뿐만 아니다. 2018년 양의지의 보상 선수로 두산 유니폼을 입었던 NC 출신 오른손 투수 이형범도 이적 직후인 2019시즌 6승 3패 10홀드 19세이브, 평균자책점 2.66을 기록하는 특급 활약을 펼쳤다. NC에서 3시즌 동안 39경기에 나서 단 2승을 올렸던 이형범은 기존 불펜 투수들의 부상과 부진으로 고생하던 두산에 단비와 같은 역할을 했다. 시즌 중반 이후 마무리 투수까지 맡으면서 통합 우승에 큰 힘을 보탰다. 다만 2020년 팔꿈치 부상으로 수술대에 오른 뒤에는 좀처럼 부활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성공한 FA 보상선수 사례로 꼽히는 이원석(삼성)도 두산에서 야구 인생을 새로 썼다. 2007년까지 롯데 소속으로 뛴 이원석은 2008년 롯데와 계약한 두산 출신 FA 홍성흔의 보상선수로 두산 유니폼을 입었다. 두산은 내야 선수층이 두꺼운 팀이라 당시만 해도 이원석이 금세 자리를 잡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러나 그는 이듬해부터 공수에서 쏠쏠한 활약을 펼치며 팀의 주전으로 성장했다. 이원석은 2016시즌을 마친 뒤 FA 자격을 얻어 삼성과 4년 27억 원에 계약했다. 역대 보상선수 출신 FA 중 최고액 계약이었다. 이어 2020년 말에는 다시 삼성과 2+1년 최대 20억 원에 사인해 두 번의 FA 다년계약에 성공했다.
그런 두산은 다시 한번 '보상선수 대박' 신화를 노리고 있다. NC로 이적한 포수 박세혁의 보상선수로 NC 내야수 박준영(25)을 지명한 것이다. 오른손 타자인 박준영은 NC가 애지중지하던 최고 유망주 중 한 명이다. 투수로 2016년 NC의 1차 지명을 받았지만, 입단 후 팔꿈치 인대접합수술을 받고 군복무를 한 뒤 2020년 결국 내야수로 전향했다. 그럼에도 투수 출신다운 강한 어깨와 빠른 발, 장타력을 모두 갖춰 팀 안팎의 기대가 컸다. 한동안 '트레이드 절대 불가' 선수로 분류돼 구단의 특별 관리를 받았다.
다만 잦은 부상에 번번이 발목을 잡힌 게 문제였다. 4시즌 통산 221경기에서 타율 0.207과 홈런 12개, 53타점을 기록한 게 전부다. 올 시즌에도 크고 작은 부상 속에 75경기에서 타율 0.216, 홈런 4개, 19타점을 올리는 데 그쳤다. 지난 10월 초 도루 과정에서 왼쪽 어깨를 크게 다쳐 지금은 수술을 받고 재활 중이다. 복귀까지는 1년이 걸릴 예정이라 당장 내년 시즌에는 뛸 수 없다.
두산은 박준영의 '현재'보다 '미래'에 승부를 걸었다. "명단을 검토한 결과 박준영의 기량이 가장 뛰어나다고 판단했다"며 "박준영은 강한 어깨를 바탕으로 유격수와 3루수가 가능하고, 강한 타구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내년 3월부터 기술 훈련에 돌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