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7명 중 3명 이적…FA 등급제 탓에 ‘보상’ 전망도 어두워
NC가 올겨울 전력 유출을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다. 주전 포수 양의지를 시작으로 내야수 노진혁과 박민우, 외야수 권희동과 이명기, 투수 이재학과 원종현까지 총 7명이 자유계약선수(FA)로 풀렸다. 올해 FA 자격 행사를 신청한 선수가 21명이니, 그중 3분의 1이 NC 출신 FA인 셈이다.
구단의 자금 사정과 샐러리캡 문제를 고려하면, 어차피 모든 선수를 잔류시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도 공수에서 대체 불가한 '최대어' 양의지가 NC의 그물망을 빠져나간 건 그라운드 안팎으로 타격이 크다. 설상가상 양의지는 두 번째 FA 자격을 얻은 터라 A등급이 아닌 B등급 FA로 분류됐다. B등급 FA의 보상 기준은 직전 연도 연봉의 100%와 보호선수 25명 외의 보상선수 1명, 또는 전년도 연봉의 200%다. 손실에 걸맞은 보상을 받기도 어려운 NC는 속이 쓰리기만 하다.
#7명의 FA 중 가장 원했던 한 명
NC처럼 한꺼번에 많은 내부 FA를 내놓은 사례는 멀리서 찾을 필요 없다. 2년 전 두산 베어스가 딱 그랬다. 그해 두산 출신 투수 유희관·이용찬, 내야수 오재일·최주환·허경민·김재호, 외야수 정수빈, 7명이 한꺼번에 FA 시장에 쏟아져 나왔다. 모두 '두산 왕조'를 이끈 핵심 멤버들이었고, 특히 내야는 주전 전원이 이탈할 위기였다. 두산 입장에서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FA 등급제를 도입한 첫해라 한시적 예외 조항이 적용됐다는 거다.
첫 번째 FA 자격을 행사하는 선수는 △구단 내 연봉 3위 이내와 리그 전체 연봉 30위 이내가 A등급 △구단 내 연봉 4~10위와 전체 연봉 31~60위가 B등급 △구단 내 연봉 순위 11위 이하와 전체 연봉 순위 61위 이하가 C등급으로 분류되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첫해만큼은 전체 연봉 순위 30위 이내 선수를 모두 A등급으로 분류했다. 그 덕에 두산은 오재일, 최주환, 허경민, 정수빈, 이용찬이 B등급으로 내려갈 뻔한 위기를 모면했다.
당시 재정 상태가 썩 좋지 않았던 두산은 박정원 구단주의 뜻에 따라 내야수 허경민과 외야수 정수빈을 우선적으로 붙잡았다. 허경민이 7년(4+3년) 최대 85억 원에 사인했고, 정수빈이 6년 최대 56억 원에 잔류했다. 그러나 중심 타자로 활약했던 주전 1루수 오재일은 삼성 라이온즈로 떠났고, 장타력을 갖춘 내야수 최주환도 SSG 랜더스로 옮겼다. 신인왕 출신 투수 이용찬도 NC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두산이 올 시즌 9위까지 떨어진 원인 중 하나다.
올해 NC도 7명 중 '선택과 집중'의 대상을 찾아야 했다. 그 답은 현역 최고의 포수 양의지였다. 양의지는 2006년 두산에 입단한 뒤 공수를 겸비한 현역 최고의 포수로 성장했다. 첫 번째 FA 자격을 얻은 2018년 12월 NC와 4년 총액 125억 원에 사인해 처음으로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이후 계약기간 4년 동안 타율 0.322, 홈런 103개, 397타점을 올리며 특급 대우에 걸맞은 성적을 올렸다. 특히 2020년에는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에 오르면서 NC를 창단 첫 통합 우승으로 이끈 주역으로 활약했다.
NC는 올겨울 최우선 과제였던 양의지와 재계약을 위해 4년 전보다 더 많은 돈을 준비했다. 그러나 양의지를 간절히 원한 팀은 NC 외에도 많았다. 수도권 구단과 지방 구단을 가리지 않는 치열한 영입전이 벌어졌고, 결국 구단주가 직접 팔을 걷어붙인 두산이 최종 승자가 됐다. 양의지는 13년간 뛰었던 친정팀이 4+2년 최대 152억 원의 역대 FA 최고액(총액 기준) 계약을 제안하자 다시 잠실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2018년 12월 양의지에게 120억 원(옵션 10억 원 포함)을 제안하고도 125억 원을 안긴 NC에 밀렸던 두산은 4년 만에 그 아쉬움을 털어냈다.
양의지는 이적이 확정된 뒤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직접 쓴 편지 두 장을 올려 NC와 창원을 떠나게 된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했다. 그는 "지난 4년 동안 창원에서 정말 많은 추억을 쌓았다. NC 유니폼을 입고 타석에 들어섰을 때 보내주신 팬분들의 응원과 함성은 잊을 수가 없다"며 "반갑게 맞아주신 창원 팬들 덕분에 우리 가족 모두 행복하게 생활할 수 있었다. 그 무한한 사랑을 잊지 않겠다"고 썼다. 또 "2020년 팀을 우승으로 이끌고 집행검을 들었던 기억은 내 야구 인생에 잊을 수 없는 순간 중 하나"라며 "NC에 왔을 때 팬 여러분께 약속드렸던 우승을 이룰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고 떠올렸다.
양의지는 강인권 NC 신임 감독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두산 시절부터 당시 배터리코치였던 강 감독과 호흡을 맞추며 기량을 끌어올렸고, NC에서도 코치와 선수로 재회해 동고동락했다. 강 감독은 양의지가 고마운 스승을 꼽을 때마다 가장 먼저 언급하는 인물이다. 공교롭게도 강 감독이 정식 사령탑에 오르자마 양의지가 팀을 떠나게 됐다. 양의지는 "어릴 때부터 나를 애제자로 키워주신 강인권 감독님을 모시지 못하고 떠나게 돼 너무 마음이 아프고 슬프다"며 "항상 건강하시고, NC를 강팀으로 만들어 주시면 좋겠다"는 인사를 남겼다.
#노진혁은 롯데로 이적
NC의 수난은 계속됐다. 양의지에 이어 내야수 노진혁도 경남지역 라이벌인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했다. 계약기간 4년 총액 50억 원(계약금 22억 원, 연봉 총액 24억 원, 옵션 4억 원)의 조건이다. 롯데는 "좌타 내야수인 노진혁의 장타력을 높게 평가했다. 팀 내야에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영입 이유를 설명했다.
노진혁은 2012년 신생팀 특별지명으로 NC 유니폼을 입은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이다. 올 시즌 중반까지는 팀 주장도 맡았다. 탄탄한 수비를 자랑하고, 최근 3년 연속 0.270 이상의 타율을 올렸다. 2020시즌엔 데뷔 후 처음으로 20홈런을 터트리는 등 최근 5년간 홈런 67개를 쳐 장타력도 입증했다.
특히 올해 후반기의 활약이 눈부셨다. 전반기에는 타율 0.243, 홈런 5개, 28타점으로 성적이 썩 좋지 못했다. 고질적인 허리 부상으로 전열을 이탈하기도 했다. 그러나 올스타 브레이크 때 주장자리에서 물러난 뒤 무서운 속도로 상승세를 탔다. 특히 8월에는 월간 홈런 공동 1위(6개), 장타율 1위(0.761), 출루율 1위(0.488), 타점 2위(22개)에 오르면서 KBO가 시상하는 8월 월간 MVP를 받았다. 최하위권에 맴돌던 NC가 시즌 막바지 5위 경쟁까지 할 수 있었던 비결로 양의지, 노진혁, 박민우 등 '예비 FA' 들의 분발이 꼽혔을 정도다. 노진혁은 결국 타율 0.280, 홈런 15개, 75타점의 준수한 성적으로 올 시즌을 마감했다. 프로 통산 성적은 801경기 타율 0.266, 615안타, 71홈런, 331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761이다.
노진혁은 "좋은 계약을 제시해 준 롯데에 감사하다. 명문구단에 오게 돼 영광"이라며 "롯데 팬들이 어떤 것을 기대하시는지 잘 알고 있다. 3루는 물론이고 유격수 수비도 걱정 안 하셔도 된다"고 자신 있는 출사표를 던졌다. 또 "NC에서 실력에 비해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11년 동안 많은 응원을 해주셨는데 함께하지 못해 죄송할 따름"이라며 "나도 NC를 응원하겠다. 지금까지 아낌없이 지지해주신 NC 팬들께 다시 한번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이와 함께 NC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양의지와 박민우에 앞서 베테랑 불펜 투수 원종현도 이미 키움 히어로즈와 4년 총액 25억 원(계약금 5억 원, 연봉 5억 원)에 1호 FA 계약을 맺은 뒤였다. 2008년 창단한 키움이 사실상 처음으로 영입한 외부 FA가 바로 원종현이다. 그는 2019년과 2020년에 30세이브를 넘겼고, 2017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과 2019년 프리미어12 국가대표로도 뛴 경험이 있다. C등급 FA여서 원종현을 보낸 NC는 보상선수를 받을 수 없다.
#8년 계약으로 붙잡은 박민우
더는 두고만 볼 수 없던 NC는 간판 프랜차이즈 스타인 내야수 박민우를 빠르게 붙잡았다. 박민우 역시 다른 팀이 탐내는 선수였지만, 역대 최장기간 계약으로 목돈을 안기면서 선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계약기간이 8년((5+3년), 계약 총액이 최대 140억 원이다. 2년 전 허경민과 두산의 계약기간을 넘어서는 메이저리그급 초장기 계약이다. NC는 계약 세부 내용에 대해 "보장 금액은 5년 최대 90억 원(옵션 10억 원)이고, 이후 계약 연장 실행을 포함한 추가 옵션 금액이 50억 원"이라고 설명했다.
우투좌타 내야수인 박민우는 휘문고를 졸업하고 2012년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전체 9순위) 지명을 받은 NC 창단 멤버다. 리그 정상급의 콘택트 능력을 보유하고 있고, 빠른 발과 명민한 주루 플레이 센스를 자랑한다. NC가 1군에 처음 진입한 2013년부터 올해까지 통산 1038경기에 출전해 타율 0.320, 392타점, 706득점, 도루 217개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통산 타율은 역대 6위이자 현역 선수로는 4위에 해당할 만큼 높다. 통산 득점권 타율이 0.364라 클러치 능력도 리그 최고 수준이다. 2014년부터 9년 연속 두 자릿수 도루를 기록했다.
NC의 역사에서도 의미가 있는 선수다. 2014년 KBO리그 최우수 신인선수로 뽑혀 팀이 배출한 첫 신인왕으로 이름을 남겼다. 또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과 2019 프리미어12에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지난해 코로나19 방역수칙 위반 파문에 휩싸여 장기간 출장 정지 징계를 받고 잠시 주춤했지만, 올 시즌 복귀 후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르자 다시 자신의 가치를 충분히 보여줬다. 내야 기근에 시달리는 팀들이 국내 정상급 2루수인 박민우에게 거액을 제안하며 영입을 타진했지만, '8년' 카드를 꺼낸 NC의 절박함을 당해내지 못했다. 내부 FA '빅3' 중 2명을 잇따라 잃은 NC는 박민우를 붙잡으면서 일단 한숨을 돌렸다.
임선남 NC 단장은 "박민우와 계속 함께할 수 있게 돼 기쁘다. 선수 생활의 전성기를 함께하기로 한 만큼, NC가 더욱 강한 팀으로 올라서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해줄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했다. 박민우는 "그동안 NC에서 좋은 기억을 많이 쌓았다. NC라는 팀 안에서 응원해주시는 팬분들과 남은 야구인생을 함께하고 싶다는 열망이 컸다"며 "NC의 처음과 내 프로생활의 처음을 함께한 만큼, 좋은 성적으로 오래 뛰고 싶다"는 소감을 전했다.
#양의지와 맞바꾼 포수 박세혁
'박민우 잔류'라는 숙제를 해결했으니 그 다음은 주전 포수 자리의 공백을 메울 차례였다. NC는 박민우의 계약이 발표된 다음 날, 이번 FA 시장에 남은 마지막 포수 박세혁과 계약 소식을 전했다. 계약기간 4년, 계약 총액 46억 원(계약금 18억 원, 연봉 총 24억 원, 인센티브 4억 원)의 조건이다. 박세혁이 NC 유니폼을 입게 되면서 공교롭게도 두산과 NC가 서로 주전 포수를 맞바꾸는 모양새가 됐다.
박세혁은 2012년 두산 베어스에 입단한 뒤 11년간 정규시즌 통산 782경기에 출전하며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2018년까지는 양의지의 백업 선수로 활약했고, 양의지가 NC로 떠난 2019년부터 두산의 주전 포수를 맡아 타율 0.279, 63타점을 올렸다. 그해 두산이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차지하면서 박세혁은 '우승 포수'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이듬해 역시 타율 0.269, 51타점으로 공수에서 맹활약했다. 다만 2021년(타율 0.219, 30타점)과 2022년(타율 0.248, 41타점)에는 썩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시장에서도 포수 '빅4' 중 가장 낮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양의지를 잃은 NC 입장에선 박세혁만 한 대안이 없었다. 임선남 NC 단장은 "박세혁은 한국시리즈 우승과 국가대표를 경험한, 안정감 있는 포수다. 박세혁의 경험과 성실함, 야구에 대한 진지한 태도가 우리 팀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박세혁은 "좋은 제안을 해주신 NC 구단에 감사드린다. NC에서 새롭게 뛰는 만큼 '또 다른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내년 가을야구를 목표로 최선을 다하겠다"며 "팀 내 고참 선수답게 시즌을 잘 준비해 팀 동료들과 호흡도 잘 맞추겠다"고 다짐했다. 또 "대졸이라 다른 선수들보다 늦게 프로 생활을 시작했는데 FA 자격까지 얻은 건 두산에서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백업으로 우승한 2016년에도, 주전으로 정상에 오른 2019년에도 행복했다"며 "내년에 양의지 선배와 같은 경기에서 만날 때는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기분을 느낄 것 같다"고 했다.
NC와 박세혁이 계약하면서 올해 스토브리그를 달군 '포수 대이동' 릴레이에도 마침표가 찍혔다. 앞서 LG 트윈스 출신 포수 유강남이 4년 총액 80억 원에 롯데로 이적했고, 뒤이어 KIA 타이거즈 출신 FA 박동원이 LG와 4년 총액 65억 원에 사인해 연쇄적으로 팀을 옮겼다. 시장에 나온 포수 4명이 모두 유니폼을 갈아입은 것이다. 또 양의지가 4년 만에 다시 FA 시장에 뛰어든 덕에 포수 네 명의 몸값 총액만 343억 원(평균 85억 7500만 원)에 달하는 '폭등장'이 펼쳐졌다. NC 입장에선 돈은 아꼈지만 상처가 큰 스토브리그였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