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 방해하고 해킹하고 사재기까지…연예인 책임감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
최근 하이훙차오 공항에선 큰 소란이 벌어졌다. 한 연예인 입국 현장에 수많은 팬들이 몰려들어 공항이 극심한 혼잡을 빚었다. 이로 인해 공항을 찾은 방문객, 비행기를 타려던 탑승객들은 큰 불편을 겪었다. 일대 교통이 마비되면서 비행기를 놓치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심지어 이 연예인이 타고 왔던 비행기 안에서도 해프닝이 있었다고 한다. 이코노미석에 타고 있던 일부 팬이 연예인을 보려 일등석으로 돌진하다 승무원들이 간신히 막았다. 한 동승객은 “비행하는 동안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팬들로 인해 비행기가 활주로에 멈출 때까지 불안감을 느꼈다”고 전했다.
현장에 있었던 공항 경찰은 이 연예인에게 서둘러 공항을 빠져나가 달라고 재촉했다. 이 모습을 본 팬들은 경찰에게 거세게 항의했다. 또 SNS 등에 경찰들의 사진을 공유했다. ‘좌표’를 찍기 위해서였다. 이를 본 팬들은 경찰을 향해 욕설을 쏟아냈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인터넷과 SNS에선 뜨거운 반응이 쏟아졌다. 실시간 검색어에선 며칠간 1위에 올랐다. 비판 목소리가 높아지자 이 연예인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팬들 때문에 불편함을 끼쳐 죄송하다’는 사과문을 남겼다.
앞서 1월 13일에도 비슷한 일이 발생한 적이 있다. 한 행사장에서 보이그룹이 공연을 했는데, 수많은 팬들이 무대로 난입했다. 스태프들과 관리직원들이 이들을 막으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공연은 중간에 멈췄고, 각종 장비들은 파손됐다.
몇 년 전부터 이런 사례들은 빈번하게 언론 등에 소개됐다. 연예인들의 비행기 탑승 정보를 빼내거나 휴대전화 해킹 등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팬들 간 경쟁이 물리적 폭행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팬들 대부분이 미성년자라는 점 때문에 사태는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진다.
어긋난 ‘덕질’의 대표적 예로 거론되는 것 중 하나가 소위 ‘우유 사재기’다. 2021년 한 오디션 프로그램은 특정 우유에 찍힌 QR코드를 통한 온라인 투표로 참가자들 순위를 매겼다. 당시 한 출연자 팬들은 수억 원어치 우유를 사서 투표를 한 뒤, 이 우유를 폐기 처리해 큰 후폭풍이 일었다.
중국미디어대학 문화산업관리학원 법학부 정닝 교수는 “팬들의 비이성적인 행태는 법의 레드라인을 넘을 수 있다”면서 “공항 등 공공장소에서 공무를 방해하면 치안관리처벌법 위반이다. 불법적 경로를 통해 연예인의 스케줄, 휴대전화 번호 등을 습득할 경우 민법과 개인정보보호법을 어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관련 당국에서도 무분별한 팬들을 단속하기 위한 조치를 마련하고 있다. 공항 주무부처인 민용항공국은 2021년 공중보안 처리 지침을 발표해 연예인 팬들에 대한 단속 가이드라인을 세웠다. 일부 과도한 팬들 때문에 공항 및 항공 안전 질서가 위협받고, 승객들의 이동에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2022년 5월 국가방송총국은 ‘라디오 방송 및 인터넷 분야 관리조치’를 공개했다. 연예인 소속사가 팬들의 무분별한 덕질, 소비 등을 막도록 대책을 강구하도록 하는 게 골자였다. 경쟁 연예인들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고, 응원 모금 등을 자제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스타들의 책임감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연예인들도 사생팬으로 인한 피해자로 볼 수도 있겠지만 팬들에 대한 절대적 영향력을 감안하면 사태의 확산을 막기 위해 신속하고 근본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는 이유다.
베이징문화오락법학회 이단림 부회장은 “대부분의 팬들은 건전한 응원을 하고 있다. 소수의 팬들이 문제다. 그런데 소속사가 이들의 열광적인 행위를 이용하는 일이 많다. 소속 연예인 인지도를 높이고, 이슈를 만들기 위해서다. 소속사가 팬덤을 부추겨 많은 부작용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어지는 그의 말이다.
“연예인은 비이성적인 팬들의 언행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 팬들에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또 대부분 어린 학생들이기 때문에 올바른 방법이 무엇인지도 알려줘야 한다. 사태가 벌어진 후엔 책임을 져야 하고, 다신 재발하지 않도록 호소해야 할 것이다.”
베이징 성권법률사무소 전징샨 주임 역시 “법적인 문제로까지 넘어가기 전에 우선 연예인과 소속사가 솔선수범해서 팬들을 건전한 방식으로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닝 교수는 “연예인들은 비이성적인 팬덤을 단호히 배격해야 한다. 소속사는 팬클럽을 잘 활용해서 팬들에게 올바르고 건강한 응원 문화를 전달해야 한다”고 했다.
이단림 부회장은 “어린 팬들이 아이돌에 환호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또 맹목적이고 광적인 상황으로까지 몰입하는 것 역시 인생의 단계에서 충분히 경험할 수 있다”면서도 “어디까지나 공공의 이익과 질서가 허용하는 한에서 이뤄져야 한다. 마지노선을 넘어선 안 된다”고 설명했다.
중국=배경화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