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 후보·성과급 결정 과정 독립성 결여 평가도…KT&G “사외이사 비중 75%로 충분히 높은 수준”
지난해 10월 사모펀드 플래쉬라이트 캐피탈 파트너스(FCP)가 KT&G 이사회에 KGC인삼공사 분리상장, 전자담배 글로벌 전략 수립, 주주환원 확대, 주주 추천 사외이사 선임 등의 내용을 담은 주주서신을 보냈다. 또 차석용 전 LG생활건강 대표, 황우진 전 푸르덴셜 생명보험 대표를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했다. 안다자산운용도 한국인삼공사 리브랜딩, 사외이사 추가 증원 등을 KT&G에 요청하며, 증선위원을 역임한 회계 전문가 출신 교수와 루이비통 코리아 커뮤니케이션 담당 임원을 지낸 김도린 대표를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했다. FCP가 보유한 KT&G 지분은 1% 이상이며, 안다자산운용의 KT&G 지분은 1% 미만으로 알려졌다.
사모펀드들의 제안에 KT&G는 지난 1월 26일 열린 기업설명회에서 강경한 입장을 전했다. 방경만 KT&G 수석부사장은 “현 시점에서 KGC한국인삼공사의 분리상장 추진은 장기적인 기업가치와 주주가치 제고 관점에서 실익이 적다고 판단된다”며 “현재 KT&G 사외이사 비중은 75%로 충분히 높은 수준이며 공개된 이사회 역량 지표에서 보듯 회사 경영에 필요한 역량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KT&G가 사외이사 확충 요구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보인 것과 관련해 뒷말이 무성하다. 백복인 KT&G 사장의 연임과 연관돼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백 사장은 2015년 취임 이후 역대 최장수 CEO로 재임하고 있다. 박근혜정부에서 취임해 문재인정부와 윤석열정부까지, 3개 정부에서 계속 사장직을 이어가고 있다. KT&G 관계자에 따르면 연임횟수에 대한 규정은 따로 없다.
백 사장의 임기는 내년 3월까지로 약 1년 정도 남은 상태다. 만약 3월 열리는 주총에서 행동주의 펀드들이 제안한 후보들이 사외이사로 선임된다면 다음 연임을 확신할 수 없다. 현재 KT&G의 이사회는 사내이사 2명, 사외이사 6명으로 구성돼 있다. 사외이사 6명 중 2명이 3월 주총 이후로 임기가 만료된다. KT&G 관계자는 “사외이사 선임 관련 사안은 상법과 정관에 따라 구성되는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서 절차에 따라 진행되며, 최종적으로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의 의결사항으로 회사가 단독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KT&G의 사외이사가 경영진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FCP 관계자는 “경영진의 독단을 견제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가 사외이사 제도”라며 “성과급과 사장 후보 결정도 모두 사외이사가 주도한 일”이라고 말했다. KT&G는 3년에 한 번 장기성과급 명목으로 성과급을 지급한다. 특히 장기성과급의 비중이 가장 크다. 백복인 사장은 2021년 26억 원 (2018~2021년 초 기간의 장기성과급 포함)이라는 사상 최대 연봉을 수령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백 사장은 2021년 급여 5억 6700만 원, 상여 19억 8800만 원 등 25억 5700만 원을 받았다.
FCP 관계자는 “성과급 산정 기간이 3년에 한 번인 만큼 백복인 사장이 2021년 연임한 날부터 성과보상위원회가 성과급을 의결한 기간 동안 총 주가는 20%가량 떨어졌다”며 “특히 3년의 기간 동안 코스피는 20% 오른 것을 감안하면, 주식 시장과 KT&G 주가의 괴리감이 40%가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종합하면, 3년의 기간 동안 주식시장 성장에 비해 KT&G 주가는 하락세를 이어간 것이고, 백복인 사장은 주가 관리에 대한 책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3년에 한 번씩 주는 장기성과급을 이사회가 최고치로 산정했다”며 “FCP는 주주의 이익과 경영진의 연봉이 연결되지 않음을, 즉 주주와 경영진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고 전했다.
2021년 백복인 사장 연임 당시 이사회 내 사장후보추천위원회가 구성되고, 11영업일 만에 백복인 사장을 단독후보로 결정한 것을 지적하기도 했다. FCP 관계자는 “백복인 사장이 단독후보로 추대되기까지 전문성을 인정받은 외부 인사를 물색하고 검증할 시간이 11일 만에 가능했는지 의문을 갖고 있다”며 “성과급 결정이나 사장후보추천 등 회사 내의 중요한 의사결정과정에서 실종된 사외이사의 독립성 문제에 대해 큰 우려를 갖고 있어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사외이사를 추천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사외이사를 누가 추천했는지보다 회사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후보자인지 검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박철홍 안다자산운용 대표는 “전문가들이 좀 더 관여를 하면 회사를 더 좋은 방향으로 성장시키고, 기업가치도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기존 사외이사들이 각자 본인의 분야에서는 전문가일 수 있지만 우리 쪽에서 보기에 글로벌 마케팅이나 재무적으로 뛰어난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사외이사 후보로 제안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KT&G의 경영권을 빼앗거나 경영권에 대해 위협을 가할 생각은 전혀 없다”며 “KT&G의 주주로서 경영을 위한 지원을 하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외에도 FCP는 KT&G가 지난 1월 26일 기업설명회에서 3조 9000억 원의 대규모 투자 계획을 비롯한 중장기 사업계획을 발표하자마자 주가가 떨어진 것에 대해 이사회가 이 사업계획을 면밀히 검토하고 결의했는지 의문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기업설명회 전 종가 기준 KT&G 주가는 9만 6400원이었으며 지난 8일 기준 종가는 9만 1500원이다.
사장 후보 결정과 관련해 KT&G 관계자는 “KT&G 사장 선임은 당사 정관 등 사규에 따라 100% 사외이사로 구성된 ‘사장후보추천위원회’에서 공정하고 엄격한 자격심사를 거쳐 사장 후보자 선정 결과를 이사회에 보고하게 돼 있다”며 “이와 관련해 사장 후보자 선임과 추천에 관한 모든 권한은 사장후보추천위원회에 귀속돼 있다”고 말했다.
백복인 사장의 성과급 등에 대해 이 관계자는 “최대 연봉 26억 원은 3년의 장기 성과급(11억 4000만 원)이 일괄 반영돼 다른 연도와 금액 차이가 큰 것”이라며 “장기 성과급은 사업 포트폴리오 관리, 전략브랜드 확보, 차세대 담배 사업관리, ROE(당기순이익 대비 자기자본), TSR(총주주 수익률) 등으로 구성된 계량지표 항복을 100% 사외이사로 구성된 이사회 내 평가위원회에서 종합적으로 평가했다”고 전했다. 중장기 사업계획을 이사회에서 면밀한 검토했는지 묻는 질문에는 “회사는 지난해 상반기부터 보스턴 컨설팅 그룹과 함께 1년여간의 면밀한 검토를 통해 3조 9000억 원에 달하는 CAPEX(설비투자) 계획을 포함한 중장기 사업계획을 수립했고, 이를 충실히 보고했다”고 말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사외이사는 의사결정에 있어서 독립적이고 현실적인 의견을 줘서 객관성을 확보하도록 하는 것이 본연의 업무인데 휘둘리는 경우가 많다”며 “현실적으로 독립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기보다 이사회 정족수를 채우고, 경영진 입맛대로 구성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황 교수는 “기업 내 사외이사들이 거수기로 전락하고 큰 영향력이 없는 경우가 많아서 많은 기업들이 이 부분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내 행동주의 펀드들이 최근에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상황에서 사모펀드들이 KT&G의 사례를 갖고 홍보를 했을 경우 기업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며 “사모펀드들의 여러 제안에 대해 신중한 판단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민주 기자 lij907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