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부터 신인 작가들 작품을 검토하다 보면 빈번하게 등장하는 키워드가 눈에 띄었다. 바로 편의점 도시락이다. 지방 출신이어서 독립을 했거나, 나이가 차서 부모님 곁을 떠나 자취를 하는 젊은 친구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끼니가 편의점 도시락인 것 같다.
군대를 제대하고 사회에 나온 지 3년 차, 그러나 아직도 비정규직을 벗어나지 못한 주인공은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친구들 또는 사랑하는 사람과 저녁시간을 즐기지 못한다. 퇴근길 집 앞 편의점에서 5000원 내외 편의점 도시락을 사서 6평짜리 원룸에 책상을 겸하는 작은 접이식 밥상을 편다.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을 켜고 요즘 유행하는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혼밥’을 한다.
남은 반찬을 미니냉장고에 넣어두곤 아침에 즉석 밥을 하나 전자레인지에 데운다. 어제 편의점 도시락에서 남긴 반찬으로 아침을 대신한다. 회사에 출근해서도 밀린 일이 있다는 핑계로 동료들과 점심을 같이 하지 못하고 혹여 동료들이 볼까봐 회사에서 두 블록이나 떨어진 편의점에서 역시 삼각김밥에 컵라면으로 점심을 때운다.
동료들이 다 퇴근한 저녁 회사 냉장고에서 캔 커피와 탄산음료 두어 개를 챙기고 회의실에 가서 간식용 스낵을 한 움큼 쥐곤 가져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가방에 집어넣는다. 퇴근을 한다.
코로나19 사태 때 풀린 급격한 유동성으로 인플레이션이 가중되었다. 이로 인해 정부와 금융당국은 물가를 안정시키려 금리를 올리게 됐다. 금리 인상으로 많은 이가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대란이 발생했다. 이 밖에도 기후변화, 자국이기주의가 합치돼 물가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하루하루 상승하고 있다. 모든 계층이 고통을 받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자산이나 여유가 적은 사회 초년생들이 겪는 어려움은 더욱 커져가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신인들이 고민하고 사회에 던지고 싶은 화두들은 정의, 젠더, 소외, 폭력 등이었다. 개선이 시급한 고질적인 불평등 문제가 많았다. 기성세대들은 감히 던질 수 없었던 문제들을 젊은 친구들은 과감하고도 도전적인 시각으로 풀어냈다. 우리 사회가 고치지 않았던 문제들을 숨기기 않는 솔직함도 눈에 띄었다.
그런 시선은 성장을 거듭했다. 그러자 경쟁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사회가 지켜보지만 말고 끌어안아야 한다는 화두를 던지는 ‘오징어게임’이 탄생했다. 학교 내 폭력이 한 인간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준 것인지 상기시키는 ‘더 글로리’를 만들어냈다. 젊은이들의 도전적인 시각이 이런 작품들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 젊은 신인 작가들이 쓰는 글의 키워드는 ‘생존’으로 바뀌었다. 지금 만연한 문제를 고민할 겨를이 없다. 이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가 가장 큰 고민이라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며칠 전 뉴스에서 서울 유명 냉면집 냉면 값이 1만 5000원, 1만 6000원이 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여름이면 많은 사람들이 즐기던 냉면이 이제 젊은 층이나 경제적 약자에겐 만만한(?) 음식이 아닌 것이다. 사무실 옆 삼계탕 집은 ‘특’이 붙으면 2만 원을 넘는 가격이 됐다. 또 다른 뉴스에서는 편의점 도시락 판매량이 계속 기록을 경신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대한민국 위상을 높이고 칸 영화제와 아카데미를 동시에 석권한 영화 ‘기생충’은 우리 사회의 빈곤이 개인에게 책임을 돌릴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짚었다. 동시에 사회가 양극화와 빈곤에 대해 관심을 갖고 노력해야 한다는 화두를 던졌다고 생각한다.
신인 작가들 작품 속 인물들이 편의점 도시락도 먹고 그리고 유명 냉면집 냉면도 먹고, 친구들과 어울려 술도 마시고 치맥도 하고 청춘을 즐기는 그런 밝고 희망찬 인물들이었으면 한다. 우리 젊은이들이 우리 사회 속 내재된 문제들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비판하고 개선해 나갈 방법을 숙고하고, 또 비판하는 것과 더불어 우리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청춘을, 자신들 인생의 ‘화양연화’도 같이 즐길 수 있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선 국가와 사회 모든 구성원이 함께 관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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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동연 영화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