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업체도 갖췄던 ‘외국인 동선 보고 체계’ 실종…저임금 인력난 속 탈출사건 발생 “터질 게 터졌다”
#하청업체도 갖췄던 시스템…법무부 이관 뒤 '실종'
인천지검 국제범죄수사부(부장검사 강석철)는 4월 20일 출입국관리법 위반, 공항시설법 위반 등 혐의로 카자흐스탄 국적 A 씨(21)와 B 군(18)을 각각 구속 기소했다. 두 사람은 인천공항 제2터미널의 창문을 깨트려 탈출한 뒤 공항 경계 담벼락을 넘어 밀입국을 시도한 혐의를 받는다.
A 씨 등은 3월 24일 오전 7시 26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하지만 법무부 인천공항 출입국·외국인청의 입국심사에서 '입국 목적 불분명'으로 입국 불허 판정을 받았다. 본국으로 되돌아가야 할 상황에 놓인 이들은 제2터미널 3층 환승구역 출국대기실에 머무르다 3월 26일 탈출을 감행했다. A 씨는 5시간, B 군은 나흘 만에 경찰 등에 붙잡혔다.
출국대기실은 입국 불허 외국인들이 본국 송환 전까지 생활하는 장소다. 그동안 민간 항공사 연합체인 '항공사운영위원회'(AOC)가 하청업체 '프리죤'을 통해 운영해오다 지난해 8월 법무부로 관리 주체가 바뀌었다. 입국 불허에 불만을 품은 일부 외국인들이 자해나 직원 폭행 등으로 소란을 일으키는 사례가 빈번해지자, 책임과 부담을 민간 하청업체 직원들에게 전가하는 게 부당하다는 비판을 반영해서다. 실제 미국과 독일 등 해외 대부분은 이와 같은 시스템을 정부가 관리한다.
출국대기실에 있어야 할 외국인이 인천공항의 보안을 뚫고 공항 바깥까지 탈출한 '초유의 사태'는 이번이 처음이다. 시설의 관리 주체가 법무부로 바뀐 뒤 사건이 벌어지면서 정부기관의 '시스템 부실'을 바라본 인천공항 내부의 충격이 컸다고 전해졌다.
해당 사건의 주요 원인으로는 '외국인 동선 보고 체계의 실종'이 꼽힌다. 구체적으로 보면 입국 불허 외국인은 출국대기실 외에도 이른바 '보안구역'으로 불리는 공간에서 제한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출국대기실 관리 주체는 법무부, 보안구역 관리 주체는 인천공항공사다.
민간 하청업체가 출국대기실을 운영했을 때는 대기실에 있던 외국인이 보안구역으로 이동할 때마다 인천공항공사와 법무부에 각각 보고하는 시스템이 존재했다. 공항 보안과 외국인 보호 및 관리 등 복합적인 이유였다. 이런 시스템을 통해 법무부와 인천공항의 관계자들은 어느 외국인이 출국대기실과 보안구역에 있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법무부가 출국대기실 관리를 시작하면서 이런 시스템이 사라졌다. 이 때문에 인천공항공사 소속 보안직원들은 어느 외국인이 보안구역에서 움직이고 있는지 파악할 수 없게 됐다. 자연히 감시망이 허술해지면서 외국인들이 보다 쉽게 탈출을 시도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 최근 카자흐스탄인들이 도주 과정에서 어떤 제지도 받지 않았던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인천공항에선 법무부가 관리를 시작한 뒤 출국대기실 운영이 전반적으로 산만해졌다는 불만이 크다. 예컨대 과거에는 하청업체 프리죤이 입국불허 외국인의 출국대기실 인솔과 생활관리 및 송환 탑승 절차 등을 일체 책임졌으나, 법무부로 이관된 뒤로는 각 역할 분담을 놓고 기관끼리의 혼선이 계속되고 있다.
법무부는 인솔과 송환 탑승 절차 등은 맡지 않고 출국대기실 내 인원 관리만 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다 보니 카자흐스탄인 탈출 사건 때처럼 외국인이 출국대기실 문밖으로만 나가도 책임 소재에서 벗어나는 구조다. 현재는 외국인의 인솔 및 송환 탑승 절차를 각 항공사 직원들이 돕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규모 항공사의 경우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탓에 과거 출국대기실 운영을 책임졌던 프리죤이 지원하고 있다.
출국대기실 한 관계자는 "송환 외국인 관리는 약 70개 항공사의 탑승 정보와 취항지 등을 전부 파악해야 하는 등 누적된 경험과 전문성이 요구되는 업무"라며 "이를 미흡한 인원들이 특이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돕는 식으로 절차가 이뤄지다 보니 대단히 무질서한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는 "법무부가 출국대기실 관리 주체를 국가로 전환한 제도의 취지를 좁게 해석해 벌어진 현상으로 본다"고도 부연했다.
#법무부 "인권 고려 차원"…부랴부랴 대책 마련
법무부는 뒤늦게 개선 방안을 모색 중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입국 불허 외국인은 원칙적으로 출국대기실에 있어야 하나, 인권 등을 고려해 대기 장소를 변경할 수도 있다"며 "현재 공항 보안관리 강화 차원에서 외국인의 인적 정보 등을 인천공항공사 보안부서와 공유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 유사한 사례의 재발 방지를 위해 공항 보안당국과 업무협력 강화, 자체 순찰 강화 등의 방안을 수립·추진하고 있다"고도 강조했다.
그럼에도 인천공항 안에선 실효성 있는 조치를 기대하지 않는 눈치가 읽힌다. 시스템이나 순찰을 강화하더라도 인력 자체가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출국대기실 직원의 총 정원은 41명이다. 그러나 현재 근무자는 30명에 불과하다. 몇 차례 구인 공고를 냈지만 지원 미달 등으로 모집에 실패했다고 알려졌다.
저임금이 원인이란 목소리가 크다. 민간업체가 운영할 때는 오전·주간·야간 3교대로 운영돼 야간 수당 등이 있었으나, 법무부가 맡은 뒤로는 각 시간대 별 전담 인원을 두고 최저임금을 지급해 처우가 악화했다는 것이다. 한 직원은 "기존 실수령액은 약 230만 원이었는데 현재는 180만 원 정도"라며 "충원보다는 이탈 방지를 고민해야 할 상황"이라고 털어놓았다.
한편 카자흐스탄인 탈출 사건으로 법무부와 인천공항의 보안 허점 등이 고스란히 노출됐다는 비판이 잇따랐지만, 관련 사태로 책임을 진 관계자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법무부 측은 "해당 외국인들의 대기장소 변경 승인 절차, 출국대기실 내 관리과정 등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인천공항공사 측은 "공항경찰대 등이 사건 경위를 아직 파악하고 있다"며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국회에는 송환 대상 외국인들의 인솔과 관리 및 탑승 전반의 업무를 법무부로 일원화해야 한다는 내용의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법안을 대표발의한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애초 출국대기실 관리를 법무부에 맡긴 취지 자체가 책임 주체를 정부로 일원화하기로 한 것이었다"며 "특히 송환 탑승 과정에서도 탈출을 시도하는 외국인들도 간혹 있는데, 이때 강제력을 동원하려면 정부 기관인 법무부에서 절차를 책임지는 게 상식"이라고 지적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