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차례 임대차보호법 개정 불구 보증금 회수 안전장치 없어…“당장의 피해자 구제 방식은 문제 반복시킬 것”
전문가들은 부동산 가격 변동, 전세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제도 등이 전세사기 피해를 키웠다고 말한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다주택자들이 갭투기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고, 전세대출이나 전세보증보험 등이 제도적으로 동원되면서 전세사기 피해가 커졌다”며 “거기에 주택가격 변동도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기존에 세입자가 냈던 전세보다 가격이 떨어지면 집주인이 상환하기 어려워지는 전세 자체의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며 “2009년도에 전세자금을 대출해주면서 버블을 키웠다”고 전했다.
정부에서는 전세와 관련된 문제들이 발생할 때마다 여러 법과 제도를 만들었다. 대표적인 것이 주택임대차보호법이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주택 임대차 계약 관계에서 임차인이 겪는 권리 불균형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민법에 대한 특별법 개념으로 만들어진 법이다. 하지만 이 법으로 전세사기를 근절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청년 주거권 문제해결을 위해 결성된 시민단체 민달팽이유니온의 지수 위원장은 “세입자에게 우선변제권을 부여해주고, 최우선 변제 대상으로 권한을 부여하는 등의 내용이 과거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을 통해 만들어지긴 했으나 그것만으로 전세사기를 근절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세입자가 본인의 신용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서 그 돈을 임대인에게 일정 기간 동안 사적인 계약을 통해 보증금으로 빌려준 셈인데 세입자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에 대한 안전장치 같은 것은 없다”고 말했다.
올해만 전세 관련 법안이 두 차례 개정됐으나 전세 계약이 만료됐을 때 임차인이 전세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을 수 있는 장치는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았을 때 처벌 조항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재만 교수는 “전세보증금 보호를 위해 민법에 전세권설정등기로 선순위를 보호받을 수 있도록 했고, 이후 주택임대차보호법에서 확정일자, 전입신고 등을 만들어내면서 사실상 채권 계약인데 물권 계약인 것처럼 바꿔주려는 노력을 했다”며 “그런데도 임대인이 전세권설정등기를 동의하지 않으면 못 하고, 임대인의 세금 체납 내역이나 파산 상태 등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계약을 진행하다보니 임차인들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4월 1일부터 임차인이 계약일부터 임대차 개시일까지 임대인 동의 없이 체납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임대차 계약 체결 전이나 임대차 기간에는 임대인 동의 없이 체납을 확인하지 못해 여전히 임차인에게 불리하다는 비판이 있다.
전문가들은 집주인이 보증금을 제때 돌려주지 않을 때 보증기관이 대신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는 전세보증보험도 전세사기를 근절할 대책은 되지 못한다고 했다. 지수 위원장은 “보증보험 현행 제도도 개선을 해서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세입자의 보증금이 주택 가격의 90%이기만 해도 보증보험 가입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집들이 전세사기를 당했을 때 집이 경매에 넘어가면 경매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되는 비율)이 50~70%에 그쳐 낙찰을 받아도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피해자들에게 우선매수권을 부여하고, 피해자가 주택을 경매로 낙찰받으면 금융 혜택을 주는 등의 내용을 담은 전세사기 피해 지원을 위한 특별법을 발표했지만 이 역시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비판이 나온다.
안상미 전세사기피해자전국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은 “특정 피해자들을 위한 법인 것 같은 느낌”이라며 “전세사기를 당한 사람의 유형이 엄청 다양한데 지원 대상 조건이 까다롭다”고 말했다. 안 위원장은 “실질적인 지원책은 채권 매입인데 그 방안이 빠졌다. 이건 정부가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라며 “채권 매입을 돈으로 할 수도 있겠지만 피해자들의 지위를 양도 받아서 법적인 소송 등 지난한 과정들을 정부가 대신해줘야 한다”고 전했다.
정부의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에 대해 일각에서는 다른 사기 피해와 형평성에서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에 대해 지수 위원장은 “개인이 주의해서 피할 수 있었던 문제의 수준이 아니다”라며 “중개사가 전세 사기 매물임을 알면서도 알려주지 않았거나 임대인이 편법으로 주택을 매입하고 세입자 보증금을 편취한 정황이 있는데 이런 부분을 세입자가 미리 알 수 없고, 그것을 제도적으로 보장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는 “제도적으로 세입자 입장에서 위험한 것이 많은데 정부는 그것을 제때 개선하지 않았고, 중개사가 중개 의무를 충실히 하지 않아도 법적으로 관리 감독을 엄격하게 해오지 않았다”며 “갭투기가 가능하게끔 만들었던 대출제도와 보증제도를 활성화한 박근혜 정부, 그것을 유지하고 확대했던 문재인 정부, 그리고 여전히 개선을 하지 않고 있는 현 정부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상미 위원장은 “전세사기는 정부의 잘못된 제도로 발생한 것이며 전세사기가 이렇게까지 발생할 동안 정부는 관리 감독을 전혀 하지 않았다”며 “정부는 건설사들의 부실 채권을 사주고, 미분양 임대 아파트도 사주고, 은행 부실 채권도 사주는데 그들은 구제해주면서 피해 임차인은 구제를 안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급기야 전세폐기론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당장 전세가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정부가 전세와 관련된 제도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필요하다고 했다. 임재만 교수는 “전세를 당장 없앨 수는 없지만 임대인이나 매물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해주는 전세자금대출을 규제하고, 월세에 대한 세액공제를 확대하는 등의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영웅 베스트컨설팅 대표(전 더불어민주당 전국청년위원회 부위원장)는 “전세 비용에 대해 거래가 투명하고 원만하게 이루어지도록 공공 영역에 중개기관을 운영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세입자 입장에서는 계약 만료 후 보증금 반환이 담보되니 안전하고, 임대사업자 입장에서는 거래가 투명하니 세금이나 재투자 문제에도 걸리는 게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흠 법무법인 우리들 변호사는 “전세사기에 대한 특별형법을 만들어 가해자들을 강도 높게 처벌해야 한다”며 “형사처벌을 받게 해 가해자들이 재산을 은닉할 경우에도 다 찾아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수 위원장은 “월세 지원과 임대료 규제에 대한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며 “임차인들이 믿고 계약할 수 있는 공공임대도 확대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민주 기자 lij907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