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관련법 개정안 6건 발의, 행안위 논의 지지부진…가상자산 법적 근거 미비부터 해결해야
5월 5일 언론보도를 통해 거액의 코인 보유 사실이 밝혀지고 여권이 집중공세를 퍼붓자 김남국 의원은 자료를 공개하며 의혹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하지만 갈수록 여론이 나빠지고 민주당 내에서도 비판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결국 김 의원은 사흘 만에 사과의 입장을 밝혔다. 김 의원은 5월 9일 “민생 위기 속에 공직자로서 국민 눈높이에 맞는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했다”며 “국민들에게 더 일찍 사과드렸어야 했는데, 억울한 마음에 소명에만 집중하다 보니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지 못했다”고 밝혔다.
당도 수습에 나섰다. 민주당 지도부는 5월 10일 김 의원에게 가상자산 매각을 권유하고, 관련 진상조사에도 착수하기로 결정했다. 김 의원은 자신의 SNS(소셜미디어)를 통해 “당 권고를 충실히 이행하겠다”며 “보다 강도 높은 진상조사에 적극 임하겠다. 철저한 조사를 신속하게 진행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했다.
김남국 의원은 논란 초기부터 일체의 불법과 위법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위법성 여부와는 별개로 국민을 대의하는 국회의원이 임기 중 투기에 가까운 코인 투자를 한 것이 국민정서상 옳은 것이냐는 지적이 주를 이룬다. 정가에선 이번 사태와 같은 일을 방지하기 위해선 국회의원을 포함한 공직자 가상자산 보유 현황 전수조사 및 가상자산 재산신고·신탁 입법을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민주당 최대 의원모임인 ‘더좋은미래’는 5월 10일 입장문을 통해 “당 소속 의원 전원의 코인투자 여부 및 그 내역에 대해 전수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민주당 차원의 선제적 전수조사 이후 국회의원 전원에 대한 조사를 추진해야 한다”고 당 지도부에 제안했다. 이어 “가상자산을 공직자 재산신고 대상에 포함시키고 신탁제도를 도입하는 등 이해충돌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계류 중인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5월 안에 신속히 처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공직자들의 예금이나 주식, 채권은 이미 재산신고를 통해 다 공개돼 있다. 마찬가지로 투자의 한 형태인 가상자산이 아직까지 공개대상이 아닌 게 더 비정상적이었던 것”이라고 했다.
실제 민주당 지도부는 이번 사건의 진상조사와 더불어 가상자산을 공직자 재산신고 대상에 포함하도록 하는 제도 개선을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번 문제를 키운 것은 정치권의 무관심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진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행보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가상자산을 공직자 재산신고 대상에 포함하는 법률 개정안은 이미 국회에 발의돼 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제21대 국회에서 접수된 관련 개정안은 6건이다. 민주당은 민형배(2020년 11월 6일 발의) 신영대(2021년 3월 25일) 이용우(2021년 5월 14일) 김한규(2023년 5월 2일) 의원이, 국민의힘은 유경준(2022년 3월 23일)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했다. 권성동 의원도 이번에 김남국 의원으로 인해 문제가 불거지자 5월 11일 개정안을 제안했다.
가상자산을 현금·예금·주식·채권 등과 같이 재산의 유형에 포함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가상자산을 활용한 탈세·재산은닉 시도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는 만큼, 공직자의 등록재산에 가상자산을 포함하도록 규정함으로써 투명성을 강화하자는 게 개정안의 골자다.
해당 법안들의 소관 상임위는 ‘윤핵관’ 장제원 의원이 위원장으로 있는 행정안전위원회다. 가장 먼저 발의된 민형배 의원 개정안과 신영대 의원 개정안만이 각각 2021년 2월과 8월 소관위 전체회의에서 상정 및 제안설명됐을 뿐 2년 넘게 행안위에 계류된 채 제대로 심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개정 입법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이제 와서야 여야는 법안 처리에 뜻을 모은 것으로 전해진다. 소관 상임위인 행안위의 여야 간사는 가상자산 관련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심의하기 위한 일정을 협의 중이다. 사안의 시급성을 고려해 이르면 5월 말 법안심사제1소위원회가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언급했듯 민주당은 사실상 당론으로 이 개정안을 처리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가상자산 이슈에 국민적 시선이 쏠려있는 만큼, 국민의힘도 법 개정에 반대하지는 못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일정대로 진행될 경우 개정안은 5~6월 중 국회를 통과할 수 있다. 하지만 입법으로까지 이어질진 미지수다. 여야가 법 개정 취지에 공감한다 해도 가상자산에 대한 특수성을 정의 내리고 추가적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구체적 제도개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개정안 발의에 관여했던 민주당 인사는 “국회에서 가상자산에 대한 논의가 진전되지 못했던 것에는 이유가 있다”며 “가상자산에 대해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 대한 법적 근거도 아직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과세나 재산신고 문제로 넘어가지 못했던 것이다. 가상자산의 공직자 재산신고는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선행 문제까지 함께 논의를 하다보면 법 개정에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이번 논란을 수습하려 졸속으로 처리하면 나중에 또 문제가 발생할 생길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국회의원 전원에 대한 ‘가상자산 전수조사’ 요구에 대해서도 회의적 시선이 높다. 이재명 대표는 5월 11일 코인 전수조사 추진에 대해 “민주당이 제안한 대로 가상자산도 전부 재산신고 대상으로 만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의힘에서도 의원 가상자산 보유 현황 전수조사에 대해서는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국회의원뿐 아니라 공직자에 대한 가상자산 보유 현황 파악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가상자산 관련 공무원 행동강령을 운영하고 있는 공공기관은 검찰청·경찰청·공정거래위원회·과학기술정보통신부·관세청·국무조정실·국세청·금융위원회·기획재정부·법무부·산업통상자원부·인사혁신처·중소벤처기업부·금융감독원·IBK기업은행·KDB산업은행 등이다.
행동강령은 가상자산과 관련한 직무를 수행하는 공직자가 가상자산 보유 현황을 소속기관장에게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기관별 관리 현황은 국민권익위원회가 점검한다.
한편, 참여연대는 법무부에 ‘직무관련 공무원의 가상자산 보유 현황파악 및 신고요청’이라는 문서가 있다는 사실을 파악, 4월 4일 정보공개를 청구했다고 전해졌다. 이 제목의 문건은 총 4건으로 2022년 9월 6일과 올해 1월 26일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이 생산 혹은 보고받은 문건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법무부는 4월 14일 이 문건에 대해 비공개 결정했다. “해당 문건에는 정보공개법 제9조 1항 6호에 따른 개인정보 사항이 포함돼 있다”며 “공개될 경우 사생활의 비밀 또는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된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참여연대 등에서 ‘비공개’ 결정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자 법무부는 5월 10일 “2021년부터 올해 1월까지 점검한 결과, 한동훈 장관과 이노공 차관을 포함해 직무 관련 소속 공무원의 가상자산 보유가 없었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법무부 공무원 행동강령’에 근거해 가상자산 관련 직무와 관련된 공무원의 가상자산 보유 현황을 연 2회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한동훈 장관의 가상자산 보유 여부가 궁금하다고 참여연대가 정보공개를 청구한 게 아니다.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이 갖고 있을 것으로 보이는 공무원들의 현황 문건을 공개하라고 한 것이다. 왜 본인이 발끈하는지 모르겠다”며 “개인정보 사항은 삭제해서 공개하면 된다. 공직자로 당연히 국민에 알려야 하는 사항”이라고 지적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