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4급 암모늄’ 유해성 알고도 예방과 사후대처 허술…팬데믹 당시 제품 사용자 건강 파악 시급
#'담당자 찾아 삼만리' 지쳤다
서울 광진구의 한 주민센터에서 방역노동자로 일하다 2020년 8월 24일 소독액에 직접 노출되는 사고를 입은 김정태 씨(46). 그는 현재까지도 심각한 눈 부상(각막미란)과 피부 화상, 천식 등 호흡기 질환 및 외상 후 스트레스로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눈과 피부 부상만 산업재해로 인정된 탓에 실업급여 대부분을 병원비로 쓰는 처지다.
김 씨는 일을 처음 시작하고 꼭 2주 만에 참변을 당했다. 오전 9시부터 4시간 동안 동사무소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 방역소독제를 뿌리는 게 그의 업무였다. 사고 당일 고장 난 압축 분무기를 조작하던 중 소독액이 갑자기 튀어나와 몸과 얼굴에 분사됐다. 눈은 아예 뜰 수 없었고 온몸이 타버리는 듯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의 잘못이었을까. 방역 직원끼리 분무기를 돌려쓰는 구조였으므로 고장의 원인은 불명확했고, 물품의 관리감독자인 주민센터도 사고가 난 뒤에야 문제를 확인했다. 게다가 김 씨는 입사 후 단 한 차례도 안전교육 등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장갑만 지급됐을 뿐 방호복과 모자 등도 일체 받지 않았다.
김 씨는 "분무기에 소독액이 가득 담겨 워낙 무거웠던 까닭에 직원들이 바닥에 질질 끌고 다니는 등 애초부터 관리 상태가 좋지는 않았다"며 "위험 물질을 담은 물건인데도 '계단 등 건물 곳곳에 잘 뿌리면 된다'는 식의 당부 말고는 아무런 설명도 들은 적 없다"고 말했다.
실제 일요신문이 입수한 해당 주민센터의 사고보고서 등 자료를 종합하면 김 씨 사고의 배경에는 총체적인 안전 불감증에 규정 위반까지 있었다. 우선 안전교육부터 이뤄지지 않았다. 주민센터는 자체 보존 기록으로 남긴 사고보고서에서 '안전 교육 강화'를 개선사항으로 적었지만, 정작 향후 계획에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전체 교육 실시가 어렵다"고 명시했다.
보호 장구 역시 지급되지 않았다. 김 씨가 사고 직후 주민센터 직원들과 나눈 전화통화 녹취록을 확인해보니 한 간부는 "하얀 옷 입고 다니면 확진자가 나왔다는 등 식당에서 난리를 치다보니 지급을 못했다"며 "몇 페이지짜리 (방역 관련) 지침을 전부 지키면서는 일을 할 수가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문제는 '방역 작업·교육 업무일지'에는 정반대 내용이 담겨있다는 점이다. 이 주민센터가 2020년 8월 11일부터 24일까지 기록한 업무일지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당일 작업 내용에 대한 적합한 교육여부'와 '복장 등 개인보호구 지급·착용'이 각각 '양호', '실시'했다고 체크됐다.
김 씨는 사고 이후 통원치료를 받으며 출근과 휴무를 반복했다. 다른 부서로 옮겨져 그해 12월까지 일했지만 방역 직원들이 제대로 된 보호구를 착용한 모습은 본 적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고 피해자인 제게도 투명마스크로 불리는 페이스실드만 지급됐다"며 "제 사고를 목격한 동료들이 알아서 조심하는 분위기였다"고 토로했다.
결국 김 씨의 피해만 커졌을 뿐 관리·감독 책임자들은 아무런 불이익도 받지 않았다. 김 씨는 사고 약 한 달 뒤에야 산재를 인정받았는데, 그 전까지는 공론화를 우려한 공무원들의 설득에 시달려야 했다. 주민센터 간부는 김 씨와 통화에서 "(우리가) 보건법, 노동법 등 다 위반인데 사정 좀 봐달라"는 부탁을 해오기도 했다.
당시 동장은 일요신문과 최근 통화에서 "그 시기 방진복도 공급대란이 있어서 나눠주지 못한 것으로 기억한다"며 "안전교육은 그쯤 태풍이 몰아친 까닭에 수해복구 지원 등의 업무에 투입된 인원이 많아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법이나 규정 등을 위반해 행정처분 등 제재를 받지는 않았다"고 강조했다.
지자체 등 상급기관이 실태를 파악했더라면 주민센터는 처벌을 받아야 할 수도 있었다. 지정노무법인의 소민안 노무사는 "산업안전보건법 등에 따라 유해물질을 취급하는 근로자에는 보호복 착용 등을 사업주가 오히려 지시해야 한다"며 "안전교육 미실시도 위법 소지가 있고, 공문에 허위 기재한 지점은 분명한 법 위반"이라고 꼬집었다.
김정태 씨는 대한민국 혹은 지자체 등을 대상으로 손해배상청구 등 소송을 검토하고 있다. 최근까지도 방역소독제의 유해성 관련 정보를 요청하고,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 인원 확보 등을 요청했지만 '다부처 민원'으로 분류돼 환경부, 질병관리청, 고용노동부, 식약처 등으로 이첩을 거듭했다. 그는 '담당자 찾아 삼만리'에 지쳤다고 호소했다.
#방호복 없이 조끼만 걸친 채…
2년 전 일이지만 김 씨 사례가 주목되는 이유는 아직도 실태가 크게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방역소독제의 유해성이 매우 심각하지만 환경부 등의 안내가 부실해 개선 의지에도 물음표가 계속 따라붙고 있다. 방역소독제에는 가습기살균제 성분인 4급 암모늄이 들어있다. 따라서 물체 표면에만 뿌릴 수 있고 공중분사는 금지된다.
이를 자세히 인지한 채 방역을 실시하는 곳은 많지 않다. 인터넷 검색만 해봐도 방호복 등 없이 분사하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례로 서울의 한 자치구가 올 2월 공개한 유튜브 영상을 보면 직원들이 조끼만 걸친 채 곳곳에 소독제를 분사한다. 이를 본 김 씨는 "저의 사고 당시 복장과 방식 그대로"라며 우려를 드러냈다.
환경부가 생산한 대부분의 자료도 공중분사의 위험성이 명확히 드러나 있지 않다. 상당수 인포그래픽 자료에는 '사람에 분사 금지' 정도가 적혔고, 2020년 4월 21일 배포한 '방역소독제 사용지침'에는 "바이러스로 오염된 물체 표면 소독 시, 분사하지 않고 소독액을 천에 적셔 10분 이상 접촉" 등 모호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단순한 홍보 미흡 정도로 치부할 수는 없다. 김 씨의 사고를 일으킨 제품을 만든 업체가 작성한 '물질안전보건자료'에 따르면, 해당 물질은 분명히 '표면용'이며 사용할 때 보호구 착용은 기본이다. 이를 어기다 흡입 혹은 피부에 접촉하게 되면 '심한 눈 손상과 화상, 심하면 사망까지 초래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김 씨는 "주민센터에서는 사람들이 있는데도 공중에 분사한 경우가 잦았다"며 "이 때문에 공무원들끼리 '기침이 나온다'는 등의 이유로 말다툼을 벌인 일도 있었다"고 떠올렸다. 또 "표면에 뿌리더라도 완전히 닦아내야 안전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작업"이라며 "요양원 등에서는 노인들이 누워 계신데 분사한 사례마저 확인된다"고 전했다.
#"위험 노출 정도 면밀히 파악해야"
환경부는 방역용 소독제에 '공중분사 금지' 취지의 문구 표기를 의무화하는 고시 개정을 추진한다고 5월 29일 밝혔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2021년 국립환경과학원이 한국환경공단에 의뢰한 '4급 암모늄 물질 흡입독성시험 보고서'가 최근 공개되자 면피를 위해 급하게 나섰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어서다.
JTBC 등 언론보도로 알려진 이 보고서는 방역소독제의 4급 암모늄 물질을 실험용 쥐에 단회 흡입 노출 후 발현되는 독성을 관찰한 내용이다. 약 30마리의 실험용 쥐를 대상으로 0.1mg/L, 0.3mg/L, 0.6mg/L의 농도로 하루 4시간 흡입 노출을 실시한 결과 0.193mg/L의 농도에서 실험체 절반이 죽었다.
이전까지 환경부는 방역소독제의 호흡 독성 실험을 하지 않았거나 자료가 존재하지 않다는 태도를 보여 왔다. 2023년 2월 1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이주환 국민의힘 의원이 '호흡기 독성 관련 자료가 없는지' 등을 묻는 질의에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면제 기준에 의해 면제했다"고 답한 바 있다.
환경부가 방역소독제 분사의 유해성을 알고도 숨겼다는 의혹이 일자 마련된 게 이번 '공중분사 금지표기 의무화' 조치다. 단 환경부는 관련 보도에 대해 "언론에 공개된 자료는 방역소독제 때문이 아니라 '살생물제 안전관리법'에 따른 소독제 전반의 유해성 연구를 위해 수행한 결과물"이라고 반박했다.
환경부는 또 "질병관리청과 공동으로 적법하고 안전한 소독 방법을 안내 및 홍보해 왔으나 실제 방역 현장에서는 지켜지지 않은 사례가 있었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다만 4급 암모늄 화합물이 들어 있다는 것만으로 과도한 우려와 공포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시민사회에서는 공중분사 금지 표기 외 추가 조치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환경부 말대로라면 분명 설명을 했는데, 왜 현장에서는 실행되지 않는지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며 "고시 개정뿐만 아니라 방역업체 대상 실태조사 및 노동자와 시민의 위험 노출 정도까지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