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 형태 시설만 들어서면 갈등 키워…시민 이용 공간 조성 및 규제 묶인 주민 혜택 방안 필요”
서울시는 고도지구와 문화재 인근 고도제한을 완화하고, 아파트 높이 제한 기준을 삭제하는 등 개발 중심 정책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6월 말에서 7월 초 중으로 고도지구 8곳 중 7곳에 대한 재정비 계획안을 발표할 계획이며, 지난 달에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문화재청장과 만나 문화재 인근 높이 규제 완화 협조 요청을 하기도 했다. 올 초에는 35층까지만 지을 수 있었던 아파트 높이 제한 기준인 35층 룰을 삭제해 더 높은 아파트를 지을 수 있게 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3월 서울어린이대공원 주변 건물 고도제한을 26년 만에 폐지하고, 지난해 말 동대문구 배봉산 주변 높이를 기존 12m에서 24m로 완화해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했다.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도시 발전을 위해 높은 건물을 짓고, 낙후된 지역을 개발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문제는 이 과정에서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산권 보호와 문화재 및 자연환경 등 경관 보존에 대한 각각의 입장이 충돌하는 갈등 사례가 지금도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세계유산인 김포 장릉 일대에 대규모 아파트가 신축돼 지방자치단체, 건설사, 문화재청, 입주예정자들의 갈등이 심화된 바 있다. 건설사들이 김포 장릉 반경 500m 내에 일정 높이 이상의 아파트를 지으면서 문화재청의 사전 심의를 받지 않아 문화재청이 시공사에 공사 중지 명령을 내렸다. 이 때문에 해당 아파트 입주 예정자들은 불안에 떨어야 했다. 다행히 김포 장릉뷰 아파트에 주민들이 입주했지만 문화재청과 건설사들은 여전히 소송을 진행 중이다.
국토교통부는 문재인 정부 때부터 서울시 노원구 태릉골프장 일대 대규모 아파트 단지 공급을 위한 택지개발을 추진 중이다. 태릉골프장은 서울에 위치한 유일한 골프장으로 전 지역이 그린벨트로 지정돼 있다. 또 도시관리계획상 자연녹지이며, 군사시설 보호구역이자 고도제한 구역이다. 조선 왕릉의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어 부지의 12.6%가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기도 하다. 군과 태릉골프장 일대에 거주하는 노원구 주민들은 유네스코세계유산에 등재한 태릉 왕릉 훼손, 육군사관학교 이전, 자연 생태계 파괴 등을 이유로 태릉골프장의 택지 개발에 반대하고 있다. 국토부는 해당 부지에 당초 1만 가구의 주택을 공급하려고 했지만 주민들의 반발로 6800가구로 물량을 줄인 상태다.
이 밖에도 남산 경관 보호를 목적으로 지정한 남산 고도지구의 높이제한이 인근 주거지의 심각한 노후화를 불러왔다는 지적이 제기돼 높이 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남산 고도 규제를 풀면 남산의 경관이 훼손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어 인근 주민들의 재산권과 경관 보존에 대한 대립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재산권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과 자연환경, 문화재, 관광지 등 경관을 보존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상생하기 위해서는 개발을 할 때 특정 시민들만 혜택을 얻는 것보다 서울 시민 전체가 혜택을 볼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규제로 인해 개발이 어려운 곳에 사는 주민들에게 일정 혜택을 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한다.
안형준 전 건국대 건축대학 학장은 “개발을 할 때 환경적인 분석을 우선 끝내야 하고, 환경 영향 문제가 해결돼 개발을 한다면 일부 사람들만 이용하는 공간보다 전체 서울 시민들을 위한 공익적인 공간이 들어서야 한다”고 말했다. 안 전 학장은 “특히 남산처럼 서울을 상징하고 있는 곳 주변에 주거형태의 시설만 들어서는 것은 갈등을 더 키울 수밖에 없다”며 “모든 서울 시민이 이용할 수 있는 공연장이나 문화시설 등이 들어서면 어느 정도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과거 북촌 주변에 사는 주민들에게도 개보수 비용을 지원해줬다”며 “개발이 어려운 고도지구나 문화재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생활하는 데 불편하지 않도록 비용 지원을 해주는 등의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21년 서울시는 북촌 등 한옥마을 1100가구 주민들의 집을 무상수리 해주는 등의 지원을 한 바 있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은 “문화재 주변이나 자연보호구역 주변에 살아서 경제적으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부에서 여러 간접 지원을 해줘야 한다”며 “재산세 면제나 자녀 교육비 면제, 대중교통비 면제 등 파격적인 지원을 해주면 해당 지역을 개발하지 않더라도 혜택을 받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전했다.
배웅규 중앙대 도시시스템공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획일적으로 규제를 해왔지만 최근에는 부지 특성마다 합리적으로 규제를 하는 경우도 많아졌다”며 “이에 따라 개발을 하기 전 가장 먼저 선행돼야 할 것은 시민들과 공감대 형성”이라고 말했다. 배 교수는 “특정 부지를 시민의 복리 증진을 위해 개발한다는 취지의 충분한 설명이나 규제 방법에 대한 다수의 동의를 얻어 개발을 진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오덕만 한국문화재지킴이단체연합회 회장은 “문화재 근처나 경관적 의미를 갖는 곳 주변에 높은 건물이 들어선다고 할 때 이해관계가 다른 두 집단이 상생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개인에게만 이익이 가는 건지 공익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따져봐야 할 것”이라며 “개발을 하기 전에 환경영향평가를 하듯이 문화재에도 피해가 가지 않는지 관련 영향평가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민주 기자 lij907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