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저우 난가배에서 구쯔하오에 역전패, 준우승 그쳐…승부처에서 서두르는 모습 과거 약점으로 꾸준히 지적
17일 중국 저장성 취저우 국제바둑 문화교류센터에서 열린 제1회 취저우 난가배 세계바둑오픈전 결승3번기 최종국에서 신진서 9단이 중국의 구쯔하오 9단에게 141수만에 백 불계패하며 종합전적 1승 2패로 정상 문턱에서 멈췄다.
#구쯔하오 이변의 역전승
앞서 열린 1국과 2국을 나눠가진 가운데 속개된 3국은 신진서의 백으로 시작됐다.
첫 번째 몸싸움에서는 신진서가 포인트를 올렸다. 어지러운 상변 전투에서 교묘한 행마로 우위를 확보했다. 상변 일합이 마무리된 56수에서 인공지능은 백의 승률을 90%로 예측하고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백에게 실리를 내주고 어쩔 수 없이(?) 쌓게 된 흑의 중앙 세력을 무력화시키는 일. 이건 신진서의 전문 분야이기에 신진서의 승리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원래 삭감하러 들어간 백돌은 단 곤마(困馬)여서 쉽게 공격당하는 형태가 아니었는데 백의 행마가 자꾸 어려운 쪽으로 가고 있다. 이건 불리한 흑에게 찬스를 주는 길”이라는 박정상 9단의 해설대로 승리를 목전에 둔 신진서는 수를 거듭할수록 흔들리고 있었다.
신진서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자 핀치에 몰렸던 구쯔하오가 힘을 내기 시작했다. 흑쪽으로 흐름이 넘어간 것은 우하 전투였다. 중앙 타개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신진서는 연신 고개를 가로저으며 흔들리는 형세가 탐탁지 않음을 내비쳤다. 승부가 갈린 것은 우하귀 접전에서였다. 신진서의 착각이 있었고, 때맞춰 구쯔하오의 연이은 잽이 제대로 먹혔다.
#이 페이스라면 연말 150국 가능
신진서를 꺾고 이변의 우승을 만들어낸 구쯔하오는 결승전 직후 열린 인터뷰에서 침착하면서도 겸손한 태도로 임했다.
“우승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결승1국도 쉽게 내줬고 상대가 성적이나 기량 모든 면에서 세계 최강의 기사였기에 오히려 부담을 가지지 않았던 것이 좋은 결과로 나타난 것 같다”고 운을 뗀 구쯔하오는 본인이 생각하는 신진서의 약점을 밝히기도 해 주목을 끌었다.
구쯔하오는 “초반 상변에서 많이 당해 불리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중반 중앙 접근전부터 신진서 9단이 자책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나는 그가 위기감을 느끼고 감정적으로 흔들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경솔하고 비이성적인 착수가 나왔고 국면이 갑자기 나빠진 것 같다”고 나름 신진서의 패인을 분석하기도 했다.
사실 중국에서 신진서의 단점이 구쯔하오의 입에서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과거 신진서는 국제대회에서 중국 기사들을 상대로 유리한 장면에서 서두르다 여러 차례 자멸한 적이 있었다. 이를 두고 당시 커제는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애송이야, 애송이”라며 신진서를 암시하듯 조롱한 적이 있고, 양딩신은 “신진서는 분명히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나를 만나면 승부처에서 흔들린다”고 말한 바도 있다.
한 바둑 관계자는 “신진서 9단이 과거 승부처에서 서두르다 어이없는 역전패를 당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물론 어린 시절 이야기다. 시간이 흐르면서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성숙해졌다. 최근 바둑에선 그런 일이 없었는데 이번 결승전에선 과거 안 좋았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나왔다. 아마 본인이 가장 많이 느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또 “국제무대에서 더 나은 성적을 올리기 위해선 대국수 조절도 필요해 보인다. 신진서 9단은 올해 60승 7패를 기록 중이다. 이 페이스라면 연말 150국도 가능한 수치다. 거의 이틀에 한 번 대국을 치르는 셈이니 이상하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라고 분석했다.
실제 구쯔하오가 대국 열흘 전 대국 장소인 취저우 시에 도착해 미위팅 등 중국 국가대표 동료들과 스파링을 하며 컨디션을 다진 반면, 신진서는 중국으로 건너가기 이틀 전 늦은 시간까지 KB바둑리그 플레이오프 경기를 치르는 등 정상 컨디션 유지에 애를 먹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어쨌든 중국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구쯔하오의 우승으로 한껏 고무된 상태다. 2020년 삼성화재배 결승에서 커제가 신진서를 꺾고 우승한 이래 3년 만의 승리라며 반기는 분위기다(지난해 LG배에서 딩하오가 우승했지만 당시 상대는 양딩신이었다).
이에 중국 국가대표팀 위빈 총감독은 “신진서를 꺾을 방법을 찾았다”며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였다. 위빈은 “구쯔하오가 이번에 우리에게 준 교훈은 신진서에 대한 심리적 두려움을 깨뜨려 줬다는 것이다. 그가 모든 면에서 우리보다 나은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난가배에서 준우승에 머문 신진서는 8월 말 제9회 응씨배 결승3번기에서 셰커를 상대로 다시 한 번 세계대회 우승에 도전하게 된다. 또 LG배는 준결승에 올라 있으며, 아시안게임에서는 개인전과 단체전에 출전해 2개의 금메달을 노린다. 절치부심할 것이 틀림없는 신진서가 이어지는 대회에선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또한 위빈의 호언장담이 현실화될지도 궁금하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