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1년도 안돼 정산 요구+부당 대우 주장…근거 불투명해 ‘가처분 기각 가능성’ 나와
피프티 피프티(키나, 새나, 시오, 아란)는 6월 19일 소속사 어트랙트에 대해 전속계약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다. 이들의 법률대리인 법무법인(유) 바른 측은 "어트랙트 측이 계약을 위반하고 신뢰관계 파괴를 야기한 데 따른 조치"라며 가처분 신청의 주된 사유로 투명하지 않은 정산과 활동이 어려운 건강 상태에도 일방적으로 활동을 강행시킨 것을 들었다. 계약 해지를 요구하기까지 "어떠한 외부 개입 없이 4인의 멤버가 한마음으로 주체적인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밝히며 어트랙트가 '피프티 피프티 멤버 강탈'의 배후 세력으로 지목한 더기버스와의 연관성을 일축했다. 더기버스는 피프티 피프티의 총괄 제작을 맡았던 외주업체다.
2022년 11월 18일 데뷔한 피프티 피프티는 데뷔 활동은 그다지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묻혔지만, 2월 발매한 싱글 1집 '더 비기닝: 큐피드'(The Beginning: Cupid)의 타이틀곡 '큐피드'(Cupid)가 틱톡과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를 타고 엄청난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빌보드와 스포티파이 등 해외 유명 음원 차트의 상위권을 점령했다. 데뷔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국내에선 아직 멤버들의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심지어 소규모 연예기획사의 첫 아이돌 그룹이 이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받은 것은 K팝 사상 피프티 피프티가 사실상 최초다.
이들의 성공은 '중소돌(중소연예기획사 소속 아이돌)의 기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국내에서도 이목을 집중시켰다. 해외에서 먼저 인기를 끈 뒤에 국내로 조금씩 인지도를 높이기 시작하고 있었던 만큼 '큐피드' 활동이 이 인기를 견인할 새로운 분기점이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큐피드' 음원 발매 날인 2월 23일부터 3월 5일까지 각종 음악방송, 4월 23일(녹화) '열린음악회' 이후부터는 별다른 국내 활동이 없었다. 팬들의 의문이 커져가자 어트랙트 측은 5월 2일 팬카페를 통해 공식입장을 내고 멤버 가운데 아란이 건강상의 문제로 이날 수술을 받았고 당분간 회복에 전념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란과 함께 나머지 멤버들 역시 7월 말에 나올 미국 컴백 앨범 준비에 앞서 휴식기를 가지게 된 것으로 알려졌었다.
연예매체 '디스패치'에 따르면 아란은 수술 당일인 5월 2일부터, 나머지 멤버들은 5월 10일부터 25일까지 휴식기를 가졌다. 이후 본격적인 미국 컴백 활동을 위한 트레이닝이 예정돼 있었다. 멤버들의 이 같은 스케줄은 어트랙트가 아닌 더기버스가 담당했다. 더기버스 관계자가 어트랙트 전홍준 대표에게 상황을 전달하고 전 대표가 이를 승인하면 실행하는 식이었다.
멤버들이 휴식기를 마치고 어트랙트가 지정한 컴백 트레이닝을 받고 있을 무렵 더기버스는 어트랙트 측과 업무상 갈등을 겪으며 5월 31일 프로듀싱 외주 업무를 종료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해외 프로모션에 대해서는 여전히 어트랙트 측과 협력관계에 있었다. 영화 '바비' 사운드 트랙에 참여하는 것 역시 더기버스 측이 좀 더 적극적으로 멤버들과 소속사에게 어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논의가 오간 것이 지난 6월 9일까지의 일이다.
그런데 열흘 뒤인 6월 19일, 피프티 피프티는 돌연 어트랙트 측에 전속계약 해지를 요구하기에 이른다. 사유는 불투명한 정산 문제와 활동이 어려운 건강 상태를 밝혔음에도 일방적으로 강행하고자 했던 모습 등 계약 위반 사항이다. 이 열흘 사이에 멤버와 그들의 부모들이 어트랙트의 '부당 대우'를 도저히 감내할 수 없게 됐다는 이야기가 된다.
문제는 이들이 주장하는 '계약 위반'이 합당한지 여부다. 먼저 정산 문제의 경우 고작 데뷔 8개월, 실질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 '큐피드'의 공개 이후부터로 따진다면 3~4개월 남짓 사이에 발생한 수익에 대한 정산을 바로 계산해 달라는 주장인 셈이다. 웬만한 중대형 연예기획사에서도 광고가 붙지 않을 경우 아이돌 데뷔하고 최소 2년~4년까지는 '플러스' 수익을 생각하지 않는 마당에 해외에서의 반짝 인기만으로 수익을 논하기엔 시기상조라는 지적이 이는 이유다.
실제로 어트랙트는 여전히 '마이너스'다. 피프티 피프티의 데뷔를 위해 대표와 매니지먼트 부문장은 시계와 차를 팔아 부족한 자금을 충당했고, 피프티 피프티의 인기몰이 이유 가운데 하나인 틱톡으로 노래를 띄우기 위해서도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간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아이돌 산업의 특성상 수십억 원에 달하는 제작비와 홍보비를 수익에서 제하고 나서야 겨우 정산이 가능해지는데 이마저도 멤버나 그룹에게 광고가 붙지 않으면 어렵다. 피프티 피프티의 경우 '큐피드'라는 음원이 유명세를 탔을 뿐 멤버 개인과 그룹 자체는 여전히 무명에 가까운 상황이라 이들에게 거액의 광고가 붙을 가능성도 적다. 그런 이들이 정산을 계약 해지의 중요 사유로 삼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멤버들의 건강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활동을 강행시킨다는 주장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이 있다. 공개된 대화 내용에 따르면 전홍준 어트랙트 대표와 안성일 더기버스 대표 사이에서 영화 '바비' 사운드 트랙 참여 건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던 6월 9일, "'바비'는 하는 게 무조건 좋으니 일단 만나서 설득해 보고 아란이와 소통해 보겠다"고 밝힌 것은 안성일 대표였다. 오히려 전홍준 대표는 "본인과 팀과 회사 모두에게 좋은 일인 건 맞는데 건강상 문제이니 부모/본인과 오해 안 사게 잘 소통해 보라"며 다소 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란과 그의 부모님을 직접 만난 것도 안성일 대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점을 종합했을 때, 업계 관계자들은 피프티 피프티 측이 주장하는 각 사유가 실제 계약 해지 요건에 해당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정산 문제의 경우 회사의 경영 상태, 투자 규모와 멤버들이 발생시킨 실제 수익 상황 등을 전체적으로 고려해 판단하는 데다 멤버들에 대한 부당 대우 역시 계약 해지에 이를 만큼의 신뢰 관계 파탄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매니지먼트사 관계자는 "대형 기획사여도 투자한 것 이상의 수익을 내기까지는 생각 이상의 긴 시간이 걸린다. 하물며 이제 겨우 그룹 하나, 노래 하나로 조금 뜨고 있는 작은 기획사가 데뷔 1년도 안 된 신인에게 어떻게 정산을 해줄 수 있겠나"라며 "만일 멤버들이 정산 자료를 요구했는데 소속사가 부당한 이유로 제공하지 않았다는 그것을 근거로 신뢰관계 파탄을 주장할 수 있겠지만 법률대리인의 공식입장에서도 그런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여러 모로 이해가 되지 않는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제까지 부당 대우로 소속사와 계약 해지 분쟁이 붙었던 아이돌을 보면 대부분 대중들이 봐도 이해가 될 정도로 좋지 않은 대우를 받은 근거 자료들이 있었다. 그런데 피프티 피프티의 경우는 숙소 등 현재까지 공개된 자료 어느 것을 봐도 부당하게 대우를 받았다고 보기 어려워 보인다"며 "어트랙트 대표는 실제 건강 문제가 외부로까지 알려진 아란을 제외한 다른 멤버들에게도 개인적인 휴식을 가질 수 있게 배려하지 않았나. 회사로서 소속 연예인들에 대해 충분한 대우를 해준 것으로 보이고 그런 근거도 있는 만큼 이 역시 계약 해지 사유로 인정되긴 어려울 것"이라고 짚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