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최청-노시환 ‘홈런왕 레이스’…투수 페디-알칸타라-플럿코 ‘삼파전’
올해 전반기는 '2강 7중 1약' 구도로 요약된다. '2강' LG 트윈스와 SSG 랜더스가 맨 앞에서 엎치락뒤치락 선두 싸움을 펼쳤고, '1약' 삼성 라이온즈는 5년여 만에 최하위로 추락하는 충격을 경험했다. 3위 두산 베어스부터 9위 키움 히어로즈까지 7개 팀은 전반기 내내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면서 중위권 순위표를 큰 폭으로 뒤흔들었다. 5위 롯데 자이언츠와 9위 키움의 격차가 불과 3.5경기라 가을 야구 티켓을 향한 '7중'의 경쟁은 시즌 막판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 덕에 KBO리그도 전반기에만 441만 2020명의 관중을 끌어 모으면서 코로나19 확산 이전 인기를 회복했다. 올 시즌 360경기 만에 400만 관중을 돌파했는데 2018년(328경기), 2016년(334경기), 2017년(341경기)에 이어 역대 네 번째로 빠른 페이스였다.
#LG가 1위, 삼성이 꼴찌
LG는 10개 구단 중 유일한 6할대 승률(0.620·49승 2무 30패)로 전반기를 1위로 마쳤다. 팀 평균자책점(3.61)과 팀 타율(0.285) 모두 1위에 올라 완벽한 투타 밸런스를 뽐냈다. 월간 성적도 3위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다. 4월 15승 11패로 3위, 5월 15승 11패로 1위, 6월 16승 1무 6패로 2위를 각각 기록하면서 가장 안정적인 전반기를 보냈다. 팀의 자랑거리였던 필승 불펜의 힘이 지난해보다 약해졌지만, 타선의 폭발력과 빠른 발로 충분히 만회했다.
'디펜딩 챔피언' SSG도 시즌 내내 저력을 보여줬다. 선발투수 평균자책점(4.60)이 10개 구단 중 최하위였지만, 불펜(평균자책점 3.31·2위)의 힘으로 2위 자리를 지켜냈다. 마무리 투수 서진용이 세이브 1위(25개)를 달리며 뒷문을 든든하게 걸어잠궜고, 불혹의 필승 불펜 노경은과 고효준이 베테랑의 노련미를 뽐냈다. 다만 6월 이후 성적(17승 15패)이 5위에 머물고 7월엔 2승(5패)을 추가하는 데 그치면서 다소 기세가 꺾였다. 결국 LG에 2.5경기 차 뒤진 2위로 후반기를 시작한다. 또 전반기 종료 직전에는 퓨처스(2군) 선수단 내부에서 얼차려와 관련한 폭력 사태가 벌어진 사실이 알려져 큰 파장이 일기도 했다. SSG는 그 과정에서 야구 배트로 후배를 때린 2017년 1차 지명 출신 투수 이원준에게 '퇴단'이라는 철퇴를 내렸다.
슈퍼스타 출신 이승엽 감독이 이끄는 두산은 후반기 다크호스다. 파죽의 9연승으로 전반기를 마무리하면서 3위 자리에 안착했다. 6월 마지막 날까지는 2위 SSG에 10경기 차 뒤진 6위였는데, 7월 무패 행진을 펼치면서 SSG와 격차를 4경기로 좁혔다. 4위 NC 다이노스와 2.5경기 차가 난다. 이런 기세라면 '7중'에서 빠져 나와 '3강'으로 진입할 수도 있다. 부상으로 거의 뛰지 못한 외국인 투수 딜런 파일을 내보내고 지난해 뛰던 '구관' 브랜든 와델을 대체 선수로 영입한 게 '신의 한 수'였다. 브랜든 합류 이후 선발진이 안정되면서 불펜과 타선도 함께 살아났다.
한화 이글스는 전반기를 8위로 마쳤지만, 팬들의 웃음소리는 1위 팀 못지 않게 크다. 5위 롯데와 8위 한화의 격차는 불과 2.5경기. 지난 3년간 시즌 내내 최하위권을 맴돌던 한화가 올해는 모처럼 '5강 경쟁'까지 할 수 있게 됐다. 시즌 도중 감독과 외국인 선수 2명을 차례로 교체하는 진통을 겪었지만 어수선한 팀 분위기가 안정된 6월 이후 18년 만의 8연승을 기록하면서 눈에 띄게 상승세를 탔다. 전반기 마지막 한 달(6월 14일~7월 13일) 성적만으로는 한화가 1위였다. 팀의 '미래'로 꼽히는 문동주와 노시환은 각각 마운드와 타선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반면 지난해 한국시리즈 준우승팀인 키움은 7월 13일 전반기 최종전에서 KT 위즈에 0-9로 패하면서 7연패에 빠졌다. 키움은 전반기 내내 5연승과 4연승(2회), 5연패(2회)와 4연패를 오가면서 롤러코스터를 탔다. 그러나 중위권 순위 싸움이 본격화한 전반기 막바지 7연패는 유독 치명적이다. 6월 성적 14승 2무 9패로 처음 월간 승률 5할을 넘겼지만, 7월의 부진 탓에 다시 9위에서 후반기 스타트를 끊게 됐다.
박진만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맞아들인 삼성은 2018년 5월 이후 첫 최하위로 추락했다. 팀 평균자책점(4.56)이 꼴찌, 팀 타율(0.252)이 9위였으니 좋은 성적을 낼 수 없었다. 특히 베테랑 소방수 오승환을 포함한 불펜이 연쇄적으로 부진했다. 전반기 패수(49패)의 절반에 가까운 24패가 역전패였다. 베테랑 내야수 이원석을 키움으로 보내고 오른손 불펜 김태훈을 데려오는 트레이드를 단행했지만, 아직은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최정·노시환, 홈런왕 신구 대결
가장 흥미로운 개인 타이틀 경쟁 부문은 '홈런'이다. 베테랑 최정(SSG)과 신예 노시환(한화)의 2파전으로 압축되는 모양새다. 14세 차인 둘은 나란히 전반기에 홈런 19개를 쳐 공동 1위에 올랐다. 독주하던 최정이 잠시 주춤한 사이 노시환이 빠른 속도로 뒤를 쫓았다.
최근 4년 사이 홈런왕에 오른 국내 선수는 모두 33~35개로 시즌을 마쳤다. 2019년의 박병호(KT)가 33개, 2021년의 최정과 지난해의 박병호가 35개였다. 최정과 노시환도 이와 비슷한 속도로 달리고 있다. 노시환이 35.1개, 최정이 34.6개를 칠 수 있는 페이스다.
최정은 벌써 세 차례나 홈런 1위에 올랐던 KBO리그 대표 홈런 타자다. 2016년 40개를 쳐 처음으로 에릭 테임즈(당시 NC)와 공동 홈런왕에 등극했고, 2017년엔 홈런 46개로 단독 홈런왕을 차지했다. 4년 뒤인 2021년에도 35홈런을 때려내 세 번째 홈런왕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1987년 2월생인 그가 올해 10월 네 번째 홈런왕에 오른다면, 36세 8개월의 나이로 역대 최고령 수상 기록을 다시 쓰게 된다. 현재 KBO리그 최고령 홈런왕 기록은 박병호가 지난해 남긴 36세 3개월이다.
최정은 통산 홈런 기록도 역대 2위, 현역 선수 1위에 올라 있다. 프로 19시즌 동안 448개를 쌓아 올려 이승엽이 남긴 통산 최다 홈런(467개) 기록을 넘어설 유일한 후보로 꼽힌다. 3위 이대호가 374개를 치고 은퇴했고, 4위 박병호(368개)와도 차이가 크다. 한동안 최정을 따라잡을 적수가 없다.
최정은 올해도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4월에 4개, 5월에 4개를 각각 때려낸 뒤 6월 한 달간 11개를 몰아치며 1위로 치고 나갔다. 세 번이나 한 경기 2홈런을 기록했고, 6월 22일 두산전부터 24일 삼성전까지 3경기 연속 홈런도 터트렸다. 홈런만 많이 친 것도 아니다. 타점(58개)과 장타율(0.577) 단독 1위에 올라 있고, 득점(64개)도 공동 1위다. 김원형 SSG 감독은 "홈런을 그렇게 많이 친 선수인데도 (홈런 뒤) 정말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감회가 남다르다"며 "야구를 그렇게 오랫동안 잘해왔어도 매순간을 즐기는 것이 최정"이라며 흐뭇해했다.
다만 최정은 뜻밖의 부상으로 잠시 숨을 고르는 중이다. 6월 24일 삼성전 이후 7경기 연속 홈런이 나오지 않았고, 7월 5일 KIA 타이거즈전 도중 왼쪽 내전근 통증을 느껴 교체된 뒤 다음 날부터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나흘간 상태를 지켜보던 SSG는 통증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자 7월 10일 결국 최정을 1군 엔트리에서 제외했다. 드림 올스타 베스트12 멤버로 뽑힌 최정의 올스타전 출전도 끝내 불발됐다. 그러나 최정은 한 번 불이 붙으면 언제든 몰아치기가 가능한 타자다. 그는 통산 25차례나 연타석 홈런을 쳐 이승엽 감독(28개)에 이은 이 부문 2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충분히 회복한 뒤 후반기 팀에 복귀하면 홈런왕 레이스의 2막이 시작될 수 있다.
노시환은 프로 데뷔 5년 만에 첫 홈런왕 타이틀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7월 6일 대전 롯데전에서 시즌 19호 홈런을 터트려 최정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최정의 19호 홈런이 나온 6월 24일까지 노시환의 홈런 수는 13개였는데, 그 후 6개를 몰아쳐 순식간에 격차를 없앴다. 2000년 12월생인 노시환이 이 순위를 유지한 채 정규시즌을 마치면 역대 세 번째로 어린 나이(22세 10개월)에 홈런왕에 오르는 선수가 된다. KBO리그에서 23세가 되기 전 홈런왕 타이틀을 차지한 선수는 이승엽(21세 2개월)과 장종훈(22세 6개월)밖에 없다. 또 한화는 2008년의 김태균 이후 15년 만에 홈런왕을 배출하는 감격을 누리게 된다.
이전까지 노시환의 한 시즌 최다 홈런은 2021년의 18개였다. 올해는 전반기가 끝나기도 전에 그 숫자를 넘겼다. 데뷔 첫 20홈런을 넘어 30홈런 돌파도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개막 첫 달인 4월엔 홈런 2개를 치는 데 그쳤지만, 예열을 마친 뒤엔 빠른 속도로 홈런 수를 늘려가고 있다. 5월 7개와 6월 6개를 각각 추가한 뒤 7월에도 4개를 더해 꺾이지 않는 기세를 이어갔다. 노시환은 "홈런왕은 당연히 하고 싶고 내 꿈이기도 하지만, 너무 의식하면 항상 뜻대로 안 되는 것 같다"며 "홈런 경쟁을 아예 의식하지 않고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만 계속 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좋은 결과도 따라오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특급 외국인 투수 삼국지
평균자책점 부문은 특급 외국인 투수들의 삼파전이 벌어졌다. KBO리그 '신입' 에릭 페디(NC), '복귀병' 라울 알칸타라(두산), '2년차' 애덤 플럿코(LG)가 자존심 대결을 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페디는 10개 구단 투수 중 유일하게 1점대 평균자책점(1.71)으로 반환점을 돌았다. 15경기에서 89⅔이닝을 던지는 동안 자책점을 단 17점만 내줬다. 2010년 1.82를 기록한 류현진(당시 한화·현 토론토 블루제이스) 이후 13년 만에 1점대 평균자책점에 도전하고 있다.
페디의 활약은 예견됐던 결과다. 그는 2014년 메이저리그(MLB) 신인 드래프트에서 워싱턴 내셔널스의 1라운드 지명을 받았다. 2017년 빅리그에 데뷔해 5선발 역할을 했고, 2019년에는 선발과 불펜을 오가면서 워싱턴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힘을 보탰다. 2021년과 지난해에도 2년 연속 27경기를 풀타임 선발로 소화했다.
화려한 이력을 보유한 선수가 KBO리그를 만만하게 보고 왔다가 조기 퇴장하는 사례도 많았지만, 페디는 그 반대다. 오히려 한국 야구의 '스위퍼 전도사'로 활약하고 있다. 스위퍼는 아래로 떨어지는 대신 좌우로 움직임이 큰 변형 슬라이더다.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의 '마구'로 MLB에서 먼저 유명해졌고, 페디는 지난 2월 스프링캠프에서 새로 익힌 뒤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안우진(키움) 같은 리그 정상급 투수들까지 페디에게 스위퍼를 배우러 찾아온다는 후문이다. 페디는 그때마다 자신의 비법을 아낌없이 공유하고 있다.
스위퍼를 앞세운 페디는 전반기에 12승(2패)을 거둬 다승 부문에서도 1위에 올라 있다. NC의 전반기 승수(39승) 중 약 31%를 페디가 책임졌다. 또 올 시즌 15경기에서 9개 구단을 상대로 모두 승리해 10개 구단 체제가 출범한 2015년 이후 '최소 경기 전 구단 상대 승리' 타이 기록도 세웠다.
알칸타라는 9승(3패)과 평균자책점 2.03을 기록해 평균자책점 2위, 다승 공동 3위에 올라 있다. 106⅔이닝 동안 자책점 35점을 허용한 게 전부다. 이닝당 출루 허용(WHIP)은 리그에서 유일한 0점대(0.94)로 페디(1.01)를 앞선다. 올해 알칸타라가 등판한 17경기 중 5회를 넘기지 못한 건 단 두 경기뿐. 4월 20일 한화전부터 14경기 연속 5이닝 이상 소화하고 있다.
알칸타라는 KBO리그에서 세 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다. 2019년 KT 소속으로 데뷔했고, 2020년 두산으로 옮긴 뒤 20승(2패) 고지를 밟아 그해 다승왕과 투수 부문 골든 글러브를 석권했다. 이듬해 일본 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스로 이적한 뒤엔 두 시즌 동안 4승 1세이브 25홀드 평균자책점 3.96을 남기고 퇴출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두산은 그런 알칸타라에게 다시 "함께하자"며 손을 내밀었다. 알칸타라도 흔쾌히 두산으로 돌아와 재기의 꽃을 피우고 있다. 이승엽 감독은 "알칸타라가 등판하는 날에는 무조건 이긴다는 확신이 있다"며 믿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LG에서 두 번째 시즌을 맞이한 플럿코는 평균자책점 3위(2.21), 다승 2위(11승), 승률 1위(0.917)로 전반기를 마쳤다. 지난 시즌에도 15승(5패)에 평균자책점 2.39로 활약했는데, 올해는 팀 안팎에서 존재감이 더 커졌다. 지난 4년간 에이스 역할을 했던 케이시 켈리가 올해 평균자책점 4.44로 흔들리고 있지만, 후임자 플럿코가 특급 활약을 펼치면서 선두 LG의 선발 마운드를 지탱했다. 안우진은 평균자책점 2.44로 4위에 올라 외국인 에이스들의 삼각 대결 구도에 균열을 일으킬 채비를 하고 있다. 탈삼진 부문에서는 안우진이 130개로 독보적인 1위다. 2위 페디(109개)와 격차도 크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