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드 이후 2년 만에 전성기 구위 뽐내…“한국시리즈 올라 좋은 성적 내고 싶어”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함덕주는 실패한 트레이드였다. 2021년 시즌 개막을 앞두고 LG는 양석환과 남호를, 두산은 함덕주와 채지선을 내주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당시만 해도 ‘윈윈 트레이드’로 평가받았지만 LG 유니폼을 입은 함덕주가 팔꿈치 뼛조각 수술을 받게 됐고, 양석환은 두산으로 팀을 옮기자마자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낸 터라 극명한 대비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2023시즌 한쪽으로 기울던 트레이드가 함덕주의 재기로 균형을 맞추게 됐다. 수술 후 통증 없이 공을 던지게 된 함덕주는 올 시즌 다시 일어섰고, 전성기 시절의 구위를 뽐내며 LG의 최강 필승조로 자리매김했다.
7월 6일 현재 함덕주는 40경기 등판해 40.1이닝 3승 3세이브 12홀드 평균자책점 1.12를 기록 중이다. 7월 1일 잠실야구장에서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나타난 함덕주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4월 2일 수원 KT위즈파크였다. 전날 개막전에서 패배를 한 LG는 개막 두 번째 경기에 총력전을 펼쳤다. 경기 초반에만 해도 쉽게 이길 거라 예상했지만 선발 김윤식이 1이닝 만에 2실점으로 물러나고 불펜전이 펼쳐졌다. 그런데 LG의 필승조가 무너졌고, 8회에만 박명근, 진해수, 이정용이 차례로 등판한 끝에 9-9 동점을 이뤘다. 연장전으로 이어진 위기의 10회말 염경엽 감독은 함덕주를 마운드에 올렸다. 함덕주는 KT의 조용호, 강백호, 알포드를 삼진 3개로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11회초 LG가 1득점을 올리며 10-9로 다시 역전했고, 11회말에도 마운드에 오른 함덕주는 박병호를 내야 파울플라이, 김준태를 삼진, 황재균을 유격수 플라이로 처리해 LG의 시즌 첫 승과 LG 입단 후 자신의 통산 2승을 올릴 수 있었다.
함덕주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떠올린다.
“올시즌 개막전 엔트리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당시의 내 구위가 개막전에 들어갈 만큼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개막전에 합류했고, KT와 원정으로 개막 시리즈를 맞이했다. 개막전에는 등판할 기회가 없었다. 2차전도 불펜에서 대기하며 경기를 지켜봤는데 8회초까지 우리가 9-5로 앞서고 있어 오늘도 등판하지 못한다면 2군행이 분명하다는 생각에 착잡해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8회말 박명근, 진해수, 이정용이 투입됐는데 4실점을 하는 게 아닌가. 만약 그때 (이)정용이가 실점 없이 경기를 끝냈다면 지금의 함덕주는 없었을 것이다. 정용이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정용이가 실점해준 덕분에 동점이 됐고, 10회말 내게 천금같은 등판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당시 마운드에 오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어차피 2군 갈 건데 오늘 시원하게 던지고 내려가자’라고 말이다.”
함덕주는 이날 최고 구속 144.7km/h를 찍었고, 2이닝 무피안타 4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하며 구원승을 이뤘다. 불펜에서 등판 기회만을 기다리며 하염없이 대기 상태였던 선수가 팀에 중요한 시즌 첫 승을 안긴 셈이다. 비록 개막 엔트리에는 포함됐지만 2군에서 올라올 투수들을 위해 자리를 비워줘야 할 거라고 예상했던 함덕주는 올 시즌 단 한 번도 2군으로 내려가지 않았고, 전성기 시절 못지않은 구위와 성적으로 LG 팬들한테는 ‘갓’덕주로 불릴 정도다.
“개막전 때는 내 자신이 정말 초라해 보였다. 과거에는 당연했던 일들이 나의 부족함으로 당연시되지 못하면서 스스로에게 화도 많이 났고 자존심도 상했다. 올 시즌 내 야구의 터닝 포인트는 KT와의 개막시리즈 2차전 10회말 등판이었다. 그 경기의 결과가 정말 중요했는데 다행히 잘 마무리돼 계속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함덕주는 LG로의 트레이드 후 기사나 여론을 통해 자신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더욱이 두산 유니폼을 입은 양석환이 커리어 최고의 성적을 올리고 있던 터라 자연스레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도 인정했다.
“참고 던지려고 했다. 트레이드 이후 나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높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그걸 충족시켜주고 싶었다. 하지만 통증을 참는 건 또 다른 부작용으로 이어졌다. 임팩트 있는 공을 던질 수 없었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그땐 매 순간 쫓기는 기분이었다. 기사를 안보려고 해도 눈에 들어왔다. 무엇보다 차명석 단장님이 나로 인해 비난을 받는 상황이 마음 아팠고, 정말 죄송했다. 그 죄송했던 마음을 이제야 뒤늦게 조금씩 갚고 있는 것 같다.”
함덕주가 올 시즌 이전의 모습으로 회복한 배경에는 지난 시즌에 가진 마무리 캠프에서의 노력이 있다. 자신의 투구폼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영상으로 비교 분석하면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코치, 트레이닝 파트, 전력분석팀이 나서 함덕주를 도왔다. 시간이 날 때마다 함덕주는 병원을 찾아다녔다. 자신한테 필요한 치료를 받으며 몸의 회복에 집중했다. 함덕주는 “그때의 노력들이 이제야 성적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며 미소를 짓는다.
“팔꿈치 뼛조각 수술 후에도 통증을 느낀 적이 있었다. 그럴 땐 약간의 통증에도 민감해지더라. 타자와 싸워야 하는데 투구에만 집중하지 못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통증 없이 던지는 것과 통증을 느끼며 공을 만지는 건 결과가 비슷하다 하더라도 내용 면에선 큰 차이가 난다. 올 시즌에는 통증없이 자신있게 승부에 임하는 중이다.”
함덕주는 올 시즌을 앞두고 LG 감독과 코칭스태프가 모두 바뀌는 과정을 지켜보며 내심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LG 이적 후 2년 동안 성적을 내지 못한 터라 염경엽 감독 체제에서 자신의 입지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감독님 눈에 들려고 노력 많이 했다. 내가 잘해야 감독님이 날 믿고 기용해주실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이 오히려 더 나를 옥죄었던 것 같다. 아직까지 두산 시절의 구위를 회복한 게 아니라 만족스럽지 않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걸 몸으로 느끼는 중이라 이젠 부담을 털어내고 내 역할에 집중할 것이다.”
함덕주는 올 시즌을 마치면 FA 자격을 얻는다. 부상만 아니었다면 지난해 FA가 됐겠지만 등록일수를 채우지 못해 올 시즌 이후로 미뤄졌다. 함덕주의 올 시즌 연봉은 1억 원으로 보상 등급이 C다. 함덕주를 타 팀에서 영입할 경우 보상 선수를 내주지 않아도 된다. LG 팬들은 함덕주의 다음 행보에 큰 관심을 쏟아내며 계속 LG에 남아주길 바란다.
“지금은 미래의 일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다. 가장 큰 목표는 LG에서 보낸 지난 2년의 시간을 지울 수 있도록 올 시즌 더 큰 무대(한국시리즈)에 올라 좋은 성적을 내고 시즌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그다음은 그 이후에 생각해도 늦지 않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